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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정선 Jun 21. 2024

여행의 연결, 코카서스 3국에 이은 발틱 3국 여행.

    

‘발틱 3국 어때?’ 남편의 물음에 ‘발틱 3국? 거기가 어딘데?’ 나는 다시 물었다.

지리 시간에 들어 본 것 같은데 반세기도 지난 일이니 가물가물 할 수 밖에. 알고 보니 이 질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의 답은 나와 대동소이했다. 가끔 발칸으로 바꾸어 대답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중 최강은 우리 옆집이다. 현관문을 마주하고 같은 신문을 보는지라 옆집에 여행 중 신문 수거를 부탁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여행을 마치고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그녀, ‘어디 다녀오셨어요?’ ‘발틱 3국요’ ‘우리도 거기 갔었는데’ ‘언제요?’ ‘지난주요.’ (내가 문자 보냈을 때 그녀도 여행 중? 알고 보니 신문수거는 그 집 딸이 했다고.) 그녀의 말에 일정을 계산해 보니 며칠 겹친다. ‘앗 만날 수도 있었겠네요’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 크로아티아가 나오는 순간 발틱이 아니라 발칸여행으로 판명,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실례다. 실제로 발틱 3국을 간다는 말에 사람들의 첫마디는 ‘거긴 어느 나라야?’ 처음에는 ‘라트.. 리투..’ 얼버무리다가 관심을 보여준 사람들이나 여행지에 대한 매너가 아니라는 생각에 마음먹고 외우기로 했다.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입에 붙지 않는 발음을 반복하면서 드는 생각, 이건 주관식 문제가 아닌 면접용이라는..

    

숙소뷰는 진리다


사실 우리가 처음 갈려고 했던 곳은 포르투갈이었다. 포르투갈은 자유여행하기 그다지 어렵지 않다고 지인들은 말했지만 나에게는 해당 무, 길치 방향치에 컴맹 수준인 나는 어디 꼽사리 낄 데 없을까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가 그나마 포기, 마침 스페인 불포함 포르투갈 단독상품이 있길래 일정표를 열었다. 근데 6박 9일? 환승에 어마무시한 비행시간에 인천 출발조차 밤.(그래서 대부분 스페인 포함) 남편은 그 스케줄을 상도덕(?)의 부재라 생각했고 나는 하늘에 그렇게 오래 떠 있을 자신이 없었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상품을 뒤지던 남편이 들고 온 카드가 7박 9일 발틱 3국이다. 작년 코카서스 3국에 이어 올해는 발틱 3국(폴란드 경유 일박까지 4국), 그럼 내년은 베네룩스 3국? 전번에 올린 ‘숫자 3의 법칙’ (삼세번)이 설마 여행에서도? 하긴 예전 발칸여행은 하루에 세 나라 국경을 넘기도 했다. 국경을 맞댄 작은 나라들은 한때 한나라이기도 했으니 3국이니 4국이니, 숫자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 소급해 보니 우리나라 삼국시대 때 해외여행이 가능했다면 ‘조선 삼국 여행’ 상품이 나왔을 수도 있었겠다 생각하니 갑자기 이해가 쉬워진다.


     


나의 해외여행 매뉴얼은 자유여행과 패키지 두 가지다. (남편은 일관성 있게 패키지 한 가지다).

두 여행의 차이는 영혼이 따라 가느냐,  몸만 가느냐 이다. 하지만 아무리 영혼을 데리고 가고 싶어도 내 능력으로 안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가끔, 가뭄에 콩 나듯 아들이나 조카, 친구 덕에 자유여행을 갈 때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최선을 다해 준비를 하지만 남편과 가는 패키지는 아무 사전 지식 없이 트렁크만 챙겨가기도 한다. 어차피 내 의지와 무관한 일정이고 가이드가 설명은 해 줄 터이니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착한 학생 노릇만 하면 된다는 생각. 작년 코카서스도 그런 경우였다. 하지만 되돌아보니 마치 한바탕 꿈을 꾼 듯 생각이 나지 않았다. 여행은 실습, 복습보다 예습이 중요하다는 경험치에 이번에는 도서관에서 책을 빌렸다. 찾아보니 발틱 관련 최신간은 2017년, 그리 뜨지 않은 나라가 맞긴 맞다. 그나마 미루다 기내에서 읽었지만 관광 중 책의 내용과 사진이 겹쳐질 때의 뿌듯함, ‘아는 만큼 보인다’는 이럴 때 쓰는 말..


발틱 3국의 중세 건축들은 고색창연한 코카서스의 성당들과 달리 새로 도색한 아파트처럼 깨끗했다. 세월의 때가 묻지 않은 중세의 건물들을 보며 처음에는 어리둥절하고 혼란스럽기도 했는데 그들의 슬픈 역사를 알고 나니 이해와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 때로는 마음의 눈으로 봐야 하는 풍경들이 있다.

발틱 3국은 참으로 파란만장한 식민지사를 가진 나라들이다. 13세기경에 시작된 3국의 공동역사는 덴마크 스웨덴 폴란드 러시아, 독일, 프랑스, 소련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든 강대국들의 지배를 번갈아 받다가 완전한 독립이 된 것은 50여 년 전이다. 유럽 열강들의 전쟁과 1,2차 세계대전으로 중세의 대부분의 성당이나 건물들은 부서지고 길게는 100년, 짧게는 30년 전에 복원되었다 한다. 가까이에서 보면 조금 미시감이 들지만 멀리서 보면 수없이 겹쳐지는 주황색 지붕들과 그 사이사이 뾰족한 첨탑에 황홀해지는.. 발틱은 유럽이다.

     

발틱여행은 구도심 여행이다. 솔직히 내 눈에 유럽 구도심의 모습은 비슷비슷하다. 중앙 광장과 광장을 둘러싼 오래된 건물들, 좌, 우, 상, 하 길게 연결되어 건물들은 본래의 용도 대신 노천카페, 식당, 기념품 상점들이 되어있다. 그곳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 한 그 모습들은 개별성을 잃고 믹서 되어 재현된다. 유럽 패키지는 대부분 구도심여행으로 채워진다. 그래도 예전과 다르게 자유시간이 주어지는 것은 패키지여행의 진화(?)라 할 수 있다. 한 시간에서 많게는 세 시간 정도 풀어놓기, 그 지역의 커피나 맥주 한 잔 마시며 스케치 한 장하기, 어반스케쳐인 내게는 딱이었는데, 여행지에서 그림만 그릴 군번(연륜?)은 아닌지라 사람들과 맥주 마시고 노느라 숙제하듯 딱 한 장만, 휘리릭 그렸는데. 여행을 마치면 사람들은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그림의 갈증은 남는다. 그래서 ‘후회는 언제나 뒤늦은 것’.

     

 그림은 한장씩만.  숙제하고 놀기.


비행시간 11시간 30분, 그래도 갈 때는 호기롭다. 영화 세 편 보고 책도 읽고 두 번의 기내식에 와인도 한 잔 하고. (올 때는 아무 생각이 없다. 영화고 뭐고 그저 견디기. 마지막 기내식이 반가운 것은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잠시 후 내린다는 신호이기 때문.)

공항에 내리니 맨 처음 드는 생각은 참 멀리도 왔다, 바꿔 말하면 뭐 하러 이리 멀리 왔을까. 긍정과 부정의 양가감정이 부딪칠 때 답은 모범생 모드로 재빨리 전환하기. 이왕 왔으니 무탈하게 잘 놀다 가자~.

 


여행의 이유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다. 내 경우 새롭고 멋진 풍경보다 우선하는 것은 물리적 이동이다. 물리적 이동이 되어야 심리적 이동도 가능하다. 일상을 탈출할 수는 없지만 여행은 일상의 나를 멀리서 바라보는 전지적 관점을 가능하게 한다.

또 다른 한가지는 소소한 평행이동이다. 드라마에서처럼 시대를 넘나들 순 없어도 7시간 시차가 나는 낯선 곳에서 잠시 다른 사람이 되어보는 것. '더이상 뭘 바래' 주문을 외운다. 여행도 채우기보다 비우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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