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onymous Feb 04. 2018

"보여주기 식"은 이제 그만

정기 국무회의에서 향후 5년 간 추진될 <국민 생명 지키기 3대 프로젝트>가 확정되었다.


큰 틀에서 세 가지 이슈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주변인들로부터 자살 징후를 빠르게 포착하여 적합한 초기 조치를 취하는 게이트키퍼 100만명 양성

둘째, 제한속도 개정 및 음주 단속을 강화하고 보행자 중심으로 현 교통 체계 개편

셋째, 이동식 크레인 등 건설기계 장비 후방 확인 장치 및 안전설비 의무화 (불이행 시 과태료 부과 인상)


소위 '국민'을 접두사로 붙여가며 발표되는 수많은 정책들을 보면서 과연 제대로 유지될 것인가 하는 의문을 품게 된다.


그중 많은 것들이 시작은 좋았으나, 결국 시작만 좋았던 단계로 끝맺음했다.


현 정부가 들어선 이래, 아직 1년이 채 지나지 않았지만 뜻하지 않게 많은 사건사고가 발생했다. 이전 정부들과 다르게 대부분의 사망사고 및 재해가 카테고리화 되어 있는 것 같다. 타워 크레인 추락 사고, 건축물 화재 사고, 선박 전복 사고 등 유사한 형태의 악재가 연이어 터지는 것을 보고 안전 불감증, 미흡한 초동 대처, 기존 법령의 비합리성, 부족한 안전 의무 교육, 중대 사고 관련 매뉴얼 부재 등 다양한 근본 이유들이 총체적으로 결합돼 있음을 확인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하는 것인가.


몇몇 사람들은 모든 것이 현 정부의 잘못이라며 맹목적으로 비난한다. 심지어는 크고 작은 재난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그것 자체로 정부 탓이라며 특정인의 이름을 활용해 비꼬기도 한다. 물론 각 개인이 자신의 감정과 의견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것은 표현의 자유 측면에서 당연한 것이지만, 오로지 근거 없는 '비난'만으로 오랜 기간 관행처럼 굳어져 온 정책적 문제점들을 해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만약 재난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당연히 비판받아 마땅하며 어떠한 대처 단계에 문제가 있었는지 밝혀내고 수정 및 보완하는 후속 조치가 필요할 것이다. 더불어 사고 자체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도록 안전의식 수준을 높이는 국가 차원에서의 상시 교육 제공, 공개 포럼 개최, 민관합동 연구회 지원 등 보다 더 근원적인 접근이 함께 수반되어야 한다. 일반 시민들이 이러한 행사에 자유롭게, 때로는 의무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규정이 마련된다면 미약할지언정 조금씩 안전문화가 정착될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로서도 부끄러운 순간들이 많았다.


학교 다닐 때 형식적으로 연중 한 두 번 정도 진행된 화재 대피 및 소방 훈련을 이유 없이 기피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 일은 나에게 일어나지 않아' 가볍게 여겼다. 그렇다면 나는 앞서 언급한 대로 '뜻하지 않게' 발생한 재난사고에 담담하게 대처할 수 있을까. 불길과 화염이 솟구치고, 흡입하는 순간 쓰러질 수밖에 없는 고농도의 유해가스 속에서 이성적인 판단이 가능할까. 그래서 '반복적인 학습'이 중요하다. 건축물 법규를 개정하여 스프링클러를 설치하고, 드라이비트 공법을 제한하고, 피난설비를 확충하는 것은 사고발생률 저감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지 않다. 이보다는 무심코 방치하여 그토록 거대한 화마로 거듭나게 된 작은 불씨 하나의 완벽한 차단이 우선시되어야 한다. 대부분의 불씨가 사람으로부터 비롯되니 '그것을 키우지 않도록 하는 교육', 또 사고 발생 시 그 무엇보다도 인명 피해 최소화가 가장 중요하므로 패닉 상태에서 반사적으로 대피가 가능한 정도의 '반복적이고 간결한 대피 매뉴얼 교육'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정부에서 내놓은 세 가지 중대 사안에 대한 대처 방향성은 적합하다. OECD 국가 중 경제력 대비 자살률이 가장 높은 그룹에 속하고, 교통사고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건설현장 이미지는 여전히 부실공사와 비리 등 부정적인 시선이 가득하다. 무엇보다 세 가지 모두 사망사고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항시 국가의 관심이 필요함은 타당하다. 그러나 무언가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사전 방지 차원에서 단기적으로 사고 발생률을 낮출 수 있겠지만 근본적인 해결에는 다가서지 못한다. '왜 사고가 일어나는가'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의식 변화를 위한 장기적 정책이 동반되어야 한다.


왜, 열정으로 가득해야 할 젊은 세대들이 자살을 결심하게 되는 것인지
왜, 보행자 중심의 교통 체계가 수립되어야 하는지
왜, 타워크레인 안전설비 및 정기검사가 중요한지

그제야 우리는 'N 포 세대'로 대변되는 청년들의 절망, 도로 위에서 가장 약자였으며 피동적이었던 보행자들의 불안, 무너진 타워크레인에 깔려 고인이 된 어느 한 가장의 '빛바랜 희망'을 직시하게 된다.


안전의식 함양의 경우, 눈에 보이지 않고 또 생성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진정 실효한 것인지 의구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안전'을 귀찮고, 불필요하고, 형식적인 요소로 여기는 현상을 근절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아이들이 굉장히 좋아하는 직업 체험 놀이 공간 '키OOO'를 차용하여 지역 거점별로 안전센터를 만들고 VR 시뮬레이션을 통한 가상 사고 체험, 퀘스트 형식으로 일상생활에서 직접 사용 가능한 안전 관련 도구 조작 교육, 안전을 주제로 한 예술가들의 작품 전시 등 재미와 정확한 교육을 한데 묶어 추진한다면 '안전문화'를 확산시키는데 매우 효과적일 것 같다.


더 이상 "보여주기 식" 정책으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안타까운 사고가 되풀이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길 바란다. 그래야만 사고로 희생된 고인의 유족들에게 '죄송하다 혹은 송구스럽다'라고 표했던 관계자들의 진심이 비로소 유효하게 된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시간을 두고 지켜볼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임금님, 오르니 어떤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