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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Seok Kim Sep 07. 2024

사업기획자로서의 어려움을 겪는 사람에게 조언과 응원

#1

 주니어부터 사업 기획자로 커리어를 시작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아마 학생 창업자가 아닌 이상 거의 없을 겁니다. (저도 커리어의 시작은 마케터였습니다) 창업이든 사업기획자로 이직이든 다른 직군에서 사업기획자로 전환하는 경우 당연히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왜냐면 원래 어떤 분야든 "사업"이라는 게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어떤 사업이 쉬웠으면 이미 누군가가 하고 있었을 겁니다. 원래 사업은 답없는 걸 풀어나가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모든 직군이 나름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사업기획" 직군 역시 어려운데,  제가 겪어본 바로는 아래의 이유로 어려운 것 같습니다. 


1) 넓은 범위의 지식과 스킬이 필요

- 전략, 재무, 인사/노무, 경영지원, 프로세스, 데이터, 법무, 마케팅, PR, 대외협력 등 모든 범위에 일정 부분 지식이 필요 (협업 대상이 넓음)

- 초기 스타트업의 초기 멤버라면 초기에는 이들의 역할까지 하다가 이런 전문가를 채용해야하는 일도 해야함

2) 늘 누군가를 설득하는 일의 연속 

- (잠재적)이용자든, 투자자든, 서비스기획/개발/디자인이든 경영진이든, 정부/이해관계자든

- 문서 작성 능력은 이를 위한 일부일 뿐. 문서가 아니라 혼이 담긴 구라를 통해 설득할 수 있으면 그만

- 하지만 보통은 그게 안되고 상대방에 따라 원하는 폼이 다르기 때문에 엑셀/PPT/워드 형태 문서 모두 잘해야함

3) 어렵고 모호한 가운데 방향을 제시해야 하는 외로움 속에 팀 리딩 역할 

- (회사/직책에 따라 다르지만) 리소스 사용에 대한 최종적인 책임을 지는 경우가 많음

- 스스로 버티는 힘과 다른 사람을 버티게하는 힘 모두 필요

4) 검토와 고생은 하지만 오랜 시간 결과를 내기 어려울 수 있음 (커리어적 측면)

5) 해당 산업에 대한 자신의 View가 필요함

- 소비자 측면이든 공급자든 관행이든 View 없이는 기획의 시작이 되지 않음

6) 여러가지 아젠다에 대한 동시다발적인 검토와 의사결정 (멀티플레이)

- 여럿을 처리하다 실수는 할 수 있지만 실수가 발생하면 수습을 위해 일을 더해야하니 실수를 줄이는 집중력이 필요

7) 빠른 실행력

- Do - See - Plan의 자세 + 실행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이 필요한데 생각보다 어려움

- 일단 하고, 일단 만나고, 일단 정리해보는 상황의 연속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는 분야에서 일하는데 익숙하다면 특히 어려울 수 있음)


 대부분의 사업기획 직군에서 일하는 분들은 위의 7가지의 어려움을 모두 극복해야하며, 심지어 1~2가지는 매우 잘 해야합니다.  


무엇보다 사업기획은 모호하고 터프한 상황에 처해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업이 너무나 명확하고 돈 버는게 땅짚고 헤엄치기인 경우는 거의 없을 겁니다. (그런게 있다면 좀 알려주세요ㅠㅠ)


 그 상황에서 어떤 문제를 풀것인지 문제를 정하고, 해당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직의 에너지를 Align해서 사업적으로 유의미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건 그야말로 예술의 영역일지도 모릅니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와 감정적으로 상하지 않으면서 커뮤니케이션까지 나이스하게 하는건 사업기획자에게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것일 수 있습니다.


#2

최근 몇년 간 사업팀의 장으로 일하면서 전략기획/컨설팅 분야에서 사업기획자로 넘어온 사람들이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를 다양하게 봤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굳이 조언을 할 게 있다면 위에서 소개한 7가지 어려움 중 4번과 5번에 대해서입니다. 원래 스마트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1번, 2번, 6번은 원래 잘하거나 금방 채워나갈 수 있고, 3번과 7번은 경험이 쌓이고 주변의 사업기획자들을 겪다보면 자연스럽게 체득이 됩니다. 하지만 오히려 기본적으로 스마트한 사람들이다보니 4번과 5번에 대해 조급하게 생각하거나 오해를 해서 스스로 견디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① 너무 조급해할 필요가 없음. 다른 직무와 마찬가지로 이 직무도 1~2년 안에 승부를 봐야만하는 것은 아니다.

 보통 전략기획/컨설팅 분야에서 사업 기획자로서 이직하면서 기대 혹은 환상을 갖는 것은 기획에서 개발 - 출시로 이어지는 굉장히 선형적인 제품 런칭 과정입니다. 하지만 사업이 이런식으로 진행되는 경우는 매우매우 드물며, 나선형/지그재그의 과정을 거치는게 오히려 보통입니다. 또한 제품 출시는 결코 소설/영화의 엔딩이 아닙니다. 시작일 뿐입니다. 출시된 제품의 fit을 수정하고 방향을 잡아나가는 것이 사업기획자로서 하는 일의 대부분입니다. 출시가 끝이 결코 아닌거죠.

 그리고 보통 대부분의 사업은 시작은 초라합니다. 시작부터 대박터지는 건 없습니다. 지난하게 하다보면 J를 그리는 것이고 보통 그 J 앞에 얼마나 긴 --------라인이 있는지는 모릅니다. 심지어 J커브의 중간은 골짜기입니다. 전설적인 사업들의 스토리도 앞의 라인들을 짧게 얘기해서 그렇지 실제로는 훨씬 더 긴 과정인 경우가 많습니다. (인류의 역사에서 구석기 시대가 수백만년으로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해당 기간을 퉁치고 역사시대를 세세하게 얘기하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요.)


 그렇다고 그 라인이 의미가 없는게 결코 아닙니다. 또한 그 라인의 끝의 J의 시작 시점에 합류하게 되면 사실 "기획"보다는 다른 사람이 기획한 것을 "운영"하는 역할에만 치우치게 됩니다. 왜에 대한 고민 전에 일단 뛰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왜와 방향을 정하는 것은 이전부터 자리 잡고있는 다른 사람일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조급해하면서 여기저기 옮기면서 이거하다 저거하다보면 시간은 몇 년 갔는데 한 건 딱히 없이 검토만 해본 커리어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 정했으면 최소 2~3년은 해야 뭐를 겪어보고 느낄 수 있습니다. 사실 2~3년도 사업기획자로서 특정 사업을 충분히 경험하기에 빠른 것은 같습니다. 


② 실행에 대한 환상을 버리되, 실행과 운영을 구분하는게 필요하다

 보통 이직 면접에서 얘기를 나눠보면 기획과 실행을 나누어서 생각하는 경우가 많고, 실행을 하고 싶어서 이직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실 기획/실행은 한 몸입니다. 기획자가 기획만 하는 경우는 없고 기획이 현실 세계에서 동작하지는지를 실험/실행해봐야 합니다. 초기 POC 과정은 어떻게든 본인이 떼워야 회사에서 리소스를 배분받을 수 있는 것이고요. 

 또한 본인이 기획하지 않은 것을 남이 실행만 하는 것은 매우 제한적입니다. 사실 그게 가능한지 모르겠습니다. 실행이 끝나고 검증이 다 된 것을 이어받아 "운영"하는 것이라면 몰라도요.


 또한 실행은 혼자 하는게 아닙니다. 혼자 실행하는 것은 매우 작은 규모로만 가능할 것입니다. 사업이라는 게 초기 기획단계에는 do things don't scale이라고 하지만 결국에는 다른 리소스를 끌어다 써야합니다. 대부분의 사업은 결코 혼자서 모든걸 결정하고 스스로 실행하지는 않습니다. 제 생각에 그런 사업은 자영업이라고 부르는 "소규모 창업"정도 같습니다. 자영업이 어려운 것은 한정된 인적/물적 자본으로인해 실행을 오롯이 혼자해야한다는 것이겠죠. 


 마지막으로 실행의 가치에 대해서도 폄하할 수 없습니다. 원래 완전히 새로운 기획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사람 생각하는게 비슷해서 디테일은 달라도 비슷한 기획은 이미 많습니다. 따라서 완전히 Original인 기획도 없습니다. 회사 상황과 리소스, 시장의 타이밍에 맞게 좋은 실행을 하는 것도 사업기획자로서 굉장히 큰 덕목입니다. 어쩌면 기획 문서쓰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일입니다. 완전히 새로운 본인만의 기획을 실행한다는 환상을 버리시고 아이디어를 어떻게 실행하고 검증할 것인지가 직무의 본질이라는 점을 생각해야 합니다. 



③ 어려움은 문제가 아니다. 이 산업의 문제와 소비자에게 애정을 가질 수 있을지를 살펴보자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사업은 원래 어렵습니다. 이 사업 뿐만 아니라 다른 사업도 다 어렵습니다. 

자신의 기획이 담긴 제품을 출시/런칭하는 것에 대해 지나친 환상을 갖게되면 이미 시장에서 유저를 확보한 제품/사업에 대해 회피하게 됩니다. 그리고 주로 핑계를 대는게 ㅇㅇ사업은 ㅇㅇㅇ한 이유로 제한이 많아서 내가 할게 별로 없다고 생각합니다.


직무 고민 관련 들었던 말 중에 제일 안타까웠던 말은 "ㅇㅇ 사업은 서비스가 시작된지도 오래되어 회사 안에 히스토리도 많고, 산업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이 많다. 진입 장벽이 높아서 일하다 보니 고민이 된다" 였습니다. 

 원래 산업마다 사업의 기회는 좁습니다. 그게 쉽게 보였으면 이미 누가 다 하고 있을 겁니다. 그러니 산업에 대해 본인만의 view가 필요합니다. 그 view는 기존 다른 산업에 대한 view를 기반으로 확장할 수도 있고, 다른 삶의 경험에서 확장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모두가 없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 시간을 효과적으로 줄이는 방법은 실제로 겪어보고, 겪어본 사람들에게 배우고, 헤리티지가 쌓여 있는 데서 배우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맨땅에 헤딩하는 것은 오래 걸리지만 누군가의 시행착오를 배우는 건 상대적으로 빠릅니다. 그러니 회사 내 헤리티지가 많은 게 결코 안 좋은게 아닙니다. 오히려 장점입니다. 회사 내에 헤리티지가 없다면 다들 모르기 때문에 삽질의 시간이 더 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삽질의 시간이 잘못 길어지게 되면 결과는 없고 시간만 간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본인이 아직 산업에 대한 view가 없다고 "아 이 산업은 나랑 안 맞나보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오만한 생각일지 모릅니다. 산업에 대해 핑계를 대기보다는 해당 산업을 내가 좋아할 수 있을지, 해당 산업의 문제가 내 커리어를 투자할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고민하는게 훨씬 더 건강한 고민이라고 생각합니다.


#3

 개인적으로 사업기획자 직군은 위에서 얘기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매력이 있는 직군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지극히 현실적이며서 "스톡데일 패러독스"를 항상 마음속에 새기면서 살아가야 할 뿐인 것 같습니다. 어쩌면 낙관하되 실망하지 않는 마음을 가지지 않고서는 맨 정신으로 버티기 힘든 직군일지도 모릅니다. 


 다른 여느 전문가들의 분야처럼 진짜 잘하는 사업 기획자는 드뭅니다. 저도 이런 글을 썼지만 속으로는 매일매일 생각합니다. 너무 스스로에게 실망하지 말고 차근차근 하나씩 극복하고 성장해나가 보자고. 다들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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