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라고 쓰고, 태도라고 읽는다.
2011년 2월부터 2012년 2월까지, (참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무엇을 시작하게 되거나 끝나는 것이 항상 생일이 있는 2월쯤이다.)
친구의 아버지 회사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경기는 늘 힘들었고, 중소기업은 젊은 사람들이 기피하는 분위기 었기 때문에 일 손은 늘 부족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형편이 어려워지기도 했거니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가장’이 되었다는 자각을 하기 어려워 스스로 몰아세운 경향도 있었을 것이다. 그 회사는 현대 자동차의 하청의 하청의 하청…. 아무튼 몇 가지의 자동차 부품 뼈대를 만드는 회사였고, 나의 첫 임무는 뾰족하게 튀어나온 불량품을 평평하게 갈아내는 일이었다. 추운 겨울이었고, 하루에 몇 천 개의 같은 모양의 쇠붙이의 같은 자리에 난, 같은 티끌을 같은 자리에 앉아서 같은 자세로.
일 할 사람이 워낙 없었던 터라, 세 달이 채 안돼서 나는 사무실과 현장 사이의 업무를 바꿔가며, 납품, 생산, 수정 등의 거의 모든 업무를 맡게 되었고, 심지어는 지게차까지 몰 수 있게 되었다. 정신없이 바쁘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반복 작업이었다. 멍하게 운전하기 일쑤였고, 생산이라는 말도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같은 속도로 버튼을 누르고 제품을 빼내는 기계처럼 움직이는 일이었다. 어쩌면 그 반복된 시간 속에 아버지처럼 세상을 스스로 떠나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이 똬리 틀었다. 정말 온종일 행복에 대해서 고민했다.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까. 과연 돈이 행복을 만들어 내는 걸까.
그 기간에 불행하다는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다. 나름 가장 노릇을 하고 있다는 보람도 있었고, 25살이란 나이에 거래처에 납품을 다니며 어른이 되었다는 착각도 꽤나 구수했다. 몇 개월 일 했을 무렵, 나는 거래처에 1명씩 어느 정도 친분이 쌓인 담당자들이 생겼는데 도저히 혼자서 행복을 가늠해보기가 어려웠다. 모르면 더 살아온 사람들한테 물어보면 되지 않을까 싶어, 그 담당자들을 만날 때마다 물었다.
행복하세요?
모든 거래처의 사람들 만날 때마다, 어려운 나의 처지를 모르는 타인이면서 이제는 인사 정도를 건넬 수 있는 사이의 사람을 만날 때마다 질문했다. 처음엔 미친놈 취급을 받았다. 실없는 놈, 허허 웃기도 했고,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기만 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나의 질문이 두세 번 반복되고, 진지한 나의 표정에 사람들은 하나 둘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행복하냐는 질문을 털어놨는데, 사람들은 자신이 행복할 수 없었던 이유를 답했다. 그리고 그 모든 사람에게는 행복했던 과거가 있었다. 나에게 삶은 행복하기 쉽지가 않다 하였다. 인생의 선배로써 근엄하게 조언을 할 때는 자신처럼 살지 말라는 식이었다. 마치 여러 소행성을 여행하는 어린 왕자가 된 기분이었다.
사실 내가 대기업 취업률이 90%가 넘는 '냉동공조 공학과'를 졸업하고도 회사에 취직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 것은 사실 이때의 경험 때문이었다. 엉뚱한 나의 결론은 '회사를 다니면' 행복하지 않구나, 였으니까.
하지만 내가 그들의 나이가 되어보니, '행복하세요?'라는 질문은 참 나쁜 질문이란 것을 깨닫는다. 대부분의 사람들, 혹은 나만의 생각일지도 모르나 '행복'은 마치 최고의 무언가로 착각하고 있었다. 당신은 최고의 삶을 살고 있냐고 묻는다면, 누구나 더 나은 삶과 현재의 삶을 비교하고 고개 숙일 것이다. 아주 긍정적인 사람을 제외하고 말이다. 사실 행복이라는 것은 일시적인 감정이다. 하지만 도무지 만족할 줄 모르는 것은 한국 사람의 종특인지, '이것보다 더 행복할' 방법을 찾는 것 같다.
행복하냐는 질문 대신 어떤 물음을 던져야 할까. 삶에 대해 야박한 관점을 가지고 있던 나는 그 질문에서 한걸음 벗어나는데 10년이 걸린 셈이다. 30대에 접어들며, 더 이상 행복을 좇지 않고 '활력'을 주는 일과 사람 곁에 머물기 위해 애썼다. 조금은 더 구체적이고 현재에 가까워지는 것이 느껴졌고, 나의 모든 과거와 미래는 현재의 다른 이름이라는 말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밥을 먹을 때, 식사 후 해야 하는 일을 고민하며 허겁지겁 먹는 것보다 당연히 천천히 음미하면서 먹는 것이 맛있고, 행복할 것이다. 계획적인 미래도 좋지만, 쫓기지 않고 음미하면서 산다면 삶도 그럴 것이다.
'평소 밥 먹을 때 맛있으세요?'라는 멍청한 질문보다는 '지금 먹는 것 어떤 맛이에요?'가 맞는 것 같다.
삶엔 여러 가지 맛이 있다. 당신은 어떤 맛을 좋아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