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민 May 26. 2022

행복하세요?

마음이라고 쓰고, 태도라고 읽는다.

2011년 2월부터 2012년 2월까지, (참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무엇을 시작하게 되거나 끝나는 것이 항상 생일이 있는 2월쯤이다.)

친구의 아버지 회사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경기는 늘 힘들었고, 중소기업은 젊은 사람들이 기피하는 분위기 었기 때문에 일 손은 늘 부족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형편이 어려워지기도 했거니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가장’이 되었다는 자각을 하기 어려워 스스로 몰아세운 경향도 있었을 것이다. 그 회사는 현대 자동차의 하청의 하청의 하청…. 아무튼 몇 가지의 자동차 부품 뼈대를 만드는 회사였고, 나의 첫 임무는 뾰족하게 튀어나온 불량품을 평평하게 갈아내는 일이었다. 추운 겨울이었고, 하루에 몇 천 개의 같은 모양의 쇠붙이의 같은 자리에 난, 같은 티끌을 같은 자리에 앉아서 같은 자세로.


일 할 사람이 워낙 없었던 터라, 세 달이 채 안돼서 나는 사무실과 현장 사이의 업무를 바꿔가며, 납품, 생산, 수정 등의 거의 모든 업무를 맡게 되었고, 심지어는 지게차까지 몰 수 있게 되었다. 정신없이 바쁘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반복 작업이었다. 멍하게 운전하기 일쑤였고, 생산이라는 말도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같은 속도로 버튼을 누르고 제품을 빼내는 기계처럼 움직이는 일이었다. 어쩌면 그 반복된 시간 속에 아버지처럼 세상을 스스로 떠나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이 똬리 틀었다. 정말 온종일 행복에 대해서 고민했다. 어떻게 살아야 행복할까. 과연 돈이 행복을 만들어 내는 걸까.


그 기간에 불행하다는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다. 나름 가장 노릇을 하고 있다는 보람도 있었고, 25살이란 나이에 거래처에 납품을 다니며 어른이 되었다는 착각도 꽤나 구수했다. 몇 개월 일 했을 무렵, 나는 거래처에 1명씩 어느 정도 친분이 쌓인 담당자들이 생겼는데 도저히 혼자서 행복을 가늠해보기가 어려웠다. 모르면 더 살아온 사람들한테 물어보면 되지 않을까 싶어, 그 담당자들을 만날 때마다 물었다.


행복하세요?


모든 거래처의 사람들 만날 때마다, 어려운 나의 처지를 모르는 타인이면서 이제는 인사 정도를 건넬 수 있는 사이의 사람을 만날 때마다 질문했다. 처음엔 미친놈 취급을 받았다. 실없는 놈, 허허 웃기도 했고,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기만 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나의 질문이 두세 번 반복되고, 진지한 나의 표정에 사람들은 하나 둘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행복하냐는 질문을 털어놨는데, 사람들은 자신이 행복할 수 없었던 이유를 답했다. 그리고 그 모든 사람에게는 행복했던 과거가 있었다. 나에게 삶은 행복하기 쉽지가 않다 하였다. 인생의 선배로써 근엄하게 조언을 할 때는 자신처럼 살지 말라는 식이었다. 마치 여러 소행성을 여행하는 어린 왕자가 된 기분이었다.


사실 내가 대기업 취업률이 90%가 넘는 '냉동공조 공학과'를 졸업하고도 회사에 취직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 것은 사실 이때의 경험 때문이었다. 엉뚱한 나의 결론은 '회사를 다니면' 행복하지 않구나, 였으니까.


하지만 내가 그들의 나이가 되어보니, '행복하세요?'라는 질문은 참 나쁜 질문이란 것을 깨닫는다. 대부분의 사람들, 혹은 나만의 생각일지도 모르나 '행복'은 마치 최고의 무언가로 착각하고 있었다. 당신은 최고의 삶을 살고 있냐고 묻는다면, 누구나 더 나은 삶과 현재의 삶을 비교하고 고개 숙일 것이다. 아주 긍정적인 사람을 제외하고 말이다. 사실 행복이라는 것은 일시적인 감정이다. 하지만 도무지 만족할 줄 모르는 것은 한국 사람의 종특인지, '이것보다 더 행복할' 방법을 찾는 것 같다.


행복하냐는 질문 대신 어떤 물음을 던져야 할까. 삶에 대해 야박한 관점을 가지고 있던 나는 그 질문에서 한걸음 벗어나는데 10년이 걸린 셈이다. 30대에 접어들며, 더 이상 행복을 좇지 않고 '활력'을 주는 일과 사람 곁에 머물기 위해 애썼다. 조금은 더 구체적이고 현재에 가까워지는 것이 느껴졌고, 나의 모든 과거와 미래는 현재의 다른 이름이라는 말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밥을 먹을 때, 식사 후 해야 하는 일을 고민하며 허겁지겁 먹는 것보다 당연히 천천히 음미하면서 먹는 것이 맛있고, 행복할 것이다. 계획적인 미래도 좋지만, 쫓기지 않고 음미하면서 산다면 삶도 그럴 것이다.

'평소 밥 먹을 때 맛있으세요?'라는 멍청한 질문보다는 '지금 먹는 것 어떤 맛이에요?'가 맞는 것 같다.


삶엔 여러 가지 맛이 있다. 당신은 어떤 맛을 좋아하는가.

작가의 이전글 우리 안에 없는 것은 절대로 우리를 흥분시키지 않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