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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민 Dec 20. 2024

현대인에게 비극을 선물한 희곡

희곡 모임에서 읽은 세일즈맨의 죽음

나와 여자친구가 함께 운영하는 ‘무수책방’에서는 일주일에 하루, 저녁 시간에 ‘희곡 사이’라는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배역을 나눠 희곡을 소리 내어 읽고 그 이야기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시간이다. 이 모임의 전신은 사실 2년 전쯤 내가 사는 집 다락방에서 시작했는데, 올해 3월부터 책방에서 정식으로 모임을 진행하게 되었다. 모임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온다. 그리고 어제의 모임에는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이 참가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연말이라 특별한 일을 자신에게 선물하고 싶었을까, 아니면 ‘세일즈맨의 죽음’이라는 작품 자체가 그들에게 어떤 특별한 에너지를 갖게 한 걸까. 사람들을 만나기 전에는 막연히 이 희곡의 제목이 직장인들의 마음 한 곳을 ‘긁’은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실제로 그래서 온 사람도 있는 것 같았지만, 만나서 이야길 나눠보니 반 이상의 사람들은 이미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희곡이 이 작품이라고.


나는 공대 출신의 배우로 배움이 짧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물론 지금은 연기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고 꼭 전공으로 배워야만 현장에서 연기를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늘 갈증 났다. 희곡은 읽어도 읽어도 모자랐고, 그걸 함께 즐길 사람들이 필요해서 모임을 시작했다. 그리고 희곡에 대한 기억이나 감정이 휘발되기 전에 기록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일즈맨의 죽음

아서 밀러는 1949년에 이 작품으로 퓰리처 상을 수상했고,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희곡은 미국 경제 대공황을 배경으로 가장이며 세일즈맨인 윌리의 추락을 그린다. 윌리 개인의 추락만이 아니라, 아내, 그의 아들들 또한 모두 추락 중이다. 아니, 경제 대공황 속의 미국 사람들은 모두 추락 중이었을 것이다. 70년이 지난 2024년의 끝자락에 윌리보다는 어리지만 직장인 혹은 냉혹한 자본주의에게 한쪽 뺨을 내어줘 본 사람들이 모였다. 희곡 사이 멤버들은 각자 윌리의 아들인 비프와 해피, 아내인 린다, 그리고 윌리에게 감정이 몰입되었는지 한참을 생각했다. 사실 희곡이 생각보다 읽는데 오래 걸려서 한 둘 씩 도중 귀가하고 9명의 인원중 네 사람만이 끝까지 이야기를 함께했다. (이건 모임장의 불찰이었다.)


지금 극작을 하고 있다고 소개한 한 사람이 자신이 학부시절에 교수님에게 이 희곡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것이 생각난다며 소개한 말이 있다. ’이 희곡이 현대인들에게 비극을 선물했다.’ 덧붙여,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은 왕이나 영웅의 추락을 그렸지만 현대에는 더 이상 왕이나 영웅이 없기에 비극이 내 삶이 되는 경우는 없었다고. 이 희곡이 세상에 나오면서 많은 현대인들은 자신이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것을 실감케 했다는 말이었다. 이 대화는 조금 길게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20대에 연극으로 보았을 땐, 단지 가부장적인 윌리의 모습에 답답했었지만, 지금(그분의 나이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자식을 둔 부모 입장으로 윌리가 너무도 이해돼서 마음이 아팠고, 윌리에게서 자신을 발견했다는 이야기가 여러 사람의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이 이야기의 모든 갈등 요소를 두 배로 긴장시키는 도구가 등장하는데, 윌리가 가족들 몰래 자연스럽게 삶을 마감하고 싶어서 가스 밸브에 호스를 연결하여 차고에 흘려 놓는다. 자연스럽게 폭발해 삶을 중지하고 싶어서 그 호스를 히터 앞에 둔다. 린다는 윌리가 출근할 때마다 호스를 잠그고, 다른 가족들은 모른 척한다. 언제 집이 폭발할지 모르는 말 그대로 일촉즉발의 상황 속에서 큰 아들 비프와 윌리의 갈등은 모두의 부모를 생각게 했다. 14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자꾸 떠올랐다. 살아계셨다면 따뜻한 대화보다는 비극적 대화로 서로를 상처 주고 있었을까?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가족은 떨어져 있을수록 소중하고, 애틋하니까. 차라리 영원이 집으로 돌아오지 말라고, 린다가 비프에게 잔인한 말을 하는 것은 이런 진리를 깨닫고 있었으니까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극 중 신제품으로 나온 녹음기를 처음 마주하는 윌리가 공포에 떤다. 사람 목소리가 나오니까. AI가 우리의 질문에 답하고, 생각하고, 코딩이라는 알 수 없는 언어로 만들어지는 것을 생각하면 그때나 지금이나 세상은 변하고, 우리는 그것에 적응하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윌리는 지쳤다. 자본주의에, 그리고 너무 빨리 변하는 세상과 세상 사람들에. 그리고 세상 사람들 역시 변하는 세상에 각자 맞서 싸우느라 여력이 없다. 그들은 거의 동시에, 각자 다른 속도로 추락하고 있다.


우리의 삶은 죽음으로 나아간다. 삶은 끝없이 추락하는 과정이다. 수많은 죽음과 추락 중 어떤 하나를 골라 읽는 이 작업이 우리에게 울림을 주는 것은 우리 또한 그 속에 포함되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 추락하고 있지 않다고 믿고 있는 자에게 ‘너는 언젠가 네가 어찌할 수 없는 무력감을 느끼고 추락하게 될 거야.’라고 말하는 희곡. 함께 이야기하고 생각을 나눌 수 있었기에 상처와 동시에 위로를 받았기에 남은 감동이 긴 여운을 남긴다.


나는 추락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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