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나는 배우다
상처라는 필름을 영사기에 넣는다. 기계가 돌아가면 거뭇한 상처로부터 형형색색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이어 어두워졌다가 서서히 밝아지는 화면 가운데 ‘흉터’라는 글씨가 생겼다가 사라진다. 화면은 점차 더 밝아져 새하얀 눈밭이다. 카메라가 뒤로 빠지며 더 넓은 풍경과 함께 저마다 입에 눈에 장난기를 가득 담은 아이들이 뛰논다. 강원도 홍천의 새하얗고 소복한 눈. 일곱 살 평생을 한반도 가장 아래 시골에 살던 꼬마에겐 천국이었다. 그 짧은 다리에 무릎이라고 해봤자, 지금 생각해보면 두 뺨이나 되었을까. 하지만 그 장면은 내게 평생토록 남을 아름다운 것이었다. 심지어 그 눈 밭에 뿌려진 새빨간 피와 김이 모락모락 나던 장면까지. 여기까지가 나의 영화의 인트로 장면이다.
우리가 온몸에 머금은 ‘장난기’의 근원은 상상력에 있었다. 눈이 소복이 쌓인 폐가의 대문은(비록 주변은 정답고 따듯한 주택가였을지라도) 설원에서 발견한 거대하고 위험한 성문이었다. 녹색 페인트가 벗겨진 자리는 그간 다녀간 용사들의 피였으며, 그것은 우리가 그 대문을 손쉽게 지나갈 수 없다는 것을 암시했다. 우리의 상상 속의 상대는 대부분 어떤 사물인 경우가 많았는데(물론 그 사물을 조종하는 악당은 있기 마련) 사촌 형이 부리는 마법은 그 대문에 닿으면 살이 녹아버리는 무시무시한 것으로 변신시켰다. 당시엔 그런 대문이 많았다. 커다랗게 양쪽으로 열리는 형태의 대문과 그 안에 작게 열리는 일반 문. 공교롭게도 일반 문은 떨어져 나가고 없었고, 마치 우리는 줄넘기를 하듯 사촌 형이 문을 세게 밀면 작은 문 안 쪽으로 뛰어 지나가는 도전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쉽게 설명하면 서커스에서 불이 붙은 링 안으로 점프하는 사자를 상상해보면 좋을 듯 하다. 그때 위험을 즐겼는지, 혹은 상상력이 너무 뛰어나 우리의 감정까지 지배했는지 한동안 꽤나 긴장감이 높았고, 우리는 잔뜩 흥분해있었다. 결국 사촌형의 시간차 공격으로 나는 설원의 성에 들어가보지도 못한 채 성문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쳤다. 피가 꽤나 많이 흘렀다. 신기하게도 우리의 모험은 새하얀 눈을 녹이며 모락모락 김이나는 피로 더 박진감 넘치게 되었다. 아팠던 기억보다 선명한 흰 색보다 더 선명한 빨간 색이 너무도 예쁘게 남아있다.
마치 꿈에서 말도 안되는 스토리 전개가 이어지듯 두 번째 장르는 ‘스파이’물이었다. 아직도 나는 두근거리는 심장과 느려지는 듯한 병원 안 풍경이 기억난다. 그곳은 홍천의 어느 작은 외과였다. 찢어진 머리통의 아픔도 잊게 했던 긴장감은 ‘의료보험증’으로 인한 것이었다. 인터넷이 없던 그 당시엔 종이로 된 의료보험증을 가지고 병원에 가야 했다. 일곱 살의 꼬마가 혼자서 겁도 없이 울산에서부터 홍천까지 버스를 타고 간 터라, 의료보험증을 갖고 있을 리가 없었다. 머리통을 깨러 홍천으로 간 것은 아니었으니까.
작은 아버지의 순발력으로 나는 사촌 동생의 그것을 가지고 병원에 가게 되었고, 내 이름이 아닌 다른 이의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어쩌면 그것이 내 인생의 최초의 연기가 아니었을까. 이 글을 쓰면서 ‘혹시 이 사건 때문에 내가 연기를 하게 된 걸까.’하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에 웃음이 난다. 혹시나 들키면 어쩌나, 심장이 얼마나 두근거리던지. 처음 ‘김ㅁㅁ님~’ 하고 부르던 간호사 선생님의 부름에 엄청 큰 소리로 대답했다. 덜덜 떠는 내가 가여웠는지 의사 선생님도 머리를 꿰매며 가짜 이름을 불러댔다. 병원을 나와 내 이름을 되찾을 때까지 숨도 제대로 못 쉬었지만, 어쨌든 나는 내 배역을 거뜬히 해냈고, 의사 선생님께 들켜서 경찰에 잡혀가지도 않았다. 어쩌면 감옥에 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어렵사리 해낸 내 인생의 첫 배역.
‘인생은 조금 떨어져서 보면 희극’이라는 말이 한 편의 영화가 되어 내 왼쪽 머리통에 새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