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업과 부업, 남들과는 다른 해석
공방을 운영하며 뭐든 배우고, 그것을 가르치는 친구가 있다.
얼마 전부터는 이른바 ‘코칭’이라는 것을 배우기 시작하더니, 실습을 해야 한단다.
그렇게 시작된 카페에서의 1:1 코칭.
대화는 코칭을 신청(서류상으로는)한 내가 주제를 정하고 상담자가 대화를 끌어준다. 결과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코칭은 대만족이었다.
내가 생각한 상담은 상담자가 내담자를 이끌어 내주기 위해 갖은 감언이설(?)이 남용하고, 나를 평가하며 재단하는 게 아닐까 했다.
도대체 받아 본 적도 없는 상담에 대해서 무엇이 그리 부정적이었나, 생각해보면 약간은 방어기제가 발동한 것은 아니었을까.
주제는 ‘경제적 자유를 얻는 동시에 주업을 좀 더 능동적이고 연속성 있게 해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였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주제 합의 단계’라는 것을 거쳐서 본인이 어떤 이야기와 그 이야기를 통해서 얻고 싶은 바를 스스로 생각하게 한다는 것이다.
나는 상대가 별 질문도 하지 않고, 내가 했던 말을 반복해서 되물어주는 방식으로 혼자서 술술 상황을 설명하고 생각하더니 결론까지 도달했다.
그리고 스스로 얻은 답에 만족까지 하는 것이다. 약간은 어리둥절하면서 기분이 묘했다. 도중에 ‘이게 무슨 코칭이야, 나 혼자 원맨쇼 하고 있네.’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코칭이 끝나고 나서 든 생각은 어찌 되었건 혼자서는 그런 긍정적인 마무리를 짓지 못했을 거라는 것이다.
경제적 관점에서 보자면 돈을 더 많이 벌어다 주는 일이 주업이겠고, 용돈벌이 혹은 추가적 수익을 위해서 여유시간에 하는 일이 부업이겠다.
하지만 나는 죽어도 연기가 내 주업이고 싶어서 그 기준을 ‘경제적 관점’이 아니라 내 마음의 비율로 정했다. (혹은 미래 시점의 경제적 관점이랄까-)
나는 지난 9년 동안 스스로를 ‘배우’라고 소개하면서 하루 중 깨어있는 시간의 반 이상을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았다.
자세히 들여다보자면 더 많은 시간을 아르바이트에 할애하다가 9년 동안 차츰 그 시간을 줄여 9개월 전엔 아르바이트를 완전히 그만두었다.
물론 경제 상황은 처음에는 천천히, 그리고 최근에는 급속도로 좋지 않아 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상담을 통해 스스로 깨달았다.
스스로 배우라고 소개하면서도 늦은 밤까지 일을 하고 나면 내겐 늘 보상심리가 남아있었다. 어차피 잠은 늘 모자란 상태이니, 뭐라도 나를 위해서 해야 한다고 믿었다.
사실 나를 위해서라면 연기에 더 시간을 투자했어야 했지만, 어리석게도 나는 취미 부자가 되었다. 그림을 그리고, 체스를 두고, 보드게임 모임에 나가며 나는 내가 삶을 대하는 태도가 긍정적이며 잘 헤쳐나가고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하지만 부업이라 칭한 경제적 노동을 그만두고 나서 주업에 대한 ‘연속성’이 생겼다. 내 머릿속을 온통 연기하는데만 몰두하게 되면서 점차 빠른 발전, 혹은 발전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짧지만 하루에 한 번 연기에 대한 행동을 하고 나면 하루 종일 머릿속에 잔상이 남아 내 생각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이전에는 몰두할 다른 일을 하느라 연속성이 생기지 않았고, 한 번 끊어진 연속성은 다시 잇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서운 점은 연속성이 끊어졌다는 자각을 하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상담자는 친절하게도 “ 그 ‘연속성’이 단절되는 시간적 기준은 얼마나 되나요?”라고 타이밍 좋게 질문하며 나 스스로 개념을 세우고, 설명하며 이해하도록 도왔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부업은 연기를 하는 것에서 완전히 떠나 연속성이 끊어지지 않기 위해서 관련된 일로 한정하고 있다.
주 3회, 그룹 레슨을 진행 중이며 그중 1회는 무료로 진행하고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도 스스로 가치관을 설명하는 시간이 있었다.) 레슨을 늘리고, 추가적인 수입을 얻기 위해서 누군가의 밑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 스스로 사람을 모아서 돈을 버는 방식에 대해 설명하다 보니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결론 내리게 되었다.
사실 산다는 것은 소비의 연속이기 때문에 우리가 경제활동을 하지 않고 살 수는 없다. 우리는 얼마간 돈을 벌어야 할 것이며, 어느 이상 돈을 벌게 된다면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서 남는 시간에 무엇을 할 것인가 선택하며 살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돈’ 자체에 가치를 두고 산다고 싸잡아 이야기하는 것은 경솔한 생각일지 모른다.
그들은 가치관을 위해서 좀 더 많은 돈이 필요할지 모르나, 내겐 더 이상 그렇지 않다.
사랑하는 일을 위해서 그렇지 않은 일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역설적인 상황에 계속 자신을 남겨둔다면,
우리는 결국 사랑하는 일을 단지 사랑하는 ‘마음’으로만 남겨두게 될 것이다.
당장 사랑 않는 일을 그만두고, 가장 사랑하는 일에 몰두하라는 말은 어쩌면 폭력적으로 들릴지도 모른다. 10년이 조금 못 되는 시간 동안 내가 그랬으니까.
내 삶이 어떤지 이해도 못하면서, 마치 자신이 나보다 더 현명하다는 듯 내려보는 오만함이라고 침이라도 뱉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스로에겐 어떠한가.
사랑 않는 일을 그만두고, 사랑하는 일의 비중을 높이는 일은 ‘연속성’을 만들어주고 그 연속성의 힘은 생각보다 강하다.
나는 더 이상 취미를 찾지 않아도 된다. 보상심리도 없다. 차즘 작품이나 오디션 기회가 늘어가고 있는 것도 연속성의 산물이라고 믿는다.
사랑하는 일과 닿아있는 부업으로 근근이 생활하며 이상적 미래를 꿈꾸고, 나의 가치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 상담이었다.
스스로에게 얻은 답이라 더욱 값지고, 그 친구에게 고마웠다.
살아가는 힘은 스스로에게 얻을 때 가장 강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