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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루스 Mar 06. 2024

아버지를 조금 이해하게 됐다

아버지가 의심이 많았던 이유

내 기억에 아버지는 의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계약서 작성과 같은 서류 업무부터 사소한 송금까지 하나하나 의심하고 또 확인하신다. 내 기억이 맞다면, 아직도 스마트폰으로 계좌 송금을 하지 않고 직접 ATM를 방문해 송금하고 계신다.


어렸을 때, 아니 최근까지도 아빠의 ‘의심’을 이해하지 못했다. 문이 잘 잠겼는지, 옆 차를 건드리지 않고 잘 주차했는지 등을 수시로 상대방에게 확인하는

아빠에게 지쳤었고, 철이 없던 대학생 때는 아빠에게 큰 소리로 화도 냈었다. 한창 심리학을 전공하던 때라 얄팍한 지식으로 강박적인 아빠의 모습을 고치려는 위험한 짓을 하기도 했다.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아빠가 왜 그렇게 모든 것을 의심하고 또 의심하는지 왜 본인이 한 행동도 상대방에게 물어보는지 잘 몰랐다. 예전부터 문서 하나를 자를 때도 자로 칼 각을 만드는 아빠의 꼼꼼함이 강박으로 잘못 발전한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아빠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는 계기가 생겼다. 전세계약 만기로 이사할 집을 알아보고 계약서 작성을 진행하면서 나도 아빠처럼 똑같이 의심하고 확인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는 걸 알게 됐다.


내가 가장 싫어했던 아빠의 모습을 나는 왜 하고 있었을까? 내가 의심하고 확인하는 행동을 했던 이유는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하고 싶지 않아서다. 계약이 잘못돼서 금전적 피해가 발생하게 된다면, 나는 그걸 책임질 수 있는 여유가 안된다. 단 한 번의 실수도 해서는 일이라 더욱 확인하고 또 확인하게 됐다.


아마 아빠도 모든 것을 여러 번 확인할 때 그런 생각이지 않을까? 문단속을 잘못해서 도둑이 들거나, 옆 차를 긁어서 예상치 못한 지출이 생긴다면, 본인 실수로 가족들에게 피해를 준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부담을 본인이 고스란히 지시다 보니 강박적인 행동으로 나타났던 것 같다.


아빠를 닮았다는 말이 듣기 싫은 말 중에 하나였지만, 이제 다시 그 이야기를 들으면 아빠도 나만큼 부담을 많이 느끼셨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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