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퍼드의 ’브랜드코드:베타라이프’를 읽고
해 마다 10월 말에서 11월이 되면 '트렌드코리아'를 중심으로 많은 트렌드 서적이 출간된다. 트렌드 서적은 사회 현상을 키워드로 압축해 설명한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그러나 하루하루 빠르게 트렌드가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트렌드 키워드로만은 사회 현상을 분석하기 어려워졌다.
브랜드컨설팅 회사 프리퍼드는 '트렌드'대신 '코드'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트렌드는 특정 기간 동안 사회 전반에 걸쳐 유행하는 경향을 의미한다. 반면 '코드'는 특정 집단이나 계층이 공유하는 규칙이나 체계를 의미하는 말이다. 탈표준화 현상이 지속되고 있는 만큼 2026년을 예측하기 위해서 트렌드보다는 코드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프리퍼드는 '베타라이프'를 2026년의 코드로 제시한다. '베타라이프'는 게임 등 디지털 서비스에서 흔히 듣는 '베타테스트'의 처럼 테스트와 패치를 통해 삶을 지속적으로 개선해나간다는 의미다. 정답처럼 여겼던 커리어 패스나 삶의 성공 공식이 무너진 한국사회에서 베타라이프는 생존을 위한 선택이다.
책에서는 베타라이프를 설명하는 코드 5가지를 소개한다. 첫 번째는 '흔적의 효용성'이다. 베타라이프에서는 결과보다 과정이 더 중요하다. 불확실성이 높은 시대가 되며 사람들은 자기가 통제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작은 성취감을 느끼며 안정감을 느끼고 있다. 설사 실패하더라고 그 과정에서 남긴 경험이 나를 키우는 자산이라고 여기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 성장했다면 큰 의미가 있다고 여겨진다. 요즘 유행하는 '블로그 챌린지', '운동 크루', '모닝 커피 클럽 같은 커뮤니티' 모두 결과가 아닌 과정 자체에 의미를 두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증거다.
두 번째 코드는 '데이터 리추얼'이다. 데이터리추얼은 일상을 수치와 기록으로 꾸며가는 생활 습관을 말한다. 다양한 시도와 테스트를 해야하는 베타라이프 속에서 최대한 효율적인 환경을 만들기 위해 데이터를 활용한다. 불확실성이 높은 시대 속에서 자기 만의 안정감을 느끼기 위해서 데이터를 활용하는 경우도 많이 생겼다. 특히 웨어러블 기기의 발전으로 생활의 모든 면이 데이터 추적이 가능해지면서 데이터를 활용해 나만의 최적화된 패턴을 찾기 시작했다. 데이터로 생활을 관리하기 시작하면 명확한 숫자를 기반으로 삶을 바라보고 개선할 수 있다. 명확한 숫자를 통해 보이기 때문에 내 삶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더 나은 나를 위해 노력하게 된다.
세 번째 코드는 '인스턴트 네트워킹'이다. 한국에서 흔히 쓰이는 '시절 인연'라는 말이 여기에 해당한다. 예전에는 인맥과 네트워크가 깊은 관계를 통해서 만들어진다면 베타라이프 시대에는 각자의 필요에 따라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하는 인스턴트 네트워킹을 중심으로 관계가 개편되고 있다. 각자가 필요한 만큼 서로에게 도움이 된 뒤 헤어지는 관계가 젊은 비즈니스인들을 중심으로 늘어나고 있다. 무엇보다 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 디지털 중심으로 비즈니스 네트워크의 축이 이동했고, 링크드인/리멤버와 같은 디지털 플랫폼들이 인스턴트 네트워킹을 활발하게 만들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문화인 커피챗도 이런 분위기를 타고 젊은 실무자들 사이에 펴지고 있다. 장기적인 관계가 도움이 되지 않고, 내 필요가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상황이 인맥 관계에서도 실리를 추구하도록 만든 것이다.
네 번째 코드는 '미숙함의 미학'이다. 따라지 못할 것 같은 완벽함보다 틀리고 실수가 있어도 서툴고 미완성된 과정의 아름다움에 주목하게 된다.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기 보다는 얼마나 솔직하게 과정을 드러내느냐가 더 중요해졌다. '미숙함의 미학'은 그동안 인스타그램을 중심으로 쌓아올린 완벽함에 대한 반작용이다. 완벽한 모습들이 콘텐츠로 소비되면서 진정성 있는 진짜 현실에 대한 갈증이 떠오르게 됐다. 실패를 성장으로 바라보는 기업 문화가 많아진 것도 사회 분위기에 큰 영향을 미쳤다. 오히려 완벽하게 보이는 사람이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는 것이 매력적인 것처럼 보이는 현상도 생기고 있다. 특히 완벽하게 무엇을 하는게 정답인지 아닌지 모르는 사회 속에서 '미숙함의 미학'은 대중들이 정서적으로 숨쉴 공간을 찾기 위한 본능적 선택이 트렌드화 된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 코드는 '나라는 공간'이다. 테스트 기반인 베타라이프에서는 개인의 역할이 많아지는 만큼, 나를 어떤 상태로 바꿔줄 수 있는지 공간이 떠오르고 있다. 공간에 대한 관점이 소유보다는 경험으로 변화하며 의미있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중요해지고 있다. 집값 상승 등 예전보다 공간을 소유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개인의 창의성과 상상력으로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내려는 적응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의 시사점은 베타라이프가 한국 사회의 코드가 되며 '과정'이 중요해졌다는 점이다. 브랜드는 미숙한 모습을 보여주기 어려워한다. 그러나 불확실성이 높아진 사회에서 소비자들은 완벽한 것보다 조금은 미숙하더라도 함께 과정을 공유하는 브랜드들을 선호한다. 많은 인디브랜드들이 제작 서사를 공유하고, 그 서사로 인해 팬덤을 만드는 과정 역시 이런 코드에 기반한 전략이다.
불안감과 불확실성은 브랜드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 불확실성을 느끼는 대중들의 감정을 터치해 우리 브랜드를 어떤 방식으로 노출시킬지 전략을 세워볼 필요가 있다. 불확실성은 소비자들의 지갑을 닫는 위기가 아니라 우리 브랜드의 메시지를 받아드릴 준비가 된 타깃들이 더 많아졌다는 기회다. 우리 브랜드는 베타라이프 속 사람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