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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sueproducer Apr 11. 2020

[Ep2-11]남양주는 야구하기에 참 좋지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문학기행, 열한번째 이야기

조성훈은 주인공이 IMF나 경제 위기, 퇴직을 맞이한 것이, 그래서 세상에 진 것이 결코 부끄러운 게 아니라고 설득한다. 그리고 캐치볼이나 하자며 주인공을 다시 햇빛 아래에 설 수 있도록 끌고 나온다.


그랬다. 아주 오래전 우리는 늘 이런 식으로 공을 주고받았다. 최대한의 거리를 유지하기 전까지 다이렉트로 공을 주고받다가 그 다음엔 플라이 볼, 그 다음엔 원바운드 투 바운드 순의 땅볼들을 상대에게 던져주었다. 기억을 따라 나는 글러브를 치켜올렸고, 공을 따라 공을 따라 시선은 허공으로 올라갔다. 그때였다. 매미들의 울음이 갑자기 멈춘 것은, 그리고 공이 시야에서 사라진 것은. 그 대신 나는 무언가 거대하고 광활한 것이 내 머리 위에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하늘이었다.
말도 안되게 거대하고 광활했으며, 맑고 투명했으며, 눈이 부시도록 푸르고 아름다웠으며, 직장 생활을 시작한 후로 처음 본 하늘이었다. 그만 나는 움직일 수 없었고, 내가 무엇인지를 망각했고, 내가 어디에 속해 있는지, 나의 계급이 무엇인지를 잊어버리고 말았다. (p.256)


야구를 해보자. 공과 하늘과 나만이 존재하게 된다.


오랜만에 하늘을 보며 주인공이 자신이 이유 없이 서두르기만 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을 깨닫자, 조성훈은 이때다 싶었는지 엄청난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한다. 프로야구가 시작됨에 따라 세상에서 모두가 프로가 될 것을 종용하였고, 동시에 프로가 못 되는 것은 능력부족이니 자신을 부끄러워하게 만들었다고 말이다. 그 바람에 모두가 경쟁을 통해서 더 많은 일을 하는 풍토가 만들어졌지만, 삼미 슈퍼스타즈만이 "야구를 통한 자기수양"을 내세우며 이런 풍조에 반기를 들었다고 설명한다. 한참 동안 이어지는 조성훈의 독백을 읽다 보면 설득이 되었다가 개똥철학이라고 코웃음이 나오다가 하며 갈팡질팡하게 된다.


그 <자신의 야구>가 뭔데?
그건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다>야. 그것이 바로 삼미가 완성한 <자신의 야구>지. 우승을 목표로 한 다른 팀들로선 절대 완성할 수 없는 끊임없고 부단한 <야구를 통한 자기 수양>의 결과야. (p.269)


이런 개똥철학에 은근히 설득당한 건 주인공도 마찬가지였던지, 주인공은 서울에서의 삶과 집을 모두 정리하고 남양주 변두리의 1층 단독주택으로 이사한다. 새로운 집을 정한 근거는 집값이 싸고 야구를 하기에 좋다는 것뿐이었다. 이 집에서 조성훈은 하루에 3시간만 일하면 아사를 면할 수 있다는 이유로 우유 배달을 시작하고, 주인공은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도 느긋하게 지낸다.


보는 순간 여기라면 삼미스러울 수 있겠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왼쪽의 한강부터 오른편의 야구장까지 완벽하다.


그런데 남양주에 가보면 저 마음을 진짜 이해할 거다. 서울에서 강변북로를 따라 동쪽으로 한참 달리다 보면, 도시의 색채가 점점 옅어진다 싶을 때쯤 갑자기 우측으로 탁 트인 공간이 나타난다. 이게 뭐야 싶어서 차를 돌리면, 한강을 따라서 길게 이어지는 공원과 야구장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좁은 틈에 꼭 끼워 맞춰야 하는 도시의 주차와는 달리, 이곳은 차들마저 주차선을 무시하고 삐뚤빼뚤 제멋대로 자리 잡고 있다. 아직도 떨떠름한 기분으로 걷다 보면 여기저기에 떨어진 야구공이 보인다. 헨젤과 그레텔처럼 야구공을 주워가며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잘 갖춰진 야구장의 홈 플레이트 위에 서 있게 된다. 이쯤 되면 탄성이 터져 나와야 한다.


"허, 여기라면 진짜 삼미스러울만 한데?". 펜스 뒤로는 한강의 풍경이 펼쳐지고, 시원한 바람이 스쳐 가며, 그 위로는 파란 하늘이 펼쳐진다. 이런 풍경 속에서 야구 경기를 한다면 이기고 지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애초에 패자 따위는 있을 수 없는 경기장이니까. 공과 친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주변을 슬렁슬렁 걸어 다녀도 좋고, 그마저도 귀찮다면 멀지 않은 곳에 그 전망을 내려다보며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카페도 많다.


그렇다고 대뜸 남양주로의 이사를 알아보지는 않았으면 한다. 조금 더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다. 카페에 앉아 있으면 주변에서 들려오는 이야기 때문이다. 내려다보는 풍경은 평화롭지만, 주변 사람들은 부동산 이야기만 하고 있다. 우연히 나란히 앉은 옆자리 손님은 초등학생쯤 되는 자녀를 둔 학부형 모임이었는데, 자리를 잡는 순간부터 떠날 때까지 그 동네 부동산 시세에 관한 이야기만 억억 하다가 갔다. 저 책이 쓰일 때쯤에는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서울의 어지간한 집을 팔더라도 남양주에 가서 조성훈처럼 우유배달만 하면서 살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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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의 발췌는 개정판 3쇄를 기준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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