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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sueproducer Apr 10. 2020

[Ep2-10]삶은 야구라기보단 신도림역 같은 것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문학기행, 열번째 이야기

많은 사람들이 인생을 야구에 빗대곤 한다. 하지만 과연 정말 그런가. 인생에 비하면 야구는 아주 공정하고 신사적이다. 각각의 팀은 서로 돌아가면서 한 번씩 돌아가면서 공격과 수비의 기회를 가진다. 공 또한 갑자기 날아들지 않는다. 직구인지 슬라이더일지는 몰라도, 타자가 타석에 들어서서 타격자세를 잡으면 그제야 공을 던진다. 그동안 수비수들 역시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다. 실력이 부족하다면 벤치 신세를 면치 못하겠지만, 일단 선발진 명단에 들면 잘하든 못하든 상관없이 순서대로 돌아가며 타석에 올라가서 각자에게 적어도 3개 이상의 공이 공평하게 주어진다. 실력이 부족하면 공에 발 한 번 댈 수 없는 축구와도 다르고, 숨 쉴 틈 없이 공격과 수비가 몰아치는 농구와도 다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야구가 인생과 달리 얼마나 신사적이고 공정한지는 생각하지 않고, 야구가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말한다.


날아오는 공이 배트에 쨍!하고 정확하게 맞을 때의 짜릿함이 우리 인생에서는 몇 번이나 될까?


주인공의 삶 역시 처음에는 잘나가는 프로 야구선수처럼 탄탄하고 안정적인 것처럼 보였다. 학교를 졸업하니 대기업 취업의 문이 활짝 열려있고, 중매를 통해서 만난 부잣집 딸과 결혼한다. 심지어 장인어른이 서울에 28평짜리 아파트까지 구해준다. 하지만 이런 행운 속에서도 주인공의 마음은 삭막하기만 하다. 입사까지는 쉬웠지만 갑자기 닥쳐온 IMF의 위기 속에서 많은 동료가 자기 뜻과는 상관없이 해고당하고 있었고, 상사의 압박은 자신에게까지 이어진다. 애써 마음을 다잡을 때마다 그는 출퇴근길의 신도림역을 떠올렸다.


마음이 약해질 때면, 결혼 전의 신입 시절을 떠올렸다. 인천의 집에서 전철로 출근하던, 또 전철을 타고 인천으로 돌아가던 그 매일매일의 러시아워와 신도림역을, 나는 생각했다. 삶은 단순하다. 삶은 절대로, 복잡한 것이 아니다. 러시아워 때의 신도림역에 가보면, 누구나 삶이 무엇인지 뼈저리게 알 수 있다. 가봐, 다시 돌아가기 싫지? 내 속의 <나>가 소리 질렀다. 자, 일어나자. <나> 밖의 내가 푸시맨처럼 <나>를 떠미는 완력을, 나는 느꼈다. 언제나, 느끼곤, 했다. 그해의 6월은 그렇게 가고 있었다. 문이 막 닫히려는, 신도림의 전철처럼 그렇게 급박하게, 그러나 정지한 것처럼, 선명하게. (p.221)


서울에서 출퇴근길을 겪어보지 않았다면 신도림역이 얼마나 끔찍하기에 이렇게 말하나 궁금해할 것이다. 먼저 신도림역에는 사람이 정말 많다. 신도림역이 1호선과 2호선 이렇게 두 개의 주요 노선이 지나는 환승역이기 때문이다. 출퇴근길에 신도림역에서 내리고 타는 사람들의 물결에 휩싸인다 보면 인간의 존엄성 따위는 바닥에 짓밟히게 된다.


무엇보다 몇 개의 길이 있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혼란스럽다는 점에서 신도림역은 인생과 비슷하다. 1호선과 2호선 모두 가지 노선이 시작되는 지점이기 때문에 미묘하게 다른 방향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여기저기 붙어 있다. 익숙하지 않은 방향으로 가야할 때면, 내가 제대로 된 방향의 이정표를 쫓아가고 있는지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실내에 있기 때문에 휴대폰 어플도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처음 신도림역에서 환승을 하던 날을 잊을 수 없다. 나름 중요한 일이 있는 날이라 시간적 여유를 넉넉히 갖고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신도림역에서 환승을 해야 하는데 낯선 지명이 여기저기 붙어 있는 걸 보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울 것 같은 기분을 꾹 참고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겨우 원하던 플랫폼을 찾아갔다. 제대로 찾아왔다는 안도감을 갖고 지하철에 타고 있었는데, 내려야 할 역에서 정차하지 않고 그냥 지나가는 것 아닌가. 나중에 알고 보니 그건 급행열차였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되며, 꼭 빨리 가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는 점마저도 인생과 같지 않은가.


인생을 알고 싶다면 출퇴근 시간의 신도림역으로 가보자.


주인공도 마찬가지였다. 남들이 옳다고 말하는 방향대로 잘 성장하는 듯했지만, 그 과정에서 지쳤던 아내와는 헤어졌고 심지어 3차 구조조정의 대상자임을 통보하는 메일을 받고 만다. 그렇게 인생의 방향과 속도를 잃어버린 주인공의 곁을 갑자기 누군가가 돌아와서 지킨다. 바로 왕년의 삼미 슈퍼스타즈 어린이 팬클럽 전우, 조성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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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의 발췌는 개정판 3쇄를 기준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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