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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sueproducer Apr 12. 2020

[Ep2-12]잘 나가다가 삼천포에 빠졌다고?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문학기행, 열두번째 이야기

진짜 인생다운 인생이 있는 곳을 찾는다면, 또 다른 후보지역이 있다. 바로 책 속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사람들이 여름전지훈련을 떠난 곳이다. 조성훈은 주인공 주변 사람들을 부추겨서 아마추어 야구단을 결성한다. 야구단 단원마다 야구에 관한 관심도 실력도 천차만별이지만, 너무 열심히 하지 말아야 한다는 조성훈의 말만큼은 모두가 따르려고 노력한다.


너무 열심히 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니. 이게 말인가 방구인가 싶다. 하지만 이런 아이러니는 우리 삶에서 흔히 일어난다. 직장인 몇이 모여서 커피 한 잔 마시며 회사 일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하다 보면 대화의 끝은 언제나 "적당히 해! 어차피 일 더한다고 돈 더 안 줘!"다. 근데 이 사람들이 직장으로 돌아가면 희한한 일이 벌어진다. 일이 자기 뜻대로 안 되면 화를 내고, 감정이 상하는 순간에도 버티고, 더 큰 성과를 이루기 위해 애쓴다. 적당히 하라는 말을 했던 사람마저도 같이 일하는 사람이 진짜 "적당히"만 일하면 오히려 그 사람을 비난한다.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잘 되짚어보면 도덕 교과서에서 근면・성실해야 한다고 배웠고, TV에서는 해가 뜨기도 전에 1등으로 도서관에 들어가는 학생을 인터뷰했다. 하다못해 듣는 노래만 해도 TOP100만 듣지 않나. 그렇다 보니 우리가 표준이라고 믿는 삶은 사실 평균 이상인 그런 요지경 세상을 살고 있는 거다.


그래서 책 속의 사람들도 "삼미스러운" 야구를 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달리기 속도는 더 빨라야 할 거 같고, 상대편이 친 공이 아슬아슬하게 날아오면 몸을 던져서 수비해야 한다는 생각이 본능처럼 도사리고 있다. 그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조성훈이 단원을 찾아가서 조용히 타이른다. 적당히 하라고.


그러면서도 남들 하는 건 다 하고 싶었던 건지, 그들도 전지훈련을 준비한다. 어디로 갈까 고민하며 지도를 들여보다가 만장일치로 결정한 곳은 바로 "삼천포"다. 삼천포가 삼미의 철학에 절대적으로 부합한다는 말에 절대적으로 동의한다. 벌써 유행 지난 표현이 돼버렸지만 "삼천포에 빠졌다"고 말하면 이야기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거나, 어떤 일이 엉뚱한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니까. 말하는 내용이나 의사결정이 도통 종잡을 수 없다는 점에서 이 야구단 사람들은 항상 삼천포에 빠져있다.


그런데 이 표현을 쓰는 것이 조금은 조심스럽다. 심지어 "삼천포에 빠졌다"는 말이 비속어로 분류되어 있기 때문에 방송에서도 쓸 수 없다. 삼천포 사람들은 이 표현이 너무 싫어서 지명을 바꿔달라고 요구하더니, 사천군과 통합을 하게 되면서 사천시라는 이름을 받아들였다. 대부분 지역은 통합 과정에서 서로 자신의 이름을 지키기 위하여 노력한다. 2010년에 마산과 진해가 창원시로 통합될 때에도 창원시의 이름으로 합쳐지는 것에 대해서 엄청난 반대가 있었다. 오죽하면 2018년에 NC다이노스 야구팀의 홈구장에 "마산"이라는 이름을 넣어달라는 기자회견까지 있었을까. 이에 비하면 삼천포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편안하게 사천이라는 이름을 받아였음을 알 수 있다. 사천시로 통합될 만큼 삼천포라는 표현을 싫어했던 거다.


그래도 삼천포의 역사를 생각하면 괜히 섭섭하다. 삼천포라는 이름은 무려 고려 시대부터 이어졌기 때문이다. 고려 시대부터 이 지역에는 포구가 발달했었기 때문에, 인근 지역에서 세금으로 낼 쌀을 모아두는 창고가 있었다. 이 창고로부터 고려의 수도 개경까지 거리가 뱃길로 3,000리이기 때문에 삼천포가 되었다고 한다. 이제는 사천시가 되었으니 4,000리 거리에 뭐가 있는지 찾아봐야 하나. 아니면 둘이 합쳐 7,000리 거리를 봐야 할까.


마산과 순천을 연결하는 경전선, 그리고 삼천포에 빠졌다는 말의 시초가 된 진삼선 노선도


하지만 삼천포가 “삼천포에 빠졌다”라는 표현으로 알려진 것은 기차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오래된 포구인데도 유명세는 배가 아니라 기차 때문에 얻었다니 굉장한 역설이다. 한반도의 제일 남쪽 끝을 따라 경상도와 전라도를 연결하는 기차노선이 있다. 경상남도 밀양시와 광주광역시를 연결하는 경전선이다. 말 그대로 경상도와 전라도를 연결한다고 해서 경전선이라고 불린다. 경전선은 경상도의 밀양(혹은 부산), 마산, 진주를 거쳐 전라도의 순천, 보성, 광주를 연결하는 주요 노선이다. 그중에서도 마산에서 순천역 사이는 지금도 하루에도 네 번씩 기차가 오간다.


그렇다보니 주변의 소도시로 향하는 기차 노선은 경전선을 중심으로 가지 치듯 빠져나온다. 삼천포를 연결하는 기차노선도 마찬가지여서, 마산이나 순천에서 기차를 타고 삼천포로 가기 위해서는 경전선을 따라가다가 진주에서 삼천포행 진삼선 기차를 타야 했다. 하지만 반드시 환승을 할 필요는 없었다. 경전선과 진삼선을 오가는 열차는 복합열차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마산에서 출발해서 순천을 간다면, 순천행과 삼천포행 열차를 앞뒤로 연결해놓았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오다가 진주에 도착하면 두 열차를 연결하던 고리를 분리하여, 앞차는 계속 순천으로 달리게 하고 뒤차는 삼천포로 내려보냈던 것이다.


그렇다 보니 순천을 가려던 사람이 기차 뒤칸에 앉아 세상 모르고 자다가 신을 차려보면 삼천포에 와있는 것이다. 말 그대로 잘 가다가 삼천포로 빠진 게 아닌가. 반대 방향으로 순천에서 마산으로 가는 기차 노선도 같은 방식으로 운영되었고, 같은 일이 자주 벌어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표현의 근원이 된 진주의 개양역과 삼천포역은 이제 찾아볼 수 없다.  진삼선을 이용하는 사람의 수가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노선이 폐쇄되었기 때문이다. 철길은 거의 그대로 남아있지만, 현재는 인근에 있는 공군기지로 물건을 보급하는 목적으로만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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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의 발췌는 개정판 3쇄를 기준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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