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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ssueproducer Apr 15. 2020

[Ep2-15]하이(High)해지려면 하이(Hi)면으로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문학기행, 열다섯번째 이야기

야구단 사람들도 이곳의 매력에 푹 빠졌나 보다. 전지훈련이라는 핑계를 댔지만, 훈련보다는 이곳만의 편안함에 녹아들고 말았다.


우리가 짐을 푼 곳은 삼천포항에서 조금 떨어진 ‘하이면’이라는 이름의 해변 마을이었다. 보기에 따라 아름다울 수도, 생각하기에 따라 그저 그럴 수도 있는 한적한 시골이다. 작은 학교가 있고, 작은 우체국이 있고, 작은 농협이 있고 ,작은 집들이 있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 어마어마한 크기의 논과, 하늘과, 바다가 있다. (p.294)


주인공의 야구단이 전지훈련 기간 동안 머물렀던 동네는 하이면이라고 했다. 사실 하이면은 행정구역 상 예전의 삼천포나 지금의 사천시에 포함되지 않는다. 고성군 하이면이다. 다만 남일대 해수욕장에서 하이면사무소까지 큰길을 따라서 2km 정도밖에 되지 않는 워낙 가까운 거리이다 보니 하이면에 숙소를 두고, 남일대 해수욕장까지 훈련하러 다닐 수 있었던 것이다.


하이면은 책의 표현 그대로 없는 거 빼고 다 있다. 하이면사무소가 위치한 사거리는 2차로의 도로가 서로 교차하는 길이다. 이곳에 서서 한 바퀴 삥 둘러보면 하나로마트, 편의점, 농협, 파출소, 우체국, 방앗간, 초등학교, 체육공원, 농협까지 눈에 띈다. 이곳 사거리에 말 그대로 없는 거 빼고 다 있는 거다. 심지어 요거트처럼 상큼한 향과 부드러운 질감을 가진 막걸리를 만드는 양조장까지 있다. 공장문 열고 들어갈 용기만 있다면 단독 900원으로 그날 아침에 만들어진 싱싱한 막걸리 한 통을 살 수 있다. 하이면에서 만들어지는 막걸리니까 이름도 순수하게 하이생막걸리다! 부드럽게 넘어가는 막걸리를 딱 한 통만 비우면 여기저기 하이(Hi)라고 인사를 걸넬만큼 기분 좋게 하이(High)해진다.


하이면의 우체국은 하이우체국, 파출소는 하이파출소, 초등학교는 하이초등학교!


이렇게 길만 건너면 아주 다른 특징을 가진 새로운 지역이 나타나는 것이 지방 소도시의 매력일 것이다. 삼천포가 포함된 사천시는 길만 건너면 고성이고, 삼천포대교를 건너면 바로 남해지만, 서쪽으로는 하동과 옆구리를 맞대고 있고, 조금만 북쪽으로 가면 진주시가 있다. 반대편 지역 끝으로 이동하는데 한 시간 정도면 충분하니까 삼천포에 빠졌다가도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고, 근처 지역에 왔다가도 삼천포에 빠질 수 있다.


어허, 혹시 컨추리사이드의 아기자기함은 자신과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가. 그것도 걱정 말자. 도시인이 바다의 매력을 즐길 수 있는 시설도 얼마든지 있다. 일단 세계에서 유일하다고 말하는 바다가 보이는 영화관이 삼천포에 있다. 상영관에 들어가면 한쪽 면 가득 바다가 펼쳐진다. 넓고 편안한 리클라이너 좌석에 앉아서 바다의 풍경을 감상하다가, 이어서 영화까지 볼 수 있다. 리조트 내부에 있는데다가 좌석 하나하나가 넓은 공간을 차지하다 보니 좌석이 몇 개 없다. 그러니 바다와 함께 영화를 보고 싶다면 예매를 하는 것이 좋을 거다. 예매에 실패하더라도 너무 슬퍼할 필요는 없다.


이 주변에는 비슷한 뷰를 가진 카페가 몇 개 더 있다. 서쪽 바다를 향해 통창을 낸 카페가 드문드문 이어진다. 신발에 모래 들어가는 게 싫거나, 시골 풍경 구경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커피를 홀짝이며 붉게 타들어 가는 바다 풍경을 내려다보는 것은 마다하지 않겠지.


사실 주인공과 야구단 사람들이 이 동네를 좋아한 이유는 조금 달랐다. 주인공은 저곳에 “인간의 여러 가지 기준들을 한순간 달라지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했다. 항상 목표 이상의 목표를 쫓느라 몸과 마음이 모두 바쁜 현대 사회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삶이 있다고 말이다.


예를 들어서 하이면에 있는 거의 모든 가게는 해가 지면 문을 닫는다. 어딜 가나 연중무휴 24시간 불을 밝힌 편의점에 익숙해져 있던 야구단의 흡연자는 마음을 놓고 있다가, 밤중에 담배가 떨어지자 30분 거리의 시내까지 운전을 해가야 했다. 낮이 된다고 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삼천포에는 목표를 향해 전전긍긍하며 뛰어다니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해가 뜨면 딱 해야할 만큼의 일만 하고 해가 지면 잠자리에 드는, 삼미 슈퍼스타즈의 야구와 같은 삶이 있을 뿐이다. 야구단은 그곳에서 일주일을 보내며 온몸으로 삼미 슈퍼스타즈의 야구를 이해하게 되었다.


이렇게 삼천포의 매력을 줄줄이 쓰다 보니 “삼천포에 빠졌다”는 말의 또다른 의미가 보이지 않는가? 바로 "삼천포의 매력에 빠졌다."는 것 말이다.


삼천포에는 컨추리사이드의 아기자기함뿐 아니라, 바다가 보이는 영화관도 있고 아름다운 뷰를 가진 카페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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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의 발췌는 개정판 3쇄를 기준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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