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ssueproducer Apr 16. 2020

[Ep2-16]삼천포에 빠지는 건 멋진 일이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문학기행, 열여섯번째 이야기

우리 사회는 잘 나가는 것에만 관심 있다. 소속과 계급이 그 사람을 전적으로 결정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잘나가다 삼천포로 빠졌다? 소속과 계급이 미끄러지는 순간 그 사람은 이류시민이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아프고 넘어지고 어쩔 땐 내 척추로 온전히 서기 어려울 만큼 무너지는 순간이 올 때가 있다. 온 힘을 다했지만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도 있다. 인생은 꼭 내가 계획하고 뜻한 대로 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를 너그럽게 포용하지 못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가슴에 우울함을 안고 살아간다. 조그마한 추락에도 실패자라는 낙인을 찍어버리기 때문이다.


폐쇄병동에 방문해본 적이 있다. 우리 주변에 있을법한 평범한 사람들이 심각한 우울증으로 폐쇄병동에 입원해 있는 모습을 보고, 그날 밤잠을 이룰 수 없었다. 전교 1등만 하다가 단 한 번의 중간고사를 완전히 망쳐서 과학고 진학이 어려워지게 되자 출석도 하지 않고 식음을 전폐한 중학생, 늘 1등만 하다가 의대에서는 성적이 원하는 만큼 나오지 않아 원하던 진료과 수련의로 가는 것에 실패하자 인생을 포기하고 결근을 밥 먹듯이 하며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 폐쇄병동에 환자로 들어온 의사, 오디션에 여러 차례 떨어지자 환청을 듣기 시작한 연기 지망생, 실패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일어설 힘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다. 극단적인 예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누구나 다 실패의 쓰나 쓴 경험으로 사람을 피하고 힘들었던 적이 있지 않은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삼천포로 빠지는 것에 대하여 관대하지 못한지, 그 속에서 병들어가는 개인이 얼마나 많은지. 마냥 남의 일이라고 단정 지을 순 없을 것이다.


그래서 책 속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일원들은 ‘프로’가 되어야 한다는 의식은 사회가 주입한 것이라며 반기를 들었다. ‘더 이상 치기 힘든 공을 치거나, 잡기 힘든 공을 잡기 위해 똥줄을 태우지 않는다.’고 했다. 조르바는 이제는 국민연금을 내기 싫다는 이유로 뉴질랜드에 이민을 갔고, 브론토사우루스는 가게가 호황이지만 바빠지기 싫어서 작은 규모의 가게를 고집한다. 주인공은 조금이라도 더 개인의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직장을 찾고 또 찾다가 작은 종합병원의 후생관리 직원이 되었다. 하루 6시간만 일하는 삶을 찾은 것이다. 그리고 말한다.


알고 보면, 인생의 모든 날은 휴일이다.


정신 없이 앞으로 달려가야 한다는, 모두가 프로가 되어야 한다고 외치는 사회 속에서 이 책처럼 ‘프로의 인생은 잘못된 것이야. 진짜 인생은 삼천포에 있어.’라고 단정 지어 말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프로정신에 가장 앞장서서 반대하며, 삼미 정신을 외치는 팬클럽의 리더인 조성훈 역시 따지고 보면 일본에서 사카에라는 왕자님을 만나 경제적 구원을 받은 신데렐라와 같은 인물이다. 물론 조성훈이 신문 배달처럼 최소한의 경제활동은 했다지만, 신문 배달을 해서는 남양주의 볕 좋은 주택을 사기는커녕 당장 먹고 살기에도 부족하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알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우리의 인생은 여러 형태와 여러 가치가 있으며, 단적인 기준으로 인생의 성패를 나눌 수는 없다고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일원들은 말한다. 삼천포의 매력에 빠진다면, 앞으로 달려나가는 방식의 삶뿐 아니라 다른 방식의 삶도 나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약 그런 방식의 삶이 자신에게 맞지 않더라도 맛있는 해산물, 아름다운 바다, 소담한 주변 지역을 둘러보는 것 자체가 절대 손해는 아니다. 잘 나가다가 삼천포에 빠지는 것은, 아주 멋진 일이다.


우리들의 삼천포 여행


삼천포 여행을 하다가 “오, 저기 올라가면 전망이 좋을 것 같아.”라는 언덕을 발견했고 바로 핸들을 꺾었다. 숨까지 참고 운전할 정도로 좁은 골목과 차의 성능을 걱정하며 올라간 언덕길의 끝에는, 낭떠러지가 있었다. 차를 돌려나오느라 한참을 낑낑거리는 바람에 기차 시간까지 늦춰야 했지만, 삼천포 여행에서 최고의 순간은 그곳에서 내려다본 바다와 어이없어서 깔깔대던 소리다. 역시, 잘 나가다 삼천포에 빠지는 것은 아주 멋진 일이다.




[만들지도 그러다 떠날지도] 매거진 바로가기⊙.⊙

https://brunch.co.kr/magazine/makeamap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의 발췌는 개정판 3쇄를 기준으로 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Ep2-15]하이(High)해지려면 하이(Hi)면으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