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한 예술가의 파멸
어느날 누워서 인스타를 보는데 좋아하는 작가님이 타르 리뷰를 올려서 찾아 보게 되었다. 영화관에서 볼까 했는데 애플 티비에 있더라. 허리가 아프기도 하고 비도 추적추적 오고 그냥 누워서 봐야지 하고 골랐다.
이 이야기는 그냥 어느 예술가의 몰락이 아니고 유명한 권력 있는 예술가의 몰락에 대한 이야기이다.
인터넷에 이거저거 토론이 많은데 시놉시스만 읽으면 권력을 남용하는 매우 능력 있는 레즈비언 지휘자에 대한 이야기 같다. 하지만 더 깊게 파헤치면 이 영화는 예술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리디아는 성추행 등 구설수에 휩쌓이게 되는데 이것도 권력이 남용 되는 세계에서는 흔한 이야기이도 하다. 게다가 더 중요한건 감독은 그런 구설수가 진리인지는 밝히지 않으면서 판단은 관객에게 맡긴다.
리디아라는 사람을 매우 리얼하게 그려내기 때문에 보면서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게 되었고 나의 결론은 그녀의 범죄가 고운 작가나 하비 와인스타인 급은 아닌걸로 보였다. 그렇다고 범죄의 무게가 가볍다는건 아니다. 그녀는 분명히 어린 여자들을 뮤즈로 삼든 성적 노리개로 삼든 권력을 가진 위치에서 자유자재로 그들을 통제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것에 참여하는 자들 또한 그것을 알면서 그들의 지위 상승을 위해서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권력과 재능 있는 사람의 관심과 사랑을 완강히 거부하는 사람이 존재할까? 리디아와 올가의 관계에서 이 점이 명확해진다. 올가가 마음에 든 리디아는 여러가지 방법으로 그녀에게 기회를 준다. 이 점이 마음에 든 듯 올가도 그녀에게 애교를 피우면서 관심을 보인다. 하지만 리디아가 몰락하기 시작하자 올가는 그녀를 외면한다.
리디아의 권력 남용은 예술가적 기질, 특히 지휘와 관련이 크다. 그녀는 시간을 통제하고 소리를 만들어낸다. 올가를 발탁한 것도 일단은 그녀가 만드는 소리에 대한 이끌림 때문이다. 그렇게 예술가인 리디아는 본인의 성적 욕망과 음악적 생산을 결합시킨 듯 보인다.
그녀의 이런 모습은 몰락 이후에 망가진 듯 보인다.권력은 이제 없고 누군가가 정해준 박자에 맞춰서 음악을 지휘해야한다. 베를린 필하모닉이 아닌 아마추어 관현악단을 지휘하면서도 기본에 충실하려고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그 속에서 그녀의 욕망에 따라 통제할 수 있는건 없다. 권력이 없는 그녀는 이제 마사지숍 같은 물질적 거래로만 사람을 취할 수 있게 되었다. 예술과 욕망을 결합해서 살아온 최후이다.
그녀가 위선자라는 비판도 있고 하비 와인스타인의 여성 버전 하비나 와인스타인이라는 해석도 있지만 내가 보기엔 이 이야기는 매우 흔한 한 권력자의 몰락에 대한 이야기이고 주인공이 지휘자라는 점, 예술가의 삶과 생각을 보여주고 케이트 블란쳇이 레즈비언 지휘자의 캐릭터를 연기한 점 등 매우 독특한 소재를 주제로 하기에 볼만한 것 같다. 예술가의 삶과 열정, 인간들의 배신과 치열한 커리어 세상에서신뢰할 수 없는 감정들, 그리고 귀를 즐겁게 하는 첼로 연주가 기억에 남는 영화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