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폴리오 '트래블'은 작가와 함께 폭넓은 스테이 경험을 소개하는 콘텐츠입니다.
글ㆍ사진 ㅣ 이다영
원주는 원래도 분기별로 자주 가는 여행지이다. 서울에서 아주 멀지 않다는 점이 크고, 또 무엇보다 조금만 서울에서 벗어났을 뿐인데 더 많이 보이는 초록의 자연과 낮은 건물들, 사람과 사람 간의 공간이 적은 노력만으로도 누릴 수 있는 큰 휴식을 허락해 주기 때문이다.
이전에 건축 사진 스튜디오에서 일하면서 당시 원주의 한 작은 마을을 중심으로 행해진 공공 미술 프로젝트를 촬영하기 위해 매달 한 번씩 왔다 갔다 하기도 했었고, 또 제일 좋아하는 공간 예술가인 제임스 터렐의 작품이 있는 뮤지엄 산의 연 회원권을 끊어 자주 다녀오기도 했었다. 최근에는 8월 말이면 원주 도시공사의 옥상에서 열리는 원주 옥상영화제를 보러 다녀온 적도 있다.
나에게 원주는 소박한 사람 사는 동네의 느낌을 물씬 주면서도, 동시에 예술적인 영감이 곳곳에 숨어있는 도시로, 삶과 예술이 자연스럽게 맞물려 돌아가는 도시라고 생각하게 해주었다. 그래서 새로 트레블을 제안받은 스테이가 원주에 있다는 말에 정말 바쁜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꼭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여행 전날까지도 밤낮으로 마감을 쳐내고 원주로 향하던 날. 아침에는 무더위를 살살 밀어내듯 가을바람 비슷한 바람이 이따금 불어왔고, 하늘은 그 어느 때보다 청명했다. 미인사이드의 체크인이 오후였기에 아침 일찍 출발해서 차로 30분 안팎의 거리에 있는 뮤지엄 산에서 전시를 보고 가기로 했다.
뮤지엄 산을 향해 가는 길, 아직은 여름의 기운을 가득 담아 푸르른 빛을 뽐내는 나무들 사이로 햇빛이 비쳐 내렸다. 안도 다다오가 디자인한 뮤지엄 산은 비단 전시뿐 아니라 건축적으로도 한 번쯤 들러서 구경해볼 만하다. 꽉꽉 채워져 있지 않은 전시와, 산책로가 길게 뻗어있고, 바깥과 안의 공간이 두루 잘 사용되는 뮤지엄 산은 적당히 여유 있고, 적당히 조용한 원주와 닮아있다. 전시를 빠르게 보고 바깥쪽의 카페 자리에 앉아 따뜻한 햇살과 부드러운 바람이 공존하는 여름과 가을 사이의 날씨를 즐겼다.
사람들이 주거하는 동네에 위치한 미인사이드는 마치 내가 원주에서 사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골목 골목을 걸어가 대문을 열고 들어가니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주거 건물이 보였는데, 소박한 건물의 바깥 모습과는 또 다른 깔끔하고 미니멀한, 아늑해 보이는 공간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현관을 이루는 나무문과 레트로한 유리 장식이 공간에 친근하고 아늑한 느낌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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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너무 넓지도, 좁지도 않았는데, 침실과 부엌, 자쿠지가 있는 세 공간으로 나뉘어져 있었고 공간 사이는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오히려 크고 자유롭게 느껴지게 했다. 쉼에 집중해 공간이 큼직큼직하게 분리되어 있어서 그랬을까. 우리는 미인사이드에서 지내는 내내 물을 사러 편의점에 들른 것 이외에는 나가지 않고 이 안에서만 머무르게 되었는데도 답답하거나 심심하다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다. 오히려 여행을 왔음에도 마치 집처럼 편하게 같이 밥을 차려 먹고, 책을 읽거나 TV를 보든, 각자 할 일을 하고, 나름의 휴식을 가지는 편안함을 누렸다.
세면도구들과 목욕용품도, 주방 식기도 가지런히 잘 수납되어 보관된 이 공간에서 그저 공간이 우리에게 바라는 대로 생활 속 가장 중요한 일들을 더욱 의식적으로, 또 즐겁게 해나갔다.
그리고 그 어떤 공간에서보다 그 행위에 집중해 몇 시간이고 식탁에 마주 앉아 길게 이야기를 나누고 식사를 하고, 따뜻한 물로 긴장을 풀고, 폭신한 침대에서 잠을 깊이 잤다.
무엇보다 부엌 바로 옆에 구성된 자쿠지는 돌로 만들어진 깊은 공간이었는데, 물을 받기 전부터 이 자쿠지 공간을 마치 거실처럼 썼다. 각자 다른 단차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친구들을 보며 또 새로운 느낌을 받았다.
거창한 일을 하지 않아도 시간이 너무나 빠르게 지나갔던 미인사이드에서의 1박은 그 어느 때보다 내 하루의 흐름에 집중해서 보낼 수 있었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생활에 있어 가장 중요한 먹고, 자고, 쉬는 일이 현대인들에게 가장 충실하기 어려운 일이 되었다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어쩌면 굳이 익숙한 도시를 떠나 자꾸만 원주를 찾게 되는 마음도 그러한 단순하고 소중한 일상을 하루라도 온전히 누리며, 그 안에서 회복되고자 하는 바람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인사이드는 삶의 분주함 속 그러한 삶의 감각이 무뎌져 갈 때쯤 다시금 온전히 쉬러 오고 싶은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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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er 이다영
건축사진 스튜디오에서 일하며 가끔 글을 씁니다. 일기 쓰듯 사진 찍고 사진 찍듯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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