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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빛 들녘처럼 무르익은 [순천 숙소|스테이 하녹정]

스테이폴리오 '트래블'은 작가와 함께 폭넓은 스테이 경험을 소개하는 콘텐츠입니다.



순천만 곁,

소담한 한옥에서 보낸 하루


글ㆍ사진 ㅣ 길보경



삶이 조금 나아졌다고 느낄 때면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찻물을 우리고, 볕뉘가 나타나는 시간에 서서히 몸을 풀고 달리는 나의 모습. ‘차’라는 존재와 ‘달리기’라는 행위를 습관으로 들이고 나서 생활의 만족도가 높아졌다. 일상에서 좋은 기분을 더욱 좋게 만들거나, 그렇지 않을 때에도 기분을 전환하는 법을 터득하게 된 것이다. 촛불로 공간을 뭉근하게 밝히듯이, 하루를 온화하고 단정하게 보낼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좋아하는 습관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깊어질수록 여행에서도 그런 순간을 꿈꾸게 된다. 


야외에서 차를 마시고 달리기 좋은 계절인 만큼, ‘차와 달리기를 주제로 여행을 떠나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상만으로도 충만한 기쁨이 차올랐으니. 그렇게 우리는 가을바람이 선명하게 느껴지던 10월의 어느 날, 순천으로 향했다. 서울에서 순천까지 KTX 기차를 타고 지나는 길목마다 붉게 물들어가는 가을의 정취가 만연했다.



순천역에서 차로 15분 정도 달렸을까, 오늘 하루 머무를 숙소에 도착했다. 좁다란 언덕을 내려가자, 스테이 하녹정이 나타났다. 동그란 창문과 나무로 된 대문의 외관이 마치 귀여운 캐릭터의 표정 같아서 정감이 갔다. 



단층 한옥인 스테이 하녹정의 담장 너머로는 황금빛 들판이 펼쳐졌다. 마당을 한 바퀴 둘러보니 그야말로 오롯한 자연에 둘러싸여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잔디 정원과 툇마루, 야외 자쿠지, 바베큐장 등의 드넓은 공간은 우리만의 사적인 시간을 보내기에 완벽했다. 



내부로 들어서니 거실의 빔프로젝트에서 산뜻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침대방과 온돌방, 거실, 주방 등에 화이트와 채도가 짙은 컬러의 목재 인테리어를 적용해 포근하고 아늑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두 개의 침실은 장식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미니멀하게 연출한 것이 특징이었다. 각각 하나의 원형 창이 포인트가 되어 실내에서도 따듯한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주방과 욕실 역시 일관되게 간결하면서 쾌적한 인상을 주었다. 



기와지붕 아래에서 차를 마시려고 툇마루로 나왔다. 호스트님께서 다정하게 준비해 주신 웰컴 티, 스낵과 함께였다. 해가 저물어 갈 무렵이라 은은한 햇살과 살랑이는 바람이 기분 좋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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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른 잔디를 바라보면서 물이 끓기를 기다렸다. 말린 녹찻잎에 뜨거운 물을 천천히 부으니, 이파리가 조금씩 부풀어 오른다. 다도의 시간 중 가장 설레는 순간이다. 수색을 감상하기에 제격인 유리 다기라서 좋았다. 찻잔의 향부터 맡아보았다. 이내 숨을 고르며 청량하고 그윽한 차 맛을 즐겼다. 달달한 와플과 버터 크래커의 맛을 개운하게 잡아주는 제주산 녹차였다. 오랜만에 낯선 곳에서 누려 보는 평화로운 쉼, 좋아하는 차와 함께하니 더욱 행복했다. 



해가 저물 때까지 친구와 대화를 나누다가 자쿠지 옆 선베드에서 낮잠을 청했다. 



이윽고 찾아온 밤에는 스파를 즐기며 와인을 마시기로 했다. 한우 바비큐와 함께! 스파 물을 받는 동안 순천 이마트에서 구매한 운두라가 떼루아헌터 쉬라 2021 와인을 마셨다. 따듯한 물 안에서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기도 하고, 물장구를 치기도 하면서 여유를 만끽했다. 



밤공기가 쌀쌀해지자 자연스레 화로대 앞으로 모였다. 스테이 하녹정에 구비된 에탄올로 손쉽게 불멍을 할 수 있었다. 잔잔히 타오르는 불꽃을 응시하다가 돌연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아까 침실에서 본 마인드눅 명상을 지금 해 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편안한 자세로 앉아 마음이 끌리는 그림 카드를 한 장 고르고, 이미지에 몰입했다가 뒷면의 텍스트를 읽으며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을 흘려보내는 놀이였다.


나는 아까 바라본 노을과 비슷한 풍경의 그림을 고르고, 친구는 눈 덮인 새하얀 들판 그림을 골랐다. 뒤집어 보니 내가 선택한 카드는 ‘젖은 여름 하늘에 붉게 물든 저녁노을’로, ‘하늘의 색깔을 자세히 살펴본 경험이 있나요?’라는 명상적 질문이 담겨 있었다. 친구가 고른 카드는 ‘겨울’ 카드로, ‘지금 이 순간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나요?’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내면으로 침잠하게 만드는 가만한 질문들 덕분에 또 한 번 몸과 정신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일순간 해방감과 함께 자유가 느껴지면서 정신적 피로가 해소되는 듯했다. 



방으로 돌아와 밤늦게까지 좋아하는 예능을 보았다. 혼자서 볼 때보다 친구와 대화를 나누며 함께 보니 더욱 흥미진진했다. 다음날 12시 체크아웃이라 다른 때보다 더 여유가 있어 편안한 마음으로 늦게까지 놀다 잠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창밖으로 초록빛 정원이 내다보여 산뜻하게 기상했다. 서울에서처럼 간단히 스트레칭을 마치고 러닝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스테이 하녹정이 특별한 이유는 순천만 국가정원과 매우 가깝다는 것! 3km 떨어진 거리이기에 러닝을 뛰어가기에 딱 좋았다. 주변은 온통 황금빛으로 넘실대는 들판이라서 일자로 펼쳐진 길을 따라 산책하기에도, 달리기를 하기에도 훌륭했다. 이 계절이 선사하는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며 가볍게 달리기 시작했다. 나의 호흡과 발걸음에 집중하며 현재에 오롯하게 몰입했다.



숙소로 돌아와 스테이 하녹정의 또 다른 특별함을 발견하게 되었다. 주방에 피크닉 세트가 구비되어 있어 잔디 마당으로 나와 소풍을 즐길 수 있었다. 제철 과일과 달달한 빵, 주스 등을 준비해 한 상을 차려 보았다. 사랑스럽고 아기자기한 소품 덕에 기분 좋게 아침 식사를 마쳤다. 식사를 마친 뒤에도 어젯밤에 했던 마인드눅 명상 카드놀이를 한 번 더 했다. 



차와 명상 그리고 달리기를 테마로 한 스테이 하녹정에서의 하루. 나만의 리듬대로 몸과 마음을 돌보기에 더없이 완벽한 장소였다. 좋아하는 존재와 함께라면 일상과 여행을 구분 짓지 않고 언제든 ‘현재’에 집중할 수 있고, 또 그 순간을 깊이 사랑하게 된다는 것을 깨달은 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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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er 길보경
‘쓰는 삶’을 꾸준히 이어나가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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