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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노 Mono Apr 21. 2023

코벤트와 마크니

런던에서의 기록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 딸기 라떼 한 잔, 큼직한 크로와상 하나. 런던 코벤트 가든의 르 팽 쿼티디엥에서 우리는 그렇게 주문을 했다. 크로와상은 프랑스 빵이고 이 유명한 베이커리 레스토랑은 브뤼셀에서 시작되었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중요하지 않다. 그것들 또한 (피시 앤 칩스나 펍과 마찬가지로) 런던이라는 도시를 이루고 있다면, 그 입체를 있는 그대로 여행하는 편이 좋다. 




이 여행은 나만의 여행이다. 대학교를 휴학하고 사회복무를 하던 중에, 케임브리지에 있는 학교에도 들를 겸 남은 휴가를 모아 이 주일 동안 영국에 다녀오기로 한 것이다. 첫 일주일은 학교에서 보냈고, 나머지 일주일은 기차로 50분 거리인 런던에 있기로 했다. 런던에서의 첫날 그곳에서 공부하고 있는 친구 지호를 만나기로 했는데, 마침 일요일이라 케임브리지에서 같이 공부하는 해나가 따라오겠다고 했다 (우리는 모두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다). 해나와 내가 탄 케임브리지발 기차는 오후 두 시가 조금 넘어 런던 킹스 크로스 역에 도착했다. 날씨는 시원하고 맑았다. 우리는 거기서 다시 지하철을 타고 지호가 기다리고 있는 코벤트 가든 역으로 향했다.


코벤트 가든은 런던의 웨스트엔드에 자리한 지역의 이름이다. 중세 시대에 웨스트민스터 수도회(콘벤트)의 수도승들이 채소를 재배하던 땅이라 그렇게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트라팔가 광장에서 5분 정도만 걸으면 닿는 이곳의 중심에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건축을 처음 영국으로 들여온 것으로 평가받는 17세기 건축가 이니고 존스가 설계한 세인트 폴 교회(1633)가 서 있다. 교회 앞으로는 역시 존스의 손길이 미친 광장(1630)이 있는데, 지역 이름과 같이 그냥 ‘코벤트 가든’, 또는 광장이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단어인 ‘피아차’라고 불리는 이 공간은 잉글랜드에서 처음 만들어진 공공 광장이기도 하다. 완공 후 이곳에는 코벤트 가든 마켓이라는 야외 청과물 시장이 생겼고, 1830년에는 광장 환경을 정비하기 위해 시장 건물이 들어서 지금까지 남아 있다.



오늘날 코벤트 가든 마켓에는 청과물 가게들 대신 아기자기한 공예품과 그림 같은 것을 파는 상점들, 그리고 쿼티디엥 같은 식당과 카페들이 자리하고 있다. 지호와 해나와 나는 꽤 쌀쌀해진 날씨에도 광장에서 벌어지는 마술 공연과 버스킹 무대를 보고, 쿼티디엥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지호가 런던에서 스케이트보드 연습할 곳을 찾은 이야기, 해나와 내가 케임브리지에서 생활하는 이야기, 지호가 케임브리지에 오면 소개해줄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고등학교라는 좁은 단위 안에서 알던 친구들을 완전히 새로운 맥락 속에서 처음 만나게 되는 것은 매우 신기한 경험이다.




저녁 시간이 다 되었다. 우리는 인도 음식을 먹기로 했다. 코벤트 가든 근처의 ‘디슘’을 골랐는데, 몇 년 전 처음 가 보고서는 그 뒤 런던에 들를 때마다 꼭 한 번은 찾아가는 곳이다. 서울의 가로수길과 비슷한 쇼핑 거리인 옥스포드 가를 따라 걸어 식당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대기하는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지만, 내 필름 카메라를 궁금해하는 해나에게 작동법을 설명해주다 보니 너무 늦지 않게 자리를 안내받을 수 있었다. 


19-20세기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였던 역사 때문에 영국에서 인도 요리는 매우 흔하고, 영국 문화와 요리의 영향을 받아 조금씩 변화하기도 했다. 우리는 토마토와 버터, 닭고기를 넣어 만든 치킨 마크니 커리(어떤 인도 식당에 가도 한국인의 입맛에 가장 잘 맞는다)와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시금치 커리, 양고기 구이, 버터와 갈릭 난 세 장을 나눠 먹었는데, 모든 음식이 언제나처럼 좋았다. 인도식 볶음밥인 치킨 비리아니도 하나 주문했는데, 이것이 한국에서 먹어본 비리아니와 가장 달랐던 점은 닭고기와 함께 건포도가 올려져 나온 것이었다. 약간의 새콤함을 더해 준 이 디테일 덕분에 비리아니는 그날 저녁 먹은 음식 중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 되었다. 




해가 완전히 진 코벤트 가든의 밤 공기는 점점 차가워지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수업이 있던 해나는 곧 기차를 타고 케임브리지로 돌아가야 했다. 그 전에 맥주 한 잔씩을 같이 하고 싶었던 우리는 근처 펍을 찾아 걷다 붉은 벽돌로 장식된 ‘크라운 앤드 앵커’라는 곳을 발견했는데, 동네 주민보다는 관광객이 더 많아 보였지만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나는 기네스, 해나는 코젤, 지호는 산미겔 맥주를 마셨고, 대학교에서의 인간관계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들을 짧게 나눴다.


아홉 시쯤 해나가 기차역으로 출발하고, 나는 지호와 조금 더 남아있다 같이 일어났다. 지호는 레스터 스퀘어 역에서 학교 기숙사 방향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고, 나는 트라팔가 광장 근처의 호텔이 멀지 않아서 걷기로 하고 헤어졌다. 자주 보지 못하는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나 하루 종일 주고받은 이야기들이 많았다. 혼자 여행을 와서도 혼자라고 느끼지 않을 수 있어서 좋았던, 어딘가 느슨한 연결이 마음에 들었던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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