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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tenjohn Sep 09. 2016

'당시기오', 그냥 당기면 돼?

노상 습득 노트 탐독기 4

 그 후로 이유를 알 수 없이 바빴던 날들이 지나갔다. 정말 숨 돌릴 틈도 없이 바빴던 것은 아니었지만, 일을 하기 전에 예열豫熱하고, 끝나고 쉬다보면 남는 시간은 뭔가 다른 것을 하기에 늘 부족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마저도 금세 어디론가 날아가버렸다.


 오랜만에 노트를 꺼내자마자 지난번 카페에서 내려다본 여자가 생각났다. 마치 바빴던 그동안의 시간을 건너 뛰어버린 것처럼 말이다. 그때 내가 본 것은 고작 그녀의 정수리와 어깨까지였고, 안경을 끼지 않았다는 것 정도를 알 수 있었지만.


 지난 며칠 동안에도 한 번씩 그녀가 머릿속에 떠오르긴 했다. 그래도 굳이 찾아보겠려고 하지 않았던 이유는 어쩐지 그 여자가 이 노트의 주인은 아닌 것 같았기 때문이다. 노트의 첫 장에 쓰여진 조금은 뭔가 민망하지만 절절하기도 한 편지라든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 친구에게 섭섭함을 드러내는 방식, 그리고 무엇보다 고깃집에서 혼자 고기를 굽고 나올 수 있는 깡(더군다나 소주를 곁들이며!)들을 종합해볼 때 나는 그 사람이 대학생쯤 되는 젊은 남자일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 여자는 그냥 그 거리의 어떤 가게를 찾고 있었거나, 잠깐 목줄을 놓친 작은 반려견이라도 찾고 있었으리라. 사실 그냥 나는 노트 주인을 능동적으로 찾아주기보다는 계속 읽고 싶어했던 것일 테다. 암튼.     



 자주 가던 식당의 비밀을, 정확히는 내가 그 식당에 갈 때마다 나도 모르게 느꼈던 묘한 위화감의 정체를 드디어 알아냈다. 그 식당 어딘가에 또 다른 비밀이 숨어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일단 하나의 비밀을 알아내었다고 선포하고 싶다.     



 비밀? 식당에 비밀이라니 무슨.   



 그 식당에 갈 때마다 미닫이 문이 불편했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듯 나 역시도 보통 난 미닫이 문을 밀어서 여는 편인데, 그 식당의 입구는 밖에서는 꼭 당겨야만 열렸으니까. 그 문 손잡이의 아래에 아무리 당기라고 쓰여 있어도 한결같이 밀기만 했다. 그 식당에 다섯 번이나 갈 동안.  



 하여간 답답한 놈일세. 당기라면 당겨 좀! 하긴, 당기라고 적어놓고도 밀리는 문들도 너무 많더라... 그나저나 문 열기 불편하다 투덜대면서 많이도 갔네.



 그리고 여섯 번 째 그 식당에 갔을 때서야 나는 문을 당.겼.다. 그간의 불편함이 마치 모두 거짓인 것처럼 문은 저항 없이 열렸고, 나는 스르륵 식당 안으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편안하게 자리에 앉으니 나는 식당을 찬찬히 둘러볼 여유마저 생겼던 것이다. 식당 내부는 여섯 개의 4인용 식탁이 간신히 들어갈 정도로 크지 않은데, 한쪽 면에 주방이 있다. 그리고 그 식탁 중 하나는 입구문 쪽에 3분의 1정도 걸쳐 있어서 평소에는 밖에서 문을 밀어 열 때 닿을 것 같지 않지만, 누군가가 입구 쪽으로 의자를 빼고 앉아 밥을 먹는다면 문을 밖에서 밀고 사람이 들어올 때마 부딪히기 꼭 알맞다. 아마 이런 이유로 이 식당은 문을 밖에서는 당겨서만 열게 하는 것 같은데, 생각해보면 주변에 그런 경우들이 많다. 버스의 문은 모두 안쪽으로 열린다든가.


 그런데 그 식당이 이상한 점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그 이후 그 식당을 갈 때마다 나는 당연한 듯 문을 편안히 당겨 열면서도 묘한 찝찝함이 남았는데, 이번에는 도무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급기야 어떤 초자연적인 힘이 그 식당에 도사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스운 생각까지 들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식당에 계속 갔던 것은 싸고, 양 많고, 맛까지 나쁘지 않아 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오늘, 비로소 그 이유를 찾아내고야 말았다! 갈 때마다 나를 미상未詳의 찝찝함으로 몰아넣었던 바로 그 원인을! 그것은 바로 입구 손잡이 밑에 붙어있는 안내 표지였다.(라고 믿고 싶다) 세로로 긴 직사각형의 아크릴 안내 표지판에 적혀있는 글자는 놀랍게도 ‘당기시오’가 아니었던 것이다. 내가 그동안 십수 번을 스치면서도 가끔 읽을 때마다 아무렇지 않게 ‘당기시오’라고 생각했던 거기에는      


당.시.기.오      


라고 쓰여있었다!          



 에이, 이거 한참이나 유행 지난 이야기다. 인터넷에서 떠돌아다니던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연구한 뭐시기였던 것 같은데…. 한 번 찾아볼까? 그래, 바로 이거다!  


 Aoccdrnig to a rseearch taem at Cmabrigde Uinervtisy, it deosn't mttaer in waht oredr the ltteers in a wrod are, the olny iprmoatnt tihng is taht the frist and lsat ltteer be in the rghit pclae. The rset can be a taotl mses and you can sitll raed it wouthit a porbelm. Tihs is bcuseae the huamn mnid deos not raed ervey lteter by istlef, but the wrod as a wlohe.


 캠릿브지 대학의 연결구과에 따르면, 한 단어 안에서 글자가 어떤 순서로 배되열어 있는가 하것는은 중하요지 않고, 첫째번와 마지막 글자가 올바른 위치에 있것는이 중하요다고 한다. 나머지 글들자은 완전히 엉진창망의 순서로 되어 있지을라도 당신은 아무 문없제이 이것을 읽을 수 있다. 왜하냐면 인간의 두뇌는 모든 글자를 하나 하나 읽것는이 아니라 단어 하나를 전체로 인하식기 때이문다.     


 그래, 이거다. 사람은 단어를 단어 전체로 생각하기 때문에 중간에 있는 글자가 바뀌어도 단어를 인식하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다는. 뭐 이런 걸 대단한 발견이라고 또 이렇게 호들갑스럽게 써놨을까. 암튼, 그래서 뭐?     



 그렇지만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오늘 이 일로 새삼 다시 떠올려 본 단어 우월 효과(word superiority effect)에 대한 것은 아니다. 단어 우월 효과는 ‘일정 수준의 길이를 가지며 이미 알고 있는 단어’에 한해서 오류를 필터링하고(a.k.a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또한 하나하나 선형적(linear)으로 모든 철자를 읽어내 단어를 인식하는 비효율성을 탈피하여 ‘읽기’의 능률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린다. 그러나 이것은 어쩌면 인간 인식과 사고의 위대한 점이자 치명적인 허점이기도 하다.     



 오호…, 단어 우월 효과라…. 그런 멋있는 이름이 있었군. 어디서 또 그럴듯한 말을 주워들었네. 그런 근사한 단어들로 허세를 부리기가 참 좋지.     



 철자가 적힌 단어 단위에서 단어 우월 효과는 철자의 수 등 단어 이해의 난이도와 관련을 가진다는 것이 정설이다. 보통 단어 우월 효과가 발동되기 위해서 맨 앞과 끝의 철자는 틀리지 않아야 하는데, 가운데 들어가 있는 글자들이 많아질수록 인식률이 떨어진다. 더군다나, 철자의 위치에 따라 발음이 많이 차이 나는 언어의 경우는 더욱 인식률이 떨어지고, 무엇보다 자기가 모르는 단어에 대해서는 적용되기 어려운 것이 보통이다. 즉 쉽게 말해, 단어가 생소하거나 어려울수록 이 효과는 작동이 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생소하거나 어렵지 않은 단어, 실제로는 생소하거나 어렵지 않다고 느끼는 단어들에서 이 효과가 작동되어서 나타난다. 어렵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에, 그리고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단어가 틀렸다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지나가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자기가 알던대로 빨리 인식하고 지나가면 된다는 인간 사고의 자기중심주의. 효율을 빙자한 오해와 오류의 정당화가 그 속에 숨어있다. 당.시.기.오.

*

 너무나 당연하지만 또한 서글프게도 비단 그런 효율의 추구와 오해가 언어 차원에서만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혹시 나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은 타인을 인식하는데도 이러한 효율을 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다, 아닐까라는 의심은 적절치 못하다. 아마도 이건 정말 99.9%, 100% 가까이 확신할 수 있는 문제다. 그리고 무엇보다 곤혹스러운 점은 ‘타인’이라는 존재는 그 철자의 개수를 애초에 알 수 없는 단어라는 점이다.(물론 사람이 단어는 아니지만)


 흔히 어떤 단어를 인식하고 기억해서 ‘단어 우월 효과’에 입각해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적어도 몇 번 이상 해당 단어의 정확한 모습을 인식해야만 한다. 하지만 사람의 경우는? 일단 나는 타인의 모습을 단 한 번이라도 완벽하게 인식한 적이 없다. 달리 말하면 이렇다. 내가 완벽하게 이해한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다. 그의 철자가 무엇인지 한 번도 정확하게 알아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제를 누구와도 온전히 소통할 수 없다는 절망적인 허무주의와 연결하려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사람이란 타인뿐 아니라 자기 자신조차 완벽하게는 알 수 없는 존재 아니던가. 다만 우리가 누군가를 제대로 알지 못하며 대하고 있다는 것은 늘 인지할 필요가 있다. 심지어는 자기 마음대로 타인의 철자의 길이나 그 배열을 확정해 버린다. 우리는 타인 역시 ‘단어 우월 효과’와 비슷한 맥락에서 매우 효율적으로 ‘오해’하고 있다. 물론 정도는 덜하겠지만 자기 자신도 그렇게 오해한다. 어떤 대상(그것이 자기든 아니든)에 대해 확정적인 선입견을 만든 후, 그것으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일’의 효율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해’의 과정은 필요하기는 하지만 또한 불편하므로, 이해의 단계를 축소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부품 같이 목적에서 소외된 노동같은 것은 기능적인 면만 숙지한 상태일 것이다. 이해의 단계를 다 건너뛰기가 불가능한 경우에는 필요한만큼 최소한의 정보만을 확보한다. 만나는 사람에 대한 적당한 눈속임, 적당한 연기. ‘오해된 인간’으로 가득 찬 학교, 사회, 직장 등. 일과 상관없는 관계에서도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결국 약간의 오해와 이해의 결핍을 바탕으로 한 효율성을 추구한다. 이해의 방법은 진득한 대화와 소통, 경험의 공유 등인데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도 이런 것을 함께 할 수 있는 시간과 마음의 여유는 많지 않다. 이런 제약들로 상대방에 좀 더 깊은 이해로 나아가는 길이 더딜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 당시에 할 수 있는 일이란 ‘지금은 힘들지만, 오랜 시간을 거쳐서라도 널 이해하겠다’라는 제스처를 상대방에게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시간을 보낸 후에도 헤어지거나, 정작 나중에 그 여유가 생겼을 때 소통하는 법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상대방에 대한 내 이해라는 것은 어쩌면 삶을 진행해야 한다는 핑계로 여전히 ‘당시기오’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효율을 따져야 할 것과 따지지 말아야 할 것을 제대로 배우지도 않은 채로, 우리는, 나는 적어도 모든 것을 가장 효율적으로 오해하며 살았던 것 같다.     



 인생을 피곤하게 사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참 인생 피곤하게 사네’라는 말을 한두 번쯤 들어본 사람이라면 그런 핀잔을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지나친 호기심과 치밀함을 버리려고 노력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 이 사람은 참 인생을 피곤하게 사는 데는 도가 튼 사람인 것만 같다. 근데 생각해보면 꼭 저렇게 살기 때문에 피곤한 건지도 사실 잘 모르겠다. 나는 저렇게 살지 않아도 늘 피곤하니까.


 문득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이 떠올랐고, 좀 낯설게 느껴졌다. 하루에 수십 개나 스마트폰을 통해 전달되는 내일이면 쓸데없는 가십들, 무수히 많이 스치는 사람들, 그것들과 그들에 대해 지금 와서 딱히 기억에 남는 것이 뭐냐 묻는다면… 정말 할 말이 없다. ‘최대한 이해하려고 노력하겠다라는 제스처'가 내게 있었던가… 뭔지는 잘 모르겠다만 암튼. 


 ‘미안하다, 사랑한다’라는 한참 철 지난 드라마가 생각난다. 전에 처음 제목을 듣고는 ‘내가 이런 상황인데 너를 사랑해서 미안하다’는 뜻이겠거니 넘겨짚었다. 어쩌면 ‘내가 너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사랑한다고 해서 미안하다’라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에이, 당시기오가 뭐! 어쩌라고! 


 그나저나 그 식당은 대체 어디란 말인가? 싸고 양 많고 맛도 있다는 그곳은!






* Psycholinguistics, 2nd edition, HARCOURT B&C, 428p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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