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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머니 Apr 05. 2023

꿈의 시작

어느 날 실리콘 밸리에서

“박 책임, 샌프란시스코에 출장 좀 다녀오지?”
 

2013년의 어느 봄날 오후, 그룹장님이 갑자기 나를 호출하셔서 하신 말씀이었다.


“아, 출장이요. 네… 그런데 어떤 일인가요?”


들어보니 신규 프로젝트를 위한 UX 디자인 안을 급하게 만들어야 하는데 미국 실리콘밸리 지사에 위치한 디자인팀과 같이 협업하여 진행해야 한다고 했다.

원래는 기존의 담당자가 있었는데 부득이한 사정이 생겨서 이번에 못 가게 되었다고. 그리고 이왕이면 해당 분야에 대한 경험이 없는 새로운 시각으로 프로젝트를 리딩 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미국으로의 출장이라. 부담스럽지만 일단 반복된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이니 나쁘지 않은 것 같다. 게다가 샌프란시스코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이다. 여행은 아니지만 왠지 설렌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룹장님의 한 마디.


“그런데 내일 아침에 출발해야 돼. 너무 중요하고 급한 일정이라서 그렇게 됐어.”


"네? 내일 아침이라고요?"


그리고 다음날 아침, 나는 거짓말처럼 샌프란시스코로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 있었다.


그때는 몰랐다. 우연히 그렇게 갑작스럽게 가게 된 출장이 내 인생에서 커다란 터닝 포인트가 될 거라는 건.


실리콘 밸리. Bay area라고도 불리는 곳.


처음 그곳에 도착하여 차창 밖으로 보이는 건물들에 표시되어 있는, 일상에서 내가 자주 사용하던 앱과 서비스들에 대한 익숙한 로고들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아, 내가 정말 말로만 듣던 그 실리콘 밸리에 왔구나!‘




출장지에서의 업무는 매우 빡빡했다.


영어로 해야 하는 의사소통이 어려웠던 것은 물론이고 서로 다른 문화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사용자를 바라보는 상이한 시각은 적응하는데 조금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디자인 작업을 하기 위해 뭐라도 먼저 그리기부터 시작하는 것에 익숙한 우리의 방식과는 달리 문제의 아주 깊은 근원부터 생각하고 접근해 나가는, 마치 교과서에서나 보아왔던 그런 방법론을 실무에 직접 적용하는 그들의 방식이 처음엔 조금 어색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신선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렇게 나와 피부색과 언어가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과 공동의 목표를 위해 함께 디자인을 만들어 간다는 것은 기존에 일하며 받았던 느낌과는 또 다른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미국 현지에서의 진행상황을 데일리로 보고 받기를 원했다.


나는 매일 퇴근 후에 호텔방에 돌아와서 한국에 있는 팀과 밤늦게까지 콘퍼런스 콜을 했고 그걸 다음날 아침 미국 팀에 다시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논의하기 위해 잠을 줄여가며 별도의 추가 작업을 했다.


사실 그 누구도 나에게 그렇게 하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단지 내 스스로 그 일이 너무 즐거웠기 때문이다.


말로만 듣던 실리콘 밸리.

그 한 복판에서 이들과 같은 공기를 마시며 디자인을 하고 있노라니 마치 나도 이들과 한 일원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나도 무언가 세상을 의미 있게 바꾸기 위한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거창한 생각과 함께 내가 하고 있는 작업이 더 가치 있게 느껴졌다.


짜릿했다.


나 자신이 살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미국 지사와의 협업은 성공적이었고 우리가 만든 디자인은 출시 후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이후 내게 맡겨지는 대부분의 프로젝트는 미국팀과의 협업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그 뒤로 나에게 미국으로의 출장은 디자이너로서의 내 존재감과 사명감을 일깨워주는 어떤 의식과도 같은 것이 되었다.




그 당시 나와 가까이 일하던 미국팀에는 토마스라는 이름의 디자이너가 있었다.

그는 최소한 40대 중반은 넘어 보이는, 머리에 흰머리가 제법 많이 났지만 그럼에도 운동으로 다져진 다부진 체격을 가진 중국계 미국인이었다.


출장의 마지막 날, 우연히 그는 자신이 어떻게 디자이너가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토마스의 첫 번째 직업은 디자인과는 전혀 상관없는, 그리 크지 않은 회사의 인사와 관련된 일이었다고 했다. 인사 담당자로서 10여 년이 넘게 경력을 쌓아왔지만 자신은 어려서부터 무언가를 스스로 만드는 것을 좋아했고 늘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중간에 다시 관련된 공부를 시작했으며 그 결과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원하는 UX 디자이너로 커리어 전환을 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지만 결국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된 그때의 결정에 만족한다며 환하게 웃었다.


나는 그런 그가 너무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이에 대한 제약 없이 본인의 실력만 있다면 얼마든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허용되는 그 문화가 너무 부러웠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나도 당신처럼 미국에서 디자이너로 일 해 보고 싶다고.


그는 내게 일단 링크드인에 계정을 만들고 그곳에 나에 대한 정보를 올리라고 했다.

그러면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의 리쿠르터 들로 부터 연락을 받게 될 거라고.


출장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샌프란시스코 공항으로 가는 차 안에서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여기서 살면서 디자이너로 일 하고 싶다. 이미 여러 번 출장을 다니면서 이들과 일하는 것에 대한 요령과 자신감도 생겼다. 나 정도 능력과 경력이면 가능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때의 이 생각이 얼마나 오만하고 순진했는지를 깨닫게 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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