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에 입사한 이후, 내 인생의 모든 것이 바뀌었다.
처음에 일할 땐 부족한 영어 실력 때문에 상대방의 의도를 잘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아서
‘도대체 얘네가 어쩌려고 나를 뽑은 걸까?‘
라는 생각을 하며 좌절도 많이 하곤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 일 하는 방식이 점점 익숙해졌고 (내가 얘네들에게 적응이 된 건지 얘네가 나에게 적응이 된 건지) 한국과는 전혀 다른 환경과 사람들 속에 섞여 일하며 배우는 매일매일이 새롭게 느껴졌다.
그래, 그 당시 나에겐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던 것 같다.
그 새로움을 매일 느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익숙했던 한국을 떠나 이곳 미국에 온 것이 올바른 결정이었다는 생각을 했다.
정신없이 일 하다가 퇴근을 할 때면 주어진 하루를 알차게 보냈다는 생각과 함께
그 매일의 시간 들을 내가 주체적으로 만들어 나가고 있다는 그 뿌듯한 감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성취감과 기쁨을 느끼게 해 줬다.
그 당시 사무실 내 자리에서는 창 너머로 항상 멋진 스페이스 니들을 볼 수 있었고
특히나 날씨가 좋은 날이면 환상적인 노을의 색감과 함께 어우러져 보이던 그 광경은 나에게 주어지는 일상 속의 작은 선물이었다.
몇 달이 지나 어느 정도 미국에서의 생활이 안정된 이후, 한국에서 아내와 아이들이 건너와 드디어 완전체가 된 우리 가족은 본격적인 미국 이민생활을 시작하게 되었고 모든 것이 계획한 대로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 몇 달의 꿈같은 시간 이후에
전 지구상에는 갑자기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졌고
여행을 많이 다니리라 기대하고 계획했던 것 과는 달리 꼼짝없이 아무 데도 나가지 못한 채 집안에 갇혀 지내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야말로 이전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또 다른 의미로서의 새로운 미국 생활이 강제로 시작된 것이다.
회사에 출근하지 않고 집에서 일하는 상황은 처음에는 편리한 듯했으나 하루하루 왠지 모를 무력감이 쌓여갔고 아무 데도 나가지 않고 집에만 있다 보니 여기가 한국인지 미국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내가 디자인한 서비스가 성공적으로 시장에 출시되는 기쁨을 맛보았으며
토트넘의 광팬인 영국인 매니저가 새로 팀에 온 뒤에는 손흥민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하다가 그와 인간적인 친분이 쌓이기도 했다.
그리고 BTS, 오징어 게임의 전 세계적인 인기 덕분에 이곳 사람들도 점점 한국이라는 나라에 관심을 갖는 것을 몸 소 느낄 수 있었고 TV나 소셜 미디어상에서 한국 음식, K pop과 같은 문화 전반에 걸친 영향력이 실시간 적으로 퍼져 나가는 것을 보면서 한국이라는 나라와 그곳에서 만들어내는 콘텐츠의 힘이 실로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덕분에 이민자로서 왠지 기죽지 않고 살게 된 것 같기도 하다. (곳곳에서 한국을 빛내 주시는 여러분들 덕을 많이 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무튼 그러다 보니 아마존에서의 2년 반이라는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고
차츰 다시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오는 세상을 보게 되면서 그 시간들을 이겨내며 살아낸 내 마음속에서는 또다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다는 마음의 열정이 생겨났다.
나는 다시 디자인 포트폴리오를 차곡차곡 정리했고 인터뷰 준비를 시작했다.
그렇게 준비한 지 6개월쯤 지난 후,
40대 후반의 나이에 접어든 나는
미국에서의 두 번째 직장인
구글로 이직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