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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머니 Jun 11. 2023

첫 출근 날

드디어 첫 출근 날이 왔다.


나는 매니저와 만나기로 한 회사 앞 커피숍에 약속시간보다 5분 먼저 도착했다.


아침이라 매우 분주한 모습.


모두가 늘 있는 하루의 익숙한 패턴인 듯 점원과의 짧은 인사와 주문, 그리고 음료를 수령하는 모든 과정들이 매우 자연스러워 보였다.


내게도 언젠가 저 사람들처럼 이 모든 환경에 익숙해지는 날이 오겠지 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보니 곧 문이 열리고 내 미국에서의 첫 매니저인 John이 들어왔다.


백인남자. 큰 키와 약간은 마른 체격. 그리고 제법 도수가 높아 보이는 안경을 쓰고 있는, 뭔가 굉장히 모범생스러워 보이는 (왠지 이름이 John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그런 외모였다.


그는 팀에 관한 간략한 소개와 함께 내가 담당해야 할 일들에 대해 이야기해 주고 회사 건물로 들어가 내 자리를 안내해 주었다.


내가 너무나 기다렸던 순간.

드디어 미국 회사에, 이곳 아마존에 내 책상이 생긴 것이다!


게다가 그 자리는 창 밖으로 스페이스 니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멋진 뷰를 가지고 있었기에 더 마음에 들었다.


사무실의 사람들은 모두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리고 John은 내게 회사에서의 적응을 위한 ‘온보딩 버디’를 매칭해 주었는데 바로 이전에 온사이트 인터뷰에 강아지를 데리고 들어왔던 보라색 머리의 ‘Megan”이라는 디자이너였다.  


그녀는 그날도 강아지와 함께 있었다.


사실 그녀뿐 아니라 회사에는 반려견을 데리고 출근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았다. 그래서 어디를 가든 수많은 개와 강아지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사무실 안을 돌아다녔다.


생각해 보면 참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반려견을 키워본 적은 없지만 혼자 사는 사람일 경우에 회사에 반려견을 데리고 출근할 수 있다는 건 여러모로 장점이 많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강아지가 사무실에 있으니 뭔가 전체적으로 분위기도 더 밝아지는 것 같고.


Megan은 나에게 궁금한 게 있으면 뭐든 물어 보라며 회사 생활과 업무에 필요한 여러 가지 링크와 유용한 팁들을 제공해 주었다.


한꺼번에 수많은 정보가, 게다가 그것도 익숙지 않은 영어로 제공되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럼에도 뭔가 마음속에는 뿌듯함과 기대감이 가득 느껴졌다.


그리고 이제야 진정으로 지금 까지 와는 완전히 다른 인생의 새로운 시작점에 서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저녁 식사로 한인마트에서 미리 사 둔 밑반찬과 함께 김치찌개를 끓여 먹었다.


회사에선 점심으로 뭘 먹을지 몰라 그냥 다른 사람들 따라 샐러드를 먹었는데 역시 한국 사람에게는 밥이 최고다.


밥 먹고 설거지를 하고 나니 문득 집 안이 너무 조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새롭게 일어난 일 들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었지만 이야기할 사람이 없다니.


문득 가족들이 너무 보고 싶어졌다.

아내와 아이들이 집에 같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곧 다음날 다시 출근할 생각을 하니 뭔가 약간의 두려움도 느껴졌다.


게다가 다음날 아침엔 일찍부터 미팅도 잡혀있었다.


나는 노트북을 열고 미팅의 내용을 미리 알아보고자 메일에 첨부된 파일을 열어봤다.


문서에 포함된 깨알 같은 글씨들.

 

영어 자체로도 번역이 힘든데 수많은 약어들이 난무하는 그 문서는 도통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지 뭐.’


나는 노트북을 닫고 일찍 잠자리에 누웠다.


창 밖으론 언제나 그렇듯 시애틀의 비가 잔잔히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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