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절로 눈이 떠졌다. 새벽 4시. 막걸리의 취기를 핑계로 무책임하게 잠든 어제였다. 보리암에서 꼭 일출을 보고 싶었지만 일찍 일어날 엄두가 안 나 될 대로 되라지 싶었던 것이다. 운 좋게 눈을 떴으니 일출을 보러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어서 일어나 보리암으로 가자고 스스로를 채근하다 이불 안이 너무 따뜻해 다시 눈을 감고 삼사십 분을 더 뭉개었다.
그렇게 꾸물댄 것이 화근이었다. 금방 도착할 거란 순진한 기대와 달리 새벽녘 남해군의 도로는 험난했다. 달빛도 가로등빛도 없는 컴컴한 길이 계속되었다. 상향등을 켜도 주변이 보이지 않아 시야가 극도로 좁아졌다. 게다가 길이 구불구불해 제대로 속력을 낼 수 없었다. 낯선 암흑세계에 들어선 이방인. 귀신이라도 튀어나오는 게 아닐까 불현듯 공포감이 일었다. 무엇보다 이렇게 가다간 도중에 해가 떠오를 것만 같아 쫓기는 심정이 되었다. 아침 일찍 일어난 수고가 물거품이 될까 노심초사하며 나도 모르게 점점 더 세게 액셀을 밟았다. 갑작스러운 급커브에 도로 분리대를 들이박을 뻔하는 위기상황을 한차례 겪고 나서야 나는 놀란 가슴을 매만지며 마인드 컨트롤을 시도했다. 무명아, 일출 못 봐도 괜찮아. 해는 매일 뜨잖냐. 이러다 사람이라도 치면 어쩌려고 그래.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에서 솟구치는 조바심을 어쩌지 못해 다시 은근슬쩍 속도를 올리는 나였다. 보리암의 경건한 일출을 보러 가는 내내 마음은 고장 난 폭주 기관차 같이 날뛰었다.
비포장로를 카레이서처럼 내달린 끝에 겨우 보리암 제2 주차장에 차를 대었다. 오르막길을 씩씩대며 걸어 올라가는데 벌써 하늘은 퍼렇게 밝아오고 있었다. 이미 해가 떠버린 건 아닐까. 전설의 경보 선수에 빙의되어 앞서 걸어가는 사람들을 모두 따돌리며 보리암으로 돌진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도착한 보리암은 생각보다 아담했다. 일출 포인트를 찾아 두리번거리는데 옆에 있던 한 젊은 커플이 다가와 말을 건다.
"해돋이를 여기서 보는 게 맞나요?"
"저도 처음 와서요... 근데 해는 이미 뜬 거 아닌가요??"
대답은커녕 황망한 되물음이 돌아오자 커플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날이 이미 너무 밝아 나는 당연히 어딘가 해가 떠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내 대답을 들은 여자가 남자 친구를 스윽 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두 번 가로저었다. 해는 아직 뜨지 않았어, 이 사람 바보야, 라는 뜻이었다. 나는 알쏭달쏭한 마음으로 다시 하늘을 바라봤다. 하늘이 점점 붉어지기 시작하더니 구름 가장자리가 불타오른다. 아, 해는 이제 뜨나 보다. 어리석게도 해가 뜨기 직전까지 하늘이 완전한 암흑일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해 윗머리가 지평선 너머로 모습을 드러내자 나는 미천한 상식 수준이 탄로 난 것 같아 사진을 찍는 척 얼른 티셔츠 후드를 뒤집어쓰고 사진기에 얼굴을 묻었다.
작열하며 고요히 떠오르는 해, 붉은 해.
우주의 빛이 육신을 뚫고 들어와 내 속을 훤히 비추는 것만 같아 잠시 벌거벗은 기분이 들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가족들과 커플들은 다들 손을 맞잡고 소원을 비는데 나는 연신 사진기 셔터만 누르고 있었다. 나도 뭔가를 빌어야 하는 걸까. 생각해보니 딱히 준비한 소원이 없었다. 일출을 보며 소원을 빈다고 해서 뭔가가 이루어질 거란 기대가 없었던 것이다. 헛된 기대와 실망. 크리스마스 산타 할아버지 같은 게 아닌가. 돌아보니 나는 성인이 된 이후 기도는 거의 하지 않고 살아왔다.
이노우에 다케이코의 만화 <배가본드>에서 전설의 검객 미야모토 무사시는 중요한 결투를 앞둔 날 밤 한 신사에 찾아가 신께 기도를 올린다. 적의 칼날에 목이 달아나지 않게 해 달라고. 그러다 문득 평소 신도 모시지 않는 주제에 두려움에 떨며 신에게 목숨을 구걸하는 구차한 자신을 발견한다. 수치스러움에 휩싸인 무사시는 기도를 집어치우고 그길로 뚜벅뚜벅 산을 내려간다. 그는 자존심이 강한 사내였다. 신에게 기대기보다 자신을 믿기로 한 것이다. 스무 살 언저리에 만화방에서 본 이 장면은 내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어린 시절 심약한 마음으로 갖가지 소원을 난발하곤 했었다. 하느님, 알라신, 시바신 등 주워들은 온갖 신들을 모조리 들먹이며 입안에 박힌 생선 가시를 빼달라, 나쁜 친구를 혼내달라 하면서. 그치만 <배가본드>의 그 장면을 본 이후, 기도란 스스로 할 수 있는 모든 능동적인 노력을 기울인 후에야 비로소 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라 여기게 되었다.
하지만 기도는 지극히 인간적인 행위가 아닌가. 사람은 얼마나 나약하고 무능한 존재인가. 제 뜻대로 원대로 되는 일이 하나라도 있던가. 그러니 애타게 신을 찾고 종교에 의지하며 보잘것없는 자신을 초월한 절대자에게 기대는 게 아닌가. 장엄한 일출을 보며 소원 하나 빌지 못한다면 인간이라 할 수 없는 게 아닐까.
슬그머니 '그저 모든 문제들이 수월히 풀리도록 해 주세요'라고, 싱겁기 그지없는 소원을 빌어 보았다. 한심하긴. 누구라도 빌 수 있는 소원이 아닌가. 나만의 참신하고 기발한 소원 하나 없는가. 하긴 내가 당면한 문제가 한둘이 아니었으니 급하게 어느 하나를 특정하기도 어려웠다.
산에서 내려오며 그래도 소원이란 건 구체적일수록 이루어질 확률이 높은 게 아닐까, 게을러 빠져서는 소원 하나 제대로 준비하지 않고 뭐했나 하는 반성이 들었다. 애매하게 뭉뚱그린 소원 따위 누가 알아먹기나 할까. 나는 미야모토 무사시도 아닌데 괜히 개똥 같은 생각을 하며 소중한 기회를 날려버린 것은 아닐까. 일개 무명씨에 불과한 내가 신에게 좀 기댄들 어떠한가. 그래, 좀 기대면 어때. 종교가 없다고 기도마저 할 수 없다면 너무 가혹한 것 아닌가. 오히려 종교가 없는 나 같은 이들에게 일출은 기도를 올릴 수 있는 귀한 찬스가 아닌가.
마미손은 <별의 노래>에서 이렇게 울부짖는다.
이 바보야. 아픈데 왜 아프다고 못 해.
야 이 바보야! 슬픈데 왜 슬프다고 못 해.
(중략)
야, 울어!
나는 여행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 보리암에 출연한 자비로운 태양신의 사진을 모니터에 띄어놓고 구체적이고 알아먹기 쉬운 소원을 다시 빌었다. 미처 챙기지 못한 가족들의 소원을 위해 가족 단톡방에 일출 사진을 보내며 소원성취하시라고들 덕담도 건네었다. 태양신에게 잠시 마음을 기대자 보리암에서 일출을 볼 때보다 가슴이 더욱 편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