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cques Aug 09. 2022

<런치박스>(2013)

The Lunchbox

제가 일하는 곳은 특성상 1.5~2년 단위로 순환근무를 하는데요. 올해부터 인도 관련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직전 부서에서도 국가전략 업무를 맡으면서 인도 전략수립 연구용역을 주관했었는데 이렇게까지 이어지리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어요. 2008년에 인도를 방문한 적 이외에는 저에게 우선적으로 관심있는 나라가 아니었을 뿐더러 (이름이랑 존재가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호기심이 줄어드는 경우가 있는데, 인도가 저에게 그런 나라 중 하나였거든요.) 내부적으로도 인도가 같이 일하기 녹록치 않은 국가라는 인식이 팽배했기때문에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었죠. 이제 업무를 담당한지 벌써 반년 이상이 지났는데, 아직도 여러가지 고민으로 하루하루를 보내지만, 이와 별개로 인도라는 나라 자체에 대한 흥미가 생기고 있어 다행이에요.


인도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았어서 그런지, 영화를 좋아하면서도 인도 영화를 스스로 찾아보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아직 인도 영화를 많이 보지는 않았지만 그 중에서도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인도영화 한 편이 있습니다. 일단, 이 영화는 발리우드 영화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즉 주인공들이 중간에 난데없이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등장하지 않고 시종일관 잔잔하게 흘러갑니다. 그리고, 두 주인공이 편지를 매개로 마음을 나누고 소통하는데요.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번도 마주치지는 않지만 (종국에 남자는 멀리서 여자를 바라보았다고 편지에 고백하긴 하지요) 그러기에 더욱 큰 설렘과 아련함을 자아내구요. 직접적으로 등장하지는 않아도, 마지막 어느 낯선 곳으로 떠나는 기차가 등장하면서, 이 낯선 곳에 당도하게 되면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자아내며 영화가 마무리됩니다. 편지에 담긴 서로에 대한 마음과 위로가 잔잔한 감동을 자아냈고 저도 전혀 알지 못하는 누군가에게, 마치 고해성사하는 마음으로 저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어요. 왠지 저의 비밀을 지켜주고 고이 소중하게 간직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인도 최대의 경제도시 봄베이를 배경으로, 남편에게 도착했어야 할 도시락이 잘못 배달되는 바람에, 그 도시락을 대신 먹은 한 남자가 여자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서로에 대한 호기심으로 편지를 보내기 시작합니다. 도시락은 끝까지 남편이 아닌 이 남자에게 전해지지요. 여자는 관계가 소원한 남편 떄문에 외로워하고, 남자는 오래 전 아내와 사별한 후 회한과 외로움에 젖어 은퇴할 날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들이 주고받는 편지에는 서로에 대한 위로와 격려, 충고가 담겨 있고 조금씩 젖어드는 고독 속에서 미지의 대상에 대한 마음을 조금씩 품어 갑니다. 정신없이 흘러가는 봄에이에서 이 둘의 관계만큼은 고요하게 견고해지고 있었지요.


영화의 중반정도가 지나서야 남자주인공의 이름이 밝혀지는데, 이 방식이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여주인공 일라가 갑자기, 윗층에 사는 이모님에게 음악이 듣고 싶다면 틀어달라고 요청합니다. 이모님이 재생한 음악의 이름은 Saajan. 그리고 다음 장면에 일라의 편지를 읽는 남자의 장면이 등장하는데요. 편지에는 "당신의 이름이 뭔가요?"라고 묻는 일라의 질문이 담겨 있고, 지나가던 남자의 회사 동료가 Saajan이라고 부르면서, 관객들은 이제서야 남자의 이름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알게 된 일라가 왜 Saajan을 듣고 싶다고 했는지 짐작하게 되지요.


https://youtu.be/72PA9_pSZuM


Saajan 1991년에 개봉한 인도의 로맨스 영화로 당시 발리우드 영화중 최대 흥행기록을 달성하였습니다. 37 Filmfare 시상식에서 11 부문 후보에 올라, 음악상과 남자 Playback singer 부문을 수상할 정도로, 영화  음악도 많은 주목을 받았는데요.  남자 가수의 노래 제목은 "Mera Dil Bhi Kitna Pagal Hai(얼마나 나의 마음이 타오르는지)"이고, 영화 <런치박스> 흐르는 Saajan 노래이기도 합니다. Saajan 부잣집에 입양된  남자이이와  집의 친아들 사이의 우정과 사랑을 둘러싼 갈등 그리고 화해를 그려내고 있다고 하는데요. 여기서 재미있는건, Saajan 주인공의 이름이 아닌, "사랑받는 (Beloved)"라는 뜻의 단어라는 뜻이죠. 영화 <런치박스>에서,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고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삶을 사는 남자에게 Saajan이라는 이름을 부여함으로써,  인도문화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남자에게 새롭게 찾아온 사랑의 마음을 선물하고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 일라가 떠나고 싶어하는 낯선 곳은 바로 부탄입니다.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고 있고, 인도보다 더욱 풍요롭게 살수 있다고 하는  . 일라는 남편이  이상 자신을 바라봐주지 않고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자 이제는  곳으로 떠나야겠다고 다짐하고 사잔에게 보내는 편지에 부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사잔이 듣는 라디오에서 부탄의 노래 선율이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노래의 제목은 "Boomo Boomo", Namgay Jigs Minzung Lhamo 함께 부른 노래라고 합니다.    


https://youtu.be/-ej8mXcK9iI


어찌보면 현실에서 일어나기 쉽지 않은 환상을 가득 담아 내고 있어서 영화를 보면서 더욱 가슴이 뛰는지도 모르겠어요. 영화가 끝난 후 부탄에서 일라와 사잔이 꼭 만날 수 있기를 바라고, 부탄에서 이들의 삶이 어떻게 펼쳐질 지 상상하였는데요. 저도 여기서 먼 곳으로 떠나 새로운 삶을 펼치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현실의 무미건조한 안정감의 족쇄에서 벗어나지 못해 주저하고 있기에 영화 속 주인공들의 모습이 더욱 부러웠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그 장소가, 제가 평소에 가고 싶어했던 나라 중 하나인 부탄이라서 더욱 간절하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겠지요. 언젠가는 이 긴 인생에서 한번쯤은 과감한 용기를 가져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너무 늦어져서 선택할 수 없는 순간에 다다르기 전에요.



매거진의 이전글 <라스트 나잇 인 소호> (202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