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La Land
솔직히 고백해야겠습니다. 저는, 다른분들이 좋아하시는 만큼 이 영화를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제작 단계에서부터 기대를 많이 했었는데 이미 과거에 훌륭한 뮤지컬 영화들을 많이 봐 와서 그런지 감흥이 크지 않았더군요. 음악은 훌륭하지만 주인공들이 부르는 노래의 수는 생각보다 적고, 뮤지컬 영화의 장르적 한계도 있겠지만 특별할 것 없는 각본에 상을 준 오스카시상식도 이해할 수가 없었을 뿐더러, 극에 무게중심을 잡고 잘 이끌어 나가야 하는 엠마 스톤의 연기력도 여러모로 아쉬웠습니다 (여우주연상 역시 이해할 수 없었지요). 특히 영화의 무게감이 높아지는 후반부에서 좀 더 감정깊은 연기를 보여줬으면 더욱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었죠. 데미언 셔젤 감독이 <쉘부르의 우산> <로슈포르의 숙녀들>과 같은 자크 드미의 뮤지컬 영화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하는데, 이 영화들을 사랑하는 팬으로서 감히 비교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라라랜드>는 저에겐 여러모로 밋밋한 작품이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 영화를 완전히 외면할 수 없는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엠마 스톤의 연기가 아쉬웠던 후반부 덕분입니다. 그 어설픔이 미아라는 캐릭터의 불안감, 떨림과 어우러져 영화의 정서와 역설적으로 잘 맞물렸거든요. 중반부까지 심드렁하게 보다가, 세바스티안이 미아에게 한번만 더 도전해 보라고 권유할 때 갑자기 감정이 몰입되더니 미아가 오디션 장에서 그녀의 이야기를 시작할 때, 이 장면을 보려고 내가 극장에 온 것이라고 제 자신에게 혼잣말을 했습니다.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던 2016년 12월 겨울. 저도 미아처럼 불안하고 앞날이 기대되지 않는 살얼음 위에 위태롭게 서 있었거든요. 지금도 사실 그렇지만 그 때는 훨씬 더 심리적으로 유약했던 것 같아요 제 자신이. 영화는 그 자체로도 중요하지만, 제가 어떤 상황과 감정으로 보는 지가 그 영화에 대한 인상을 좌우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엠마스톤은 코미디 연기나 캐릭터의 개성이 필요한 연기에서는 강점을 드러내지만 진지한 드라마 연기에서는 뛰어난 배우라고 보진 않는데요. 이 장면에서만큼은 그 서투름이 절묘하게 잘 맞아떨어져서 깊은 잔상을 남겼습니다.
오디션과 더불어, 제가 이 영화에서 기억하고 싶은 순간은 바로 Epilogue, 두 주인공이 서로의 눈빛을 바라보며 아련하게 과거를 회상하고, 우리가 상상했던 대로 시간이 흘러왔더라면 어땠을지 머리 속에 그려보는 장면입니다. 고전 뮤지컬의 걸작 <파리의 아메리카인>의 에필로그 형식을 그대로 오마주한 이 장면은, 어쩔 수 없이 과거에 미련과 후회를 남기고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을 덧없이 곱씹게 되는 평범한 우리들의 모습 그 자체였습니다. 인생이 짜여진 각본대로만 흘러간다면, 뻔할지는 몰라도 우리가 원하는 대로 눈앞에 펼쳐지기에 행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했던지라, 이 장면을 보면서 이 영화가 존재하는 두 번째 이유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예고편을 보면서 가슴 떨렸던 장면들 대부분이 이 에필로그에 압축되어 있더군요. 미아의 오디션과, 마지막의 에필로그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한 빛을 얻었습니다.
제가 갑자기 라라랜드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혹시 궁금하실까요. 올해 제천영화제에서 <라라랜드>의 작곡가 Justin Herwitz(저스틴 허위츠)의 스페셜 콘서트가 펼쳐졌기 때문이에요. 비를 맞으면서 듣는 <위플래시> <퍼스트맨> <라라랜드>의 음악들은 참으로 아름답고 낭만적이더군요. 게다가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을 데미언 셔젤과 저스틴 허위츠의 데뷔작 <Guy And Madeline On A Park Bench> 도 들려줘서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습니다. 콘서트 자체로만 보면 부실한 음향, 라라랜드 노래를 부른 배우들의 부족한 역량, 합이 맞지 않은 연주 등 안타까운 지점이 많았으나 한국 관객들을 위해 새로운 편곡과 초연까지 선보이며 곡 하나하나 설명을 하면서까지 심혈을 기울인 저스틴 허위츠, 그리고 그의 손에서 피어난 아름다운 음악들 자체만으로도 상쇄가 되었고, 2022년 8월 여름 어느날 밤을 아름답게 수놓았습니다. 이 날 콘서트에서 연주되었던 라라랜드의 Audition과 Epilogue도 함께 들어보시길 바랄게요. (에필로그 영상이 옆으로 뒤집어 진 거에 대해선 양해를 ㅎㅎ)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저스틴허위츠와 재즈밴드가 10월부터 <위플래시 콘서트> 투어를 시작하고 11월에 서울에서 공연할 예정에 있다고 합니다. 관심있는 분들은 체크하시면 좋겠네요. 출처는 아래 기사를 참고하세요.
https://deadline.com/2022/07/whiplash-in-concert-tour-launch-justin-hurwitz-1235074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