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종관 Aug 16. 2017

지나가는 마음들 : 영화 <더 테이블>

 나의 전작 <최악의 하루>는 길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중심이고  <더 테이블>은 카페 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또 <최악의 하루>는 걷는 영화이고 ( 영화의 두 주인공이 이곳저곳을 걸어 다니며 드라마를 만든다) <더 테이블>은 앉아서 등장인물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내용이다. 하지만 두 영화는 몇 가지 궤를 같이 하기도 한다. 비슷한 장소에서 촬영되었고 하루 안에 사건, 한정적인 공간 안에서 만들어지는 이야기다. 그 외에 한 명의 창작자가 연이어서 만든 영화이기 때문에 하나의 창작적인 흐름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최악의 하루>의 주된 장소는 도시의 작은 골목과 산책길로 이루어져 있다. 번화하고 분주한 도시의 일상이 아닌 중심의 곁에 난 길들, 쉬고 휴식하는 공간들에서 사건이 벌어진다. 마찬가지로 영화 <더 테이블>은 사람들이 먹고 자고 일하는 장소가 아닌 차와 커피를 마시는 장소, 골목 귀퉁이의 작은 카페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다. 아마도 도심에서 주택가로 들어가는 골목가 언덕길에 그 카페가 있을 것이다. 카페의 앞 길에는 노인이 쉬는 의자가 있고 수령이 오래된 버드나무가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을지도 모른다. 큰 나무의 뿌리와 밑동을 피해 시멘트 보도가 발라져 있고 담 너머에서 봄꽃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을 수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그 잠시 쉬기 위해, 차를 마시기 위해,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작은 거리를 지나 그 카페에 들른다.   


 나는 오랜 시간 노트북이 담긴 가방을 들고 여러 카페들을 전전했다. 조용히 글을 쓸 공간을 찾아다니다 보니 카페의 다양한 용도를 점차로 알아간다. 커피맛을 잘 모르던 내가 어느 날 어딘가에서 ‘여기 커피는 맛이 없구나’ 하고 깨닫는다. 맛없는 커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 커피에 취향이 생긴 것이다.  

 또 카페에도 취향이 생긴다. 어느 카페는 개성이 있다. 사실 세상의 모든 카페는 개성이 있다. 드러나는 개성이든 아니든 개성은 있다. 종류는 각기 다르지만 카페들은 시대의 개성과 닮아 있고 주인의 취향이 묻어있다. 우리가 골목에서 만날 수 있는 카페들은 비슷한 듯 다르게 생겼다. 그중에 내가 편하고 편하지 않은 곳이 있다. 적당히 조용하고 편한 의자가 있고 와이파이가 잡히고 전원 스위치가 있는 곳이라면 내가 작업하는 공간으로 일단 매우 좋다. 커피 맛이 괜찮고 그 주인의 취향을 내가 수용할 수 있다면 더없이 좋다. 주인 따라 손님 간다는 말이 있다. 어느 카페든 그곳의 취향을 편하게 느끼는 손님들이 그 카페에 들른다. 그들은 나처럼 노트북을 켜고 잡무를 보기도 하고 중요한 약속 혹은 사소한 약속을 위해 사람을 기다리기도 한다. 창밖의 거리를 보고 차를 마시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대화를 한다. 인생의 중요한 일은 그곳에서 일어날 것 같지 않지만 어느 테이블 어느 의자에 앉은 사람들은 인생사의 중요한 시기를 지나고 있는 중이다.  


 나는 가끔 나와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상상해 본다. 별다른 의미 없이 그 카페에 들렀다 해도, 담 너머의 봄꽃을 보며 같은 흥미를 느끼고 같은 거리를 좋아하고 같은 카페에 들러 쉬고 대화하는 사람들은 어딘가 닮아있는 데가 있지 않을까 유추해보며 그들의 연결된 지점 또한 머리 속으로 그려 본다.  

 하나의 테이블에 서로 다른 사람들이 번갈아 앉고 다른 사연들이 다른 마음들이 지나가지만 어딘가 비슷할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 같은 의자에 앉아 같은 창 풍경을 보고 서로 다른 상심을 지니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이름 모를 수많은 타인들의 얼굴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내가 만들어낸 이야기 속 그들이 앉아있는 카페는 사실 내 기호와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카페에 흘러들고 대화를 시작한 사람들은 내가 그리기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비록 나약하고 좋은 판단을 하지 못하고 흔들리는 사람들뿐이지만 그런 어리석음을 들여다보는 것에도 영화의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   

 그렇게 서로 다르지만 결국은 같은 얼굴을 한 사람들에게, 스쳐 지나간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줄 나와 어딘지 모르게 닮은 사람들에게 이 영화의 용도가 있기를 바란다.   


 




http://tv.kakao.com/v/375199912



https://storyfunding.daum.net/project/16924


작가의 이전글 하나의 카페, 네 가지 사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