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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정 Aug 12. 2016

진눈깨비라고 하지,   
이런 걸.

천국보다 낯선, 이장욱 (2013)

 

처음부터 참 이상한 소설이었다.


대학동기 A의 조문을 위해 한 차에 동행한 세 사람이 

또 다른 친구 염과 터미널에서 만나기로 한, 그 짧은 밤동안의 이야기다. 


음주운전을 핑계로 차를 세운 경찰이나, 바닷가에서 잠시 내렸을 때를 제외하고는

차 안에서 거의 모든 대화와, 회상이 일어난다. 


챕터 별로 나눠져있기는 해도

전체적으로는 하나의 이야기인데, 세부사항이 약간식 비틀려있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에서 정, 김, 최 세사람이 듣던 음악은 수지서의 곡인데, 

"시계태엽오렌지"챕터에서는 올리비아의 <Love>라거나, 조금씩 어긋나있고


기시감과 낯섬 이라는 상반된 인지가 동시에 일어나고, 다시 앞 챕터를 뒤적인다. 

동시간대가 아닌가? 동일인물이 아닌가? 

소위 결말부분의 반전을 예상하면서, 앞부분부터 다시 읽어보고 교묘한 암시와 복선을 찾아보려고 애썼다. 


그러나 각 챕터를 담당한 화자의 기억과 의미부여에 따라 

비슷한 상황에서의 불일치가 몇차례 반복되고, 머리는 점점 흐물흐물해진다.


"눈...인가? 비 아니고?" 
"비야? 눈 아니고?"
"진눈깨비라고 하지, 이런걸" _ 58p


그래, 맞다. 진눈깨비다. 

눈인가 했더니 비고, 빈가 했더니 눈이고, 뭐가 뭐든 크게 상관없는, 그런 이야기다.



<천국보다 낯선>에는 매력적인 장치가 몇가지 있다. 


하나는, 소설 속의 소설 혹은 소설 속의 연극 같은 구조라는거다. 

'같은 거'라고 표현한데에는 그럴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기 때문인데, 

거의 김, 정, 최 세사람이 각 화자가 되어 끌어갔던 소설이 

마지막 챕터 "커피와 담배"에 이르러서 

네 번째 인물 염을 등장시키면서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환된다.

심지어 마치 영화를 찍고 있었던 것마냥, 크레인숏으로 그들을 찍고 있는 카메라가 등장한다. 


그렇다고 단순히 

'아, 여태까지 읽었던 이 기이한 내용이 모두 소설속의 영화 같은 거였구나!'라고 해석되지는 않는다.

그것은, A가 찍었던 영화의 내용일 수도 있겠지만

비틀린 시공간에서 벌어지는 기묘한 이야기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A에게는 A의 이야기가, 김에게는 김의 이야기가, 정에게는 정의 이야기가 가장 중요한 것이므로. 

마지막 장의 화자가 누구인지에 따라 이야기는 크게 달라질 것이다. 

이것이 마지막에 나타난 카메라를 단순히 "소설 속의 영화였다"만으로 해석할 수 없게 한다. 


세계는 일종의 연극무대다. 자신이 자신을 연기하는 무대.
누구에게나 자신의 배역이 있고, 자신의 장르가 있다. 
거기서 우리는 모두가 주인공이기도 하고, 동시에 서로에 대해 행인1, 행인2이기도 하다 _135p


둘째는, 

"시계태엽오렌지",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매그놀리아", "바디스내처", "노킹온헤븐스도어"

모두, 영화제목에서 딴 챕터이름이다.

책의 제목역시 짐 자무시 감독의 영화<천국보다 낯선(1995)>에서 따왔다. 

시계태엽오렌지, 매그놀리아, 노킹온헤븐스도어 그리고 천국보다 낯선

모든 영화를 다 본 것은 아니지만, 각 챕터들은 제목의 영화의 색이나 뉘앙스를 많이 풍기게 되고

결국에는, 어쩌면 이 이장욱이라는 이야기꾼이 <천국보다 낯선>을 쓸때, 어쩌면,

자기가 좋아하는 영화 제목들을 죽 늘여놓고, 

그 영화의 뉘앙스에 따라 끄적된 단편들을 하나로 묶어 이 세계를 창조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마지막으로, 

펭귄북스 클래식 시리즈를 떠올리게 하는 앤틱한 그림의 하드커버와 거친 내지.

 <천국보다 낯선>을 집어든 가장 큰 이유였다, 

예쁜 표지에 끌려 가볍게 읽으려고 했는데, 뒷목 서늘해지는 기묘함에 매혹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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