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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정 Sep 30. 2022

[일상단편]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로봇청소기와의 교감에 이어~

모처럼 집 청소를 해볼까 싶어, 로봇 청소기(이하 클라라, <클라라와 태양>의 그 클라라가 맞다)를 켠다. 나는 청소포를 꺼내 클라라가 닿지 못하는 구석구석의 먼지들을 쓸어낸다. 동시에 작은 먼지떨이를 가지고 다니면서, 책장이며 장식장의 먼지도 턴다.

클라라에게는 물걸레 기능이 있어 꽤나 편리하지만 , 클라라가 먼저 지나간 자리를 청소포가 지나가게 되면 기껏 끌어모은 먼지들이 물기에 들러붙어버리기 때문에, 나는 꽤나 신중하게 클라라와의 동선을 고려하여 움직인다.

내가 소파 커버를 벗겨 세탁기에 넣고 오면, 클라라는  사이 떨어진 먼지들을 쓸어 담고 있다. 클라라는 꽤나 훌륭한 파트너다. 게다가 동글동글한 것이 귀엽기도 하다. 근면성실, 착실하게 바닥을 쓸고 있는 클라라를 보고 있자면 혹은 어딘가에 갇혀 -- 우는 클라라를 꺼내 주자면, 그래그래  혼자 고생하게 두는  너무 가혹하지, 하는 마음이 들어 농땡이 부릴 마음도 접고 만다. 어쩐지 클라라와 합심하여 집을 치우고 정리하는 꽤나 즐겁기까지 하다.


문득, 떠오른 기억.

엄마는 예고 없이 청소를 시작하여 항상 나를 당혹하게 했는데, 예컨대 이런 식이다. 토요일 아침을 먹고, 좀 느긋하게 책이나 읽을까 싶어 빈둥거리고 있으면 엄마는 갑자기 나한테 화를 내면서 “어떻게 그렇게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있을 수가 있냐”로 시작해서, 정리되지 않은 방에 대한 지적을 지나, 청소와는 전혀 무관한 별의별 잔소리까지 쏟아내고는 했다. 아 왜, 뭐 또- 툴툴 거리며 나와보면, 아침밥을 먹었던 그릇들은 설거지가 되어있고, 청소기는 코드가 꽂힌 채 바닥에 놓여있고, 세탁기는 빨래가 완료되었다고 알람 중이고, 엄마는 수건을 개켜 화장실 선반에 넣고 있는 중이었다. 그때는 괜히 혼자 집안일하면서 히스테리를 부리는 거라고, 하기 싫음 말지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엄마는 청소가 하기 싫은 것이 아니고, 그저 클라라가 필요했던 거였다.


아니, 엄밀히 엄마의 클라라는 로봇청소기가 아니다. 그렇다고 나를 콕 집어 K-장녀의 의무를 다하라는 얘기도 아니다. 엄마에게는 단지 누군가 필요했다, 라는 뻔한 깨달음을 오늘에서야 나는 실감한 것이다. 같이 동선을 맞춰 움직이면서 활기를 느낄 누군가가, 이 모든 일이 혼자 짊어진 짐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해 줄 누군가가, 엄마도 필요했던 것이다. 단순히 효율의 문제기 아니다. 엄마보다 손이 훨씬 느린 내가 옆에서 알짱거리고, 침대 밑에서 길 잃은 클라라가 삐-삐- 울어도, 누군가와 같이 한다는 그 즐거움- 그 원초적인 교감이 우리 모두에게는 필요한 것이다.


2022.9.30



+ 천만년 만에 청소 한번 하고는, 집 상태가 꽤나 마음에 들었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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