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희정 Aug 15. 2016

01. 뜻 밖의 천둥이

20151027 유기견을 "덜컥" 입양한 신혼부부 

엇갈린 시작.

천둥이가 우리 집에 온 것은 우연에 우연이 거듭된 사건이었습니다. 천둥이는 원래 미국으로 갈 예정이었고, 저도 다른 아이를 입양할 계획이었거든요. 

시작은 '생명공감'사이트의 안락사 명단에 오른 ‘스파키’였습니다. 어릴 때부터 품어온, 귀가 쫑긋한 테리어 계통의 올 블랙 로망견! 그렇지만 9개월 차의 신혼부부라는 것이, 새 사람, 새 살림에 적응하느라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존재이기에, 몇 일 동안 고민이 계속 됐습니다.  맞벌이 부부, 더욱이 18평짜리 좁은 집. 이 집에 혼자 두는 것은 이 아이를 위하는 일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마음을 돌리려던 차에 이런 글을 접하게 됐습니다.


“얼마 전 만해도 죽음의 문턱에 있던 녀석들입니다. 힘들게 찾은 살길을 위해 함께 도와주세요.”


그런가? 철창보다는 좁은 집이라도 내어주는 편이 나을까? 하루 서너시간이라도 같이 있어주는 것이 나을까?

그제야 스파키 입양의사를 밝혔으나, 다행히 이미 저보다 먼저 결심해주신 다른 분께 입양을 가게 됐더군요. 

아쉬움도 잠시, 솔직히 말하자면, ‘무거운 짐이 나를 피해 갔구나’하고 안심이 됐습니다. 



생명공감에서 스파키 대신 천둥이의 임시보호를 도와줄 수 있겠느냐고 연락이 왔습니다. 미국입양이 결정된 아이인데, 2주 정도 임시보호를 하면서 예방접종이며 중성화 수술 등을 진행해야 한다면서요. 강아지를 입양하느냐 마느냐의 고민을 직전까지 했던 터라, 까짓 2주 못 맡을 것도 없다 싶었습니다. 

언뜻 사진으로 본 천둥이는 참 못생겼더군요. 헝클어진 털, 사시인 것도 같고 심지어 부정교합까지. 너무 못생겨서 국내입양은 힘든 게로구나, 하며 2주 정도 임시보호를 하기로 했습니다.

 

보호소시절의 천둥이


10월 17일, 유난히 더웠던 토요일. 

서울역에서 처음 만난 천둥이는 지독한 냄새를 풍기며 케이지 안에 들어있었습니다. 미리 예약해두었던 집 앞 동물병원에서 털을 빡빡 밀고 보니, 예상보다 더 못생겼더군요. 심지어 불러도 오지 않고, 눕지도 않고, 벽만 보고 꾸벅꾸벅 조는 이 뻣뻣한 녀석을 내가 왜 맡았을까, 이왕이면 예쁜 강아지가 좋았을 텐데 하는 멍청한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날 저녁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평소에 감정표현이 많이 없는 양반김(남편, 선비 같은 성격의 김씨 남자)이 아가 다루듯 천둥이를 안심시키고, 천둥이는 그런 양반김을 올려다보며 눈을 맞추고, 저는 그 모습에 감동을 받고… 우리 셋의 삶이 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우연은 한번 더 일어났습니다. 천둥이가 타기로 한 비행기가 2번이나 취소가 되었거든요.  그 사이 천둥이가 바로 입양 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보호소에서 가족을기다려야 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이제 겨우 푹신한 잠자리와 가족의 체온에 익숙해진 아이에게 다시 철창이라니. 그래서 우리는 천둥이와 같이 지내기로 했습니다.  미국에는천둥이 대신 두 마리의 다른 강아지가 가기로 했습니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사실 첫날 저녁부터 미국에 보내지 않을 생각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다행이야

천둥이는 무던한 강아지로, 같이 지내기 재미있는 아이입니다.  가장 좋아하는 장난감은 양반김의 구멍난 양말이고, 방구를 뻔뻔하게 잘도 뀌죠. 가끔 산책을 시켜주는것만으로도 엄청 즐거워하고, 퇴근하는 우리를 매일 열렬히 반겨줍니다.

요즘 천둥이에게 ‘사랑해’라는 단어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천둥이가 가만히 저에게 기대오거나, 눈을 맞추거나, 머리를 쓰다듬을 때에도 사랑한다고 말해줍니다. 천둥이에게 한 번, 옆에 있는 양반김에도 한 번. 그럴 때마다, 제 마음속에도 뜨거운 무언가 뭉글거립니다.  

천둥이의 어린 시절을 모른다는 것이 가끔은 아쉽지만, 앞으로더 많은 날들을 함께 하자고 약속하면서 우리는 첫 번째 여름을 뜨겁게 보내고 있습니다. 


*이 글은 'oh!boy' 070호 <나의 개 이야기>에 실렸던 글입니다. 

김현성 작가님 덕분에, 천둥이와 함께 즐거운 경험을 하였고 또 근사한 가족사진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 드립니다. 

작가의 이전글 진눈깨비라고 하지,    이런 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