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 지긋지긋한 인생의 동반자
2021년.
나는 간호대학을 졸업해 입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좋은 대학을 졸업한 것은 아니었으나 나름의 노력으로 학점이 4점대였고, 토익 성적도 꽤나 괜찮아서 이대병원과 서울대학병원에 최종 합격했다. 나름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결과였으므로 국가고시 후 기분 좋게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난다. 두 병원의 입사일이 거의 1년 차이였기에 빨리 불러준 이대 병원에 먼저 입사해 일을 배워보기로 결정했다. 일사천리로 병원 근처에 집도 구하고 가구도 구매하며 입사일만 기다렸다. 당시 나는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는 상태였기 때문에 두려울 것이 없었다. 하지만 이 꿈같았던 시간들은 입사 직후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내가 배치된 부서는 외과 이식병동이었다. 병원에서 가장 태움이 심한 병동. 그것이 내가 일하게 된 병동의 또다른 이름이었다. 현실은 소문보다 더 냉혹했다. 입사 이틀차에 약을 몽땅 깔아놓고 뭐가 뭔지 물어보지를 않나, 국가고시를 본 건 맞냐고 하며 비꼬기도 하고.. 한시도 쉬지 않고 갈구고 태워댔다. 내가 입사하기 몇달 전 5명의 신규를 한꺼번에 받은 그 병동은 입사 한 달만에 4명의 신규들이 응급사직을 하게 만들었다. 그 곳은 그런 곳이었다.
나는 내가 태움을 잘 견딜 줄 알았다. 본디 내 성격과 기질이라면 그게 가능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고등 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ENTJ로 살고 있다. 목표가 확실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며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성격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가진 트라우마를 간과했다. 당연하다. 잊어버린 줄 알았으니까.
병동에서 일하게 된 지 첫날부터 맞닥뜨린 태움에 나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조곤조곤한 말로 나를 한없이 몰아세우는 프리셉터가 새엄마 같았다. 나를 죽일 것만 같은 느낌에 집에 가서도 공부는 하지도 못하고 방을 뱅뱅 돌며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죽을 것 같았다. 죽고 싶었다. 차에 치여버리고 싶었다. 어렸을 적 새엄마와 살 때 느꼈던 죽을 것만 같은 숨막히는 두려움이 겹겹이 쌓아뒀던 마음의 벽을 뚫고 터져나왔다.
무력감과 두려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다시 초등학생으로 돌아간 것만 같아 괴로웠다. 후에야 이것이 PTSD였다는 걸 알았다. 당시 만나던 남자친구는 나에게 "아무도 너를 해치지 않아. 괜찮아... 너는 그 때의 네가 아니야."라고 했지만 나는 그저 그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다. 어느 날은 자고 일어났는데 블라인드의 줄을 보고 '저기에 목을 매면 죽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 전까지는 그냥 막연하게 죽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정말 구체적으로 죽음을 생각하는 나를 보며 멈춰야겠다고 느꼈다. 그 날 나는 응급사직을 했다.
응급사직 이후 나는 더 심연으로 빠졌다. 그까짓 유년시절의 트라우마조차 이겨내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내가 너무 한심하고 쓸모없이 느껴졌다. 월세는 내야 했기 때문에 집 근처에 있는 신생아실에 지원을 했다. 좀 더 라이트한 환경에서 일을 하면 괜찮을 줄 알았다. 오산이었다. 정신과에서 처방 받은 항불안제 없이는 일을 할 수 없었다. 나이트 근무 전에는 두시간동안 어쩔 줄 모르며 울다가 출근을 했다. 병원에 있으면 가만히 있어도 등이 젖을 정도로 긴장이 되고 배가 아팠다. 아기들은 귀여웠지만 혹시라도 내가 놓칠까봐 무섭고 두려웠다. 결국 한달을 버티지 못하고 또 사직하고 말았다. 사직하는 날 수선생님과 면담을 하고 병원을 나서는데 그 전에는 나와 별 대화를 하지 않았던 고연차 선생님이 날 기다리고 계셨다.
나를 차에 태워서 내 이야기를 말없이 들어주시고는 꼭 안아주시며 고생했다고 해주셨다. 지금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선생님도 아픈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계시는 분이었다. 힘들겠지만 좀 더 버텨볼 생각 없냐며, 반복되는 사직이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며 신생아실이 어렵지 않은 곳이니 이 곳에서 적응하며 회복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하지만 그 당시에 나는 그 어떤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냥 다 그만두고 먼지가 되어 사라지고 싶었다. 그래서 죄송하다고 했다. 선생님은 이해한다며 나를 응원하며 보내주셨다.
이후 매일 침대에 누워 산소만 축내는 시간을 보냈다.
나는 간호사가 된 것을 철저히 후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