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FILM AND BOOK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서형 Jan 31. 2021

문제 풀기 전, 해답지 먼저 펼치기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힐빌리의 노래>

    연초에는 아무래도 해피엔딩이 도움이 된다. 머리를 싸매고 문제를 풀기에 앞서 남이 만들어 놓은 해답지를 당당하게 먼저 펼쳐보려 한다. 나는 문제집을 사면 해답지부터 빼앗기던 어린이가 더 이상 아니니까. 새해가 되면 사주나 운세를 보러 가도 되는 나는 어른이 되었으니까.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힐빌리의 노래>는 가족을 생각하게 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할머니는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로 위로를 건넨다. 손자인 J.D는 가난한 가정 환경과 약물에 중독된 엄마의 폭력에 지쳐 있다. 그나마 자기 편인 것 같은 할머니와 텔레비전을 보다가 J.D는 슬쩍 질문을 던진다.



“할머니는 좋은 쪽이죠?”

“늘 그렇진 않았지. 살면서 익힌 거야. 정신만 바짝 차리면 너도 할 수 있어. 넌 나랑 비슷하니까.”

-      영화 <힐빌리의 노래> 중에서


    할머니는 손자에게 말한다. 우리는 비슷한 성향의 사람이라고. 어려운 배경에서 자기가 살아남은 것처럼 너도 그럴 수 있다고 말하면서 아이에게 용기를 준다. 영화는 이후 현재와 과거를 오고 가며 에피소드를 늘어 놓는다. 그렇게 J.D의 성장기를 보는 동안에도 유난히 ‘넌 날 닮았으니까 할 수 있다’고 위안을 주는 할머니가 마음에 남았다.



    엄마는 남자친구가 바뀔 때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거처를 옮긴다. 그 탓에 J.D와 누나는 마음을 둘 곳을 찾지 못하고 불안해 한다. 어린 J.D는 곧 약과 술에 손을 대고 사고도 친다. 준비물을 못 챙겨 학교 수업에서도 흥미를 잃는다. 영화는 예일 법대생이 된 J.D로 첫 장면을 시작했는데, 할머니의 위로는 뒤늦게 그에게 어떤 변화로 작용한 걸까?


[1] 버리기

     가장 먼저 J.D는 과거의 자신을 버렸다. 영화 주인공이니까 과감하고 용감하게 포기해도 됐을텐데, 아깝고 두려워 머뭇거리며 도전을 선택한다. 게임기를 붙들고 방구석 소파에 기대어 앉아 있던 J.D를 할머니가 데리러 오자, 그는 채 마무리하지 못한 게임 화면을 힐끔거리며 대화한다. 할머니 역시 가난하고 몸까지 아파 엄마와 지낼 때에 비해 별로 나을 것이 없다는 건 J.D도, 할머니도, 엄마도 이미 알고 있다. "너, 따라 갈꺼야?" 콧웃음을 치는 엄마와 막상 데리러 왔지만 확신이 없어보이는 지친 할머니 어느 쪽도 크게 의지가 되지는 않는다. J.D는 주저하면서도 꾸역꾸역 대답을 한다. “응, 나 할머니네로 갈래.”  잘 나가던 직업을 버리고 해외로 유학을 간다거나 결혼을 앞둔 애인과의 단호한 결별 같은 멋져보이는 선택이 아니지만, 엄마와 함께 살지 않기를 결정한 건 분명 대단히 큰 일이다. 


날 구한 건 할머니의 가르침이다. 우리의 시작이 우리를 정의하더라도 매일의 선택으로 달라질 수 있다.  우리 가족은 완벽하진 않지만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그들에겐 없던 기회를 내게 주었다. 

-      영화 <힐빌리의 노래> 중에서




[2] 눈 딱 감고 투자하기

    형편이 어려운 할머니는 정부 지원을 받고 있었다. 식료품 살 돈도 없었다. 푸드 뱅크에서 나온 1인분의 음식을 둘이 나눠 먹어야 하는 형편이었다. 뒤쳐진 수업을 따라가려면 먼저 공학용 계산기가 필요했다. 진행되는 수업에 꼭 필요한 준비물이었다. 그 기계는 80달러였고, 할머니가 한동안 쓰러지지 않고 지낼 수 있을 약을 살 수 있는 만큼의 돈이었다. 계산기를 훔치려다 붙잡힌 J.D를 위해 할머니는 지갑을 털어 물건 값을 계산한다. 엉겁결에 첫 선택을 하게 된 J.D는 그렇게 첫 투자를 받게 된다. 이후에도 그는 할머니 약 값 대신 가지게 된 계산기가 아깝고 고까워서 학교 과제를 하나라도 더 하게 되지 않았을까?


기회가 중요한 거다. 포기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기회는 오지 않는다. 

-      영화 <힐빌리의 노래> 중에서




[3] ∞

    아주 식상한 전개지만 세 번째는 반복이다. 지난하고 고통스러운 노력을 반복하는 것이다. 어려운 상황에서 몇 번의 선택과 도움을 받는다고 금세 나아질 수는 없다. 그럼 꾸준히 노력해 온 사람이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영화에선 생략되었지만, 결과를 통해 알 수 있다. 더 많은 투자와 더 나은 선택이 쌓였을거라고. 

    시간이 흘러 J.D가 대학을 졸업하고 로펌 취업을 앞둔 시점에도 엄마의 약물 남용은 계속된다. 1 ➣ 2 ➣ 3 ➣ 1 ➣ 2 ➣ 3의 무수한 반복을 통해 성공을 쌓아 올린 그지만, 이 상황에서 혼란에 빠진다. 엄마는 J.D가 애써 구한 시설에 들어가는 걸 거부하고 모텔 방에 같이 있어달라고 눈물로 애원한다. 3대에 걸쳐 고통받은 가정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엄마를 사랑하지만, 그는 엄마의 손을 놓는다. 자신의 취업과 사회적 성공이 엄마, 누나, 그리고 J.D 본인에게 꼭 필요하다는 걸 반복 작업을 통해 이제 알기 때문이다. J.D는 이 과정을 회고하며  ‘이들 가운데 누구라도 내 삶의 방정식에 변수로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마 엉망이 됐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아래는 영화의 실제 모델인 J.D 밴스의 TED 강연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iEy-xTbcr2A


     혼란에서 빠져나온 J.D의 회고록은 새해를 맞이하는 내게 용기와 위안을 북돋아 주었다. 시련과 고통에 죽을 것 같아도, 진짜 죽기 전까지는 삶은 계속된다. 물론 그 삶에는 매 순간 고민과 선택이 동반해야 할 것이다. J.D의 1,2,3,2,1,3,2,1,3 의 루프가 무한대로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올해 1월 1일은 빈둥빈둥 지내버려 음력 새해를 챙길 셈이다. 그의 무한 루프를 떠올리며, 2021 필승이다. 

+ 나는 어떤 사람인가 뒤지는 과정에서 추천 받은 책을 소개한다. '뭐가 되고 싶냐?'는 질문만 들으면 도망치고 싶어지는 내게 도움이 된 책이었다. 의지박약으로 여겨졌던 내가 어떻게 사회에서 살아남아야 하는지 작은 힌트가 되어 주었다. 


당신의 작은 승리를 계속 추적하라. 앞에서 당신의 작은 승리를 일기에 기록하여 이를 알아주고 격려해주는 것이 얼마나 동기부여가 되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특히 당신이 무언가를 배울 때 더욱 그러하다. 당신이 개념을 잡거나 아주 작은 진척을 만들어 낼 때마다 기록해보자. 

-      책 <모든 것이 되는 법> 중에서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 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