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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서형 Apr 15. 2021

아니, 나만 이렇게 상처받아?

응ㅋ 그런 듯?

"편집장님이 뭐래요? 혼났어요?"

뻘소리 파티였던 회의를 마치고, 편집장님과 따로 대화를 나누고 돌아왔더니 동료가 묻는다. 호기심 반 걱정 반인 눈을 하고서. "ㅎㅎ아니요. 그냥 얘기 했어요~"라고 얼버무렸지만 속으로는 발끈했다. '아니 여기가 어린이집이야? 내가 중학생이야? 뭘 혼나, 혼나긴. 그저 수정 요청을 받았을 뿐이라고.'


그리고 다음 날 회의 시간, 편집장님은 "원고 이렇게 줘서 어제 서형은 크게 야단 맞았어요."라고 모두 앞에서 말했다. 아... 안 그래도 요새 새 업무에 감을 못잡아 수시로 오들오들 떨리는 심장 부여잡고 일하고 있었는데, 짜증난다. 애써 표정이 지나치게 굳어버리지 않도록 노력한다. 마스크라도 있어 다행이다. 입은 이미 당혹감으로 울고 있다. "서형은 아직 한참 더 배워야겠어." 이런 내 맘도 모르고 기어코 한마디를 덧붙인다. 빠르게 동료들의 표정을 슬쩍 훑어본다. 오늘 처음 합류한 팀원은 날 어떻게 생각할까? 쟤랑은 같이 일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겠지? 얼마나 형편없는 일꾼이면 공개적으로 저런 얘기를 들을까 한심해하겠지? 아니, 서로 생각이 달랐을 뿐 내 원고가 틀리다고 할 수 있나? 잘하려다 실수한 건데 대단한 죄를 저지른 것처럼 말이야. 왜 나한테만 못되게 하는 거지? 이게 혹시 요즘 유행하는 가스라이팅, 그런 건가? 돈 좀 벌겠다고 이렇게 억지로 일하다가 사람 하나 망가지는 거 아닌가? 근데 왜 아무도 내 편을 안 들어주지? 다 한통 속인가? 왜 다 한통 속이지? 나 지금 따돌림 당하는 건가?


꼬리에 꼬리를 문 우울한 질문은 무려 일주일을 통째로 잡아 먹었다. 소화가 안되고 기력이 없었다. 고민하다가 다른 동료에게 털어놨더니, 힘 빠지는 소리를 한다. 

"엥? 그렇게까지 상처받을 일 아닌 것 같은데요?" 

참나, 순식간에 별 것도 아닌 걸로 징징대는 애새끼맨이 됐다. 아니 내가 아니라 누구였어도 분명 상처 받았을 거라고! 



이 유쾌한 쇼는 넷플릭스 오리지널의 <파티셰를 잡아라!>다. 미국 버전 말고도 스페인, 프랑스, 멕시코 버전이 있다. 공통된 구성을 하고 있다. 세 명의 아마추어 베이커와 세 명의 심사위원이 등장한다. 두 번의 미션을 수행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베이커가 상금을 가져가는 내용이다. 전문가가 만든 작품과 한 시간 내외의 빠듯한 제한 시간이 주어지는데, 시간 내에 작품을 따라 만들어야 한다. 



왼쪽의 작품을 보고 만든 결과물은 대체로 오른쪽과 같이 엉성하고 처참하다. 심사위원은 배를 잡고 비웃거나 눈 뜨고 보기 끔찍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윽. 아주 해괴한 형상이에요." 라며 대놓고 먹기 싫어하기도 한다. 케이크 시트를 너무 건조하게 굽는 바람에 바스러지는 형태를 겨우 뭉쳐 팅커벨을 만든 참가자에게는 이렇게 말한다. 

"풉. 팅커벨이 피터팬을 잡아 먹은 형상이네요."


이 쇼의 심사위원은 맘껏 비웃는다. 웃음을 참으려는 노력조차 없어 보는 내가 다 민망할 지경이다. 참가자들이 가진 힘을 쥐어짜내서 미션을 하던 걸 보고도 어쩜 저렇게 말하지? 무례해! 두 번째 미션이 시작되고 참가자들은 또 허둥댄다. 계란을 떨어뜨리고, 갓 구운 빵이 틀에서 분리되지 않고, 색소 범벅이 되고, 기껏 세워놓은 케이크는 쓰러진다. 선반에서 재료를 찾지 못하고, 그 사이 장식한 초콜릿이 녹아버린다. 인터뷰에서 참가자들은 말한다. "전 스트레스가 심하면 다른 사람이 돼요.", "그런 건 한 번도 안해봤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할 수 있는대로 했어요."


"아, 망했다." 우르르 쏟아져버린 케이크를 보고 참가자 1이 좌절한다. 참가자 1은 우리 엄마 또래의 중년 여성이다. "레시피를 따라 구워도 제가 하면 안돼요. 노력은 하는데 똑같이 안되더라고요. 그래도 딸이 옆에서 늘 응원해줘요. 상금을 타면 베이킹 수업을 듣고 싶어요. 저는 잘 못하니까요." 라고 한 자기소개가 기억에 남았다. 이미 여러 번의 실패를 겪고 조금은 내려놓았지만, 여전히 열정은 가진 듯한 모습이었다.

속이 상한 참가자 1을 보며 심사위원은 즐겁다는 듯이 묻는다. "망쳤어요? 저절로요?" 참가자 1이 눈을 흘기자 옆자리의 참가자 2가 낄낄대며 덧붙인다. "오, 기분이 안 좋아 보여요." 


아니, 단체로 뭐야? 조롱 잔치 열렸어? 



두 번째 미션이 시작되었다. 참가자 1은 이번에야말로 당황하거나 흥분하지 않고 차분하게 임하리라 다짐을 했다. 그리고 와플 콘을 굽기 시작한다. 심사위원은 바빠 죽겠는데 굳이 왜 물어보는지 알 수 없는 질문을 던진다. "지금까지 한 번도 안 해본 일인데 기분이 어떠세요?" 
"별 기분 안들어요. 콘 만드는데 딱히 무슨 기분요?"


모자란데다 진지해 빠진 나는 일터에서 평가를 받으면 종종 공격당한다고 느꼈다. 웃으며 부드럽게 대응하면 나를 무시할 거라 생각해 그때마다 굳은 표정을 했다. 이번에 진이 빠지도록 진창에서 고민하고 고통받고 나니, 이제서야 보였다. 이 정도 평가와 딴지는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고. 별 것도 아니라고. 그러니까 별 기분까지 들 필요 없다고.


쇼의 마지막은 이렇다. “제가 해냈어요!(Nailed it)” 미션으로 만든 케이크를 공개하는 순간 큰 소리로 외친다. 내가 만든 결과물을 빈정대고 비웃는대도 별 일 아니다. 프로그램의 시작에 이미 말하지 않았는가, 이 곳은 노력이 중요한 곳이라고(La intencion es lo que cuenta).


*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 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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