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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묭 Feb 14. 2022

What A Life

 

끝이 보입니다. 결말을 알기에 남은 페이지를 읽기가 귀찮아지는 것입니다. 곧 3월 중순이면 어느덧 1년을 다닌 일터의 계약이 마무리가 되는데요. 사실은 저의 결정에 따라서 조금 더 지속할 수도 있겠지만 그만하기로 저는 몸과 마음의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만하기로 결정을 내리고 나서부터 하루하루 출근하기가 여간 곤욕스럽기가 그지없습니다. 1개월마다 계약을 갱신하는 구조라면 더욱 길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저의 경우에 합당한 상상을 해봅니다. 한 달만 더 참지 뭐, 이번 한 달만, 한 달만 - 계속 그렇게 버텨가는 것이지요. 11개월이란 계약 연장조건엔 그저 질려버리는 것입니다. 하면 하겠지만, 하면 한다는 정신머리를 지금까지 버텨준 몸에게 미안하지 않겠습니까? 결국에는 어떤 태도로 받아들이느냐의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과연 그것으로 납득할 수 있을지가 의문입니다.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했으면 좋겠다는 중간 관리자의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해합니다 충분히 어느 부분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바라는지 이해합니다. 저는 이도 저도 아닌 상태를 유지하면서 나름의 줄타기를 하면서 버텨온 것인데요. 그냥 시간만 때우고 급여를 받는다는 접근으로 간다면 그 시간이 너무 지루하고 괴롭습니다. 좀 더 이것저것 개선할 수 있는 것들이 있지 않을까 하면서 시키지도 않은 일들을 만들어 해내는 시간들은 나름의 보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한계라는 것, 몸의 피로나 본사의 결정(며칠간 해왔던 것들이 아무 짝에도 쓸모 없어지는)등의 한계에 닿을 때면 무너져 내리는 것입니다. 이론상으로는 완벽하다고 그만두기로 몸과 마음의 결정을 내리기 전에 머리로 내린 결정이 있었습니다. 그만두고 실업 급여를 받는다고 가정해본다면, 실업 급여의 지급이 끝나기 전에 내가 무언가 다른 길을 모색하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기에 급여의 지급이 마무리된 후 다시 일을 구하는 상황이 될 것인데 다시 구하는 스트레스를 제거하며 돈의 지급 유지 기간을 늘리려면 11개월의 계약을 지금 연장하고 그 후에 실업 급여를 받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 아닐까 라는 결정이었습니다. 그렇게 그만두지 못하고 계속하게 되는 것이겠죠? 관성이란 것입니다. 아마 죽기 전까지 그만두지 못하겠죠. 제 은퇴는 곧 죽음이 될 것입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죠. 자신의 노동으로 벌어먹고사는 사람은 평생 일해야 한다고. 태도와 해석의 문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만 무슨 문제가 그리도 많은지요. 말이 많아서 벌어지는 문제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또! 문제가 늘었습니다. 점점 일이 능숙해지고 출퇴근과 일터에서의 긴장감이 줄어들수록 말은 늘어갑니다. 느슨해진 입가의 근육으로 굳이 더하지 않아도 되어도 되었을 말들을 더하고 더해갑니다. 여기까지 생각이 들자 지금은 일단 그만두는 게 좋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드네요. 매일매일 조금씩 벗어나느라 도중에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꽤 본래의 궤적에서 벗어난 것 같습니다. 남들이 보기엔 움직이지 않은 것 같아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제 기준에서는 그렇습니다. 넓혀가는 중이니 괜찮지 않은가 라는 의문에는 고개를 끄덕입니다.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것이 사는 낙이겠죠. 최근에 어나더 라운드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보는 내내 행복했습니다. 잘 모르겠고 삶이란 그저 한바탕 춤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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