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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묭 Jul 12. 2022

떠나간 그녀를 그리는 마음 그리기



사랑하는 그 여자가 내 곁을 떠났다. 이 글은 떠나는 그녀를 바라보는 마음을 일주일에 걸쳐 지켜봤던 내 마음에 관한 나의 관찰 기록이다. 우리는 서울에서 각자의 자취 생활공간을 영위하며 몇 년을 보내다 올해 3월쯤 좋은 기회를 맞아 살림을 합쳤다. 한 지붕 아래에서의 생활이 어느덧 당연한 일이라 여겨지던 차. 지난주, 그녀는 그녀의 어머니와 멀리 해외로 여행을 떠났다. 보름 가량의 여정이지만 국내로 돌아와서도 본가에 머무를 계획이기에 그녀가 이곳으로 돌아오는 날은 한 달 정도 이후가 될 것이다(글을 작성하던 중 그녀는 홀로 더 타국에 머무르다 올 계획을 밝혀 국내에 들어오는 것이 한 달 정도 이후가 될 것이다). 떠나간 그 여자를 그리던 나의 마음은 어떠한 모습이었던가. 내게도 혼자만의 시간이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처음 여행 계획을 들었을 때 나는 일단 자취 생활을 영위하던 때의 자유로움을 떠올렸다. dobby is free 라는 말을 농담과 진담을 버무려 뱉어내고 나는 얼마간 자유와 일탈을 만끽했다. 나는 이웃집 여자와 손을 잡고 먼 타국에 있는 그녀의 꿈속을 거닐기도 하였고 혼자 치킨에 와인 한 병을 마시고 티비로 유튜브를 틀어 둔 채 내일이 없는 것처럼 깊은 잠에 빠지기도 하였다. 나에게 일탈은 그러한 것들이지만 그녀가 느끼는 불안감을 납득하지 못하는 것은 또 아니기에 우리의 대화는 뻔한 사람들의 뻔한 전개로 흐르진 않는다.

얼마간의 자유와 일탈을 누리고 나서는 직면해야 하는 것들을 직면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상황이 조금 심각하게 흘러가고 있었는데 그것은 내가 점점 나태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나에게 심각한 상황은 그러한 것들이기에. 그리고 스스로의 나태함을 직면하기에 앞서 떠나간 그녀에게 책임을 덮어 씌우고 나태함에 면죄부를 주려던 마음이 잠시 스치기도 하였다. 남아서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마땅한 상황이더라도 별다른 수가 없이 서운함이라는 감정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게 내가 이래도 된다는 명분을 제공해주는 것은 아니다. 마치 그녀가 보란 듯이 내가 이렇게 나태해지고 망가지는 것은 떠나간 너의 잘못이다. 보란 듯이 더 망가질 것이다. 마치 이역만리에 있는 그녀의 마음을 여기에 붙잡아 두려는 듯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지독한 생각에 물론 자리를 내어줄 필요는 없지만 그 존재를 애써 부정할 필요는 없다. 그런 생각도 드는 것이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다만 그뿐이다 그 이상 자리를 내어주는 것은 좀 더 깊은 곳에 다른 이유가 있겠지. 삐졌겠지 어디서.

아무튼, 난 삐졌던 것은 아니기에 이제 자리를 되찾고 직면할 상황을 직면하게 되었다. 혼자 원룸에서 생활하던 시절에 근무의 피로와 스트레스로 눈을 가리다 휴일이면 찾아오던 그것과 다시금 직면하게 되었다. 살림을 합치고도 휴일이면 찾아오지 않았느냐고 한다면 나는, 그녀를 핑계 삼기도 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오도 가도 못하게 되었고 돌이켜 보니 항상 뻔한 결말이었다. 나도 결국에는 뻔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뻔한 전개이기에 뻔한 결말로 이야기가 흐르는 것이 아닌가. 조건이 한결같은데 도출되는 결과가 다를 수 있을까. 물을 듬뿍 주고 습한 곳으로 옮겨 주었더니 시들었던 물봉선화가 다시 활짝 피었다. 그녀가 돌보던 식물인데 꼭 내가 죽일 것 같다던 말이 씨가 되었는 줄 알고 잠시 흠칫했으나 조건이 맞으니 다시 생기가 돋았다. 내게 맞는 조건을 찾아 맞춰준다면 나도 다시 활짝 피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녀가 나의 필수 불가결한 조건이라는 것은 물론, 보란 듯이 적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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