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다원 No40] 예술人기획人행정人 부족 간 인터뷰 프로젝트
마흔 번째 좌표도 서른아홉 번째 인터뷰이 "N개의 자기다움과 협업하는 영도의 문화기획자 한예리"님에 이어 부산 영도문화도시센터로 가보았습니다. 영도 문화도시센터가 일하는 방식의 핵심 DNA는 '연결과 성장'입니다. 영도가 말하는 연결의 의미는 무엇일까, 왜 연결이 필요했을까, 따로 떨어져 있는 노드(node)들은 어떤 갈증과 결핍이 있었을까, 그렇다면 영도는 어떤 방법과 태도로 연결을 시도할까의 궁금함을 가지고 지켜보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영도의 젊은 '링크 마스터'를 만났습니다. 이 인터뷰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모처럼 감정이 올라오는 경험도 하였습니다. 행정 로켓으로 쏘아진 연결망은 추락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네트워크가 달라지면 삶의 질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연결을 통한 성장과 삶의 변화에 관심이 있다면 일독을 권해봅니다.
"점과 점을 잇는 연결자, 영도의 링크 마스터 전소영"
1. 이름은? 사회에서 연차는 어떻게 되시나요?
전소영입니다. 2017년 졸업을 하고 저작권위원회라는 곳에서 인턴을 시작으로 중간에 공백기도 있었지만 여러 문화재단과 지금 영도문화도시센터까지 어느덧 6년 차 직장인이 되었습니다.
2. 어떤 일을 해 오셨나요. 일터(작업의 공간)에서 당신의 역할을 소개해주세요 & 역할 속에서 자신의 직업 정체성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점과 점을 잇는 '연결자' 같아요. 요즘 연결이라는 말을 너무 많이 사용해서 적당한 표현이 없을까 고민했지만, 기획자 행정가 그 어떤 것보다 연결자라는 말이 와닿고 저의 직업정체성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영도에서 3년 차가 넘어가니 이런 직업 특성이 더 뚜렷해지는 것 같아요. 점점 복작해지는 사회에서 서로 다른 영역과 조직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계와 협력을 촉진하고 다양한 차원에서 관계망을 만들고 지원하는 게 저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3. 한번 떠올려 주시겠어요. 당신이 하는(해 왔던) 일을 선택했던 내적인 욕구, 초심, 계기, 우연 등은 무엇이었나요.
처음 이 일을 선택했을 때 가장 큰 저의 욕구는 사회에 조금이라도 선한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거였어요. 그게 어떤 방식이 될지는 몰랐지만 막연히 공공 영역에서 저에게 조금이라도 흥미 있는 분야인 문화예술과 관련된 문화재단이 시작이었고요.
막상 멋지기만 한 현장이 아니었고, 폭염에 풀장 설치를 위해 돌을 줍고, 테이블을 깔고, 예술인 분들 창작준비금 지원을 위해 건강보험 서류를 검토하는 일들의 연속이었지만 부산이라는 지역은 이런 생태계를 가지고 있구나, 현장에서는 이런 일들을 하는구나를 조금씩 알게 되면서 다음 스태프로 넘어갈 때 저만의 기준이 생겼던 것 같아요. 그리고 지금 영도에서 보낸 3년 넘는 시간 동안 양성사업인 기획자의 집을 담당하면서 사람들의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문화가 가진 힘을 알게 되었고, 누군가를 초대하고 변화의 계기를 만드는 이 일이 즐겁고 선택의 후회는 없는 것 같아요.
4. 당신이 하는 일에서, 당신이 생각하는 고객은 누구인가요? 당신이 생각하시는 고객에게, 당신은 어떤 역할기대와 요구를 받는다고 생각하나요.
지역에서 계속 살아가고 싶고 일해보고 싶은 사람들이요. 결국 지역에서 일하고 싶은 의지도 있으시고, 지역을 애정하시는 분들이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를 고민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이분들에게 지역의 다양한 일거리 정보와 자원을 알려주는 것, 그리고 함께할 동료를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것, 활동역량을 키울 수 있는 좋은 교육과 전문가를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기대하는 것 같아요.
5. 당신이 하는(해왔던) 일의 시퀀스('기-승-전-결')는 보통 어떤 흐름으로 이루어지나요?
제가 담당하고 있는 양성사업을 예로 든다면 올 한 해 중요하게 해야 하는 '역할' 정의를 먼저 하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초기에는 지역에 다양한 문화적인 일을 할 사람들을 발굴하는 역할이었다면, 올해는 다양한 사람 자원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에 대한 역할로 넘어가듯이 그 해의 역할을 정하고,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풀지를 센터 내부나 참여하는 당사자와 방향을 잡는 시간을 가지는 것 같아요. 라운드테이블을 열어서 현장에서 필요한 요구를 듣기도 하고 센터가 가진 내부적인 여력도 확인해서 우선순위도 정하고요.
그다음 이것을 함께 해줄 협력자를 찾는 것 같아요. 이 일을 했을 때 가장 잘할 수 있고 시너지가 날 멘토님, 운영팀, 그룹장님 등이 예가 될 수 있겠네요. 그리고 이들과 함께 구체적으로 이 사업을 왜 해야 하고, 이 사업을 통해 사람들이 뭘 가져갔으면 좋겠는지에 대한 합을 맞춰나가는 작업을 초반기에 잡는 것 같아요. 사업의 목표는 센터에서 제안을 하지만 이것들을 참여하는 분들에게 전달해 주는 역할을 하는 멘토님과 운영팀이 해주시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한 공감이나 방향성이 맞춰지지 않으면 생각보다 엉뚱한 곳으로 사업이 진행될 때가 있어요.
이후 이 사업의 의미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방식으로 프로그램을 짜고, 사람들을 모으고 프로그램을 진행해요. 이 과정에서도 다시 이 프로세스가 맞는지 체크하는 중간점검 시기를 가져요. 멘토님이나 그룹장님들과 중간 미팅도 하고, 현장에 직접 가서 참여자들과 대화도 하면서 어떻게 참여하고 어떤 경험을 가져가고 있는지 점검해요. 또 그 경험이 저희가 잡았던 목표에 못 미친다고 한다면 중간에 추가적으로 프로그램을 넣기도 하고 방식에 변화를 주기도 하고요. 그리고 전체 교육과 실험과정이 마치면 맺음 공유회나 인터뷰 자리를 만들어서 이들이 과정에 참여하면서 느낀 변화나 의미를 말하고 정리해 보는 시간을 가져요. 특히 이런 자리들을 통해 참여하시는 분들 중에 센터의 다른 사업들과 연결해볼 수 있는 분들, 관심사나 욕구를 체크하는 것 같아요. 단순히 1년 교육으로 끝나지 않고 이분들과 다음 활동을 생각해야 하니깐요. 그래서 한 일을 하면서도 다음의 일을 같이 해볼 지점을 찾는 것 까지가 일의 흐름인 것 같습니다.
6. 일의 과정에서 '당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혹은 '요구받는 가치'는 무엇이 있나요?
제가 일을 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윈-윈'인 것 같아요. 나만 잘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지역의 변화를 만드는 것을 굉장히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기 때문에 함께 할 사람들에게 서로가 윈-윈 할 수 있는 지점을 잘 찾고 연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꼈어요. 중간지원조직의 역할은 단순히 지원하는 것뿐만 아니라 다양한 관계를 만들고 자원을 연결하는 역할도 하기 때문에 단편적인 부분만 보지 않고 아직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지역의 자원과 시장 또는 발견하지 못한 사람들을 찾고 이들과 함께 지역에서 서로가 윈윈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보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7. (최근 3년 동안) 당신이 특히 해결해보고 싶었던 문제(과제)는 무엇이었나요, (문제) 과제를 만났을 때, 진입장벽 혹은 페인포인트(그동안 해소하지 못한 불편함, 어려움 등)는 무엇이었고, 어떻게 풀어보려고 접근하셨나요
저의 가장 큰 고민이자 앞으로도 해결해보고 싶은 과제는 어떻게 하면 동료들과 고통스럽지 않게 건강하게 일할 수 있을까?입니다. 항상 일을 하면서 이런 질문을 가졌던 것 같아요. "왜 우리는 많은 시간을 일을 하는 데 항상 일에 치이고 허덕일까?" "왜 우리는 나답지 못하다고 느끼고, 방향성을 잃을까?" 그동안 속력을 다해 일을 하면서 직감적으로 저와 동료들이 건강하지 못하다는 걸 알았지만, 눈앞에 놓인 일을 쳐내기 바빠 그것들을 못 보고 넘기고 침묵했던 시간들이 길었던 시기가 있었어요. 그리고 그것이 폭발적으로 터졌던 것이 작년 가을 문화도시 박람회 행사 때였고요. 질문하지 않고 넘겼던 것들이 현장의 구멍을 만들고, 그것들을 채우기 위해서 동료들이 갈려나가는 것을 마주했을 때 내가 이런 현장을 만들었구나라는 죄책감과 부끄러움 때문에 힘들었어요.
다행히 주변의 도움으로 슬럼프가 생기지 않고 잘 넘겼지만, 지금도 현장은 크게 변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해요. 바쁜 것은 여전하고 일은 계속 치고 들어오니깐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은 있다는 것은 알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제가 시도해 볼 수 있는 한 가지는 실험해보고 있어요. '건강한 대화와 놀이'인데요. 이 일을 계속해나갈 수 있는 힘은 결국에는 내 옆의 동료의 역할이 가장 큰 것 같아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이 일은 절대 나 혼자 할 수 없기 때문에 동료들과 서로의 생각을 맞추고, 일하는 방식을 연결시키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더라고요. 단순히 일만 한다고 자동적으로 맞춰지는 것도 절대 아니고요.
그래서 팀 안에서 시도해보고 있는 것이 한 달에 한 번 조찬클럽을 열어서 개인이 올 한 해 공부하고 싶은 것들을 공유하고 나누는 시간을 가져보기도 하고, 팀 사진 앨범을 만들어 보기도 하고, 같이 공연을 해보거나, 밥을 먹는 시간들을 계속 가지려고 해요. 일은 힘들지만 그것들을 해나가는 데 적어도 서로의 안부를 물어보고 점검할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헤쳐나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8. (최근 3년 동안) 당신이 기억나는 '보람의 순간'이 있었다면
가장 가까운 2023년을 떠나보내던 12월 마지막주가 기억이 나요. 항상 연말은 못했던 것들에 대한 후회와 아쉬움이 가득했는데 작년에는 처음으로 나름 잘 살았다고 저에게 칭찬해주고 싶은 해였어요. 누군가에게는 별거 아닐 수 있지만 이 일을 시작하고 내 돈으로 첫 중고차를 사서 동료들도 태우고, 행사 짐을 실어 나를 수 있는 기동력을 가지게 되었고 2년 전 '기획자의 집' 프로그램에서 만났던 페인트집 사장님이 자칭 엔터테인먼트 대표가 되어 함께 쇼케이스 공연을 열기도 하고, 1년 동안 하루만 제대로 쉬고 싶다고 간절히 바랐던 시간을 3일 연차를 내고 혼자 강릉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서 휴식을 만끽할 때 그리고 1년 동안 저와 만났던 분들의 내년도 함께 잘 보내자는 안부 메시지를 받았을 때 일을 하면서 체력적으로나 심적으로 소진되는 부분도 많지만 그래도 이 일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과 저를 돌보는 일상적인 시간에서 보람을 느끼는 것 같아요.
9. 당신이 가진 내적인 힘들 가운데, 어떤 힘이 강하신 것 같나요(장점, 나다운 것 등)?
저의 가장 큰 힘은 포용력과 개별화인 것 같아요. 저는 본능적으로 그 사람 특성에 대해 파악하고 맞춰서 대처하는 능력이 있는 것 같아요. 항상 섣불리 사람을 판단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사람들 각자 어떤 스타일을 갖고 있고 어떤 부분에서 동기를 얻는 독특한 경험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것들을 잘 경청했다가 사람들이 가장 잘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돕는 데 큰 보람을 느껴요. 아마도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누군가를 발굴하고 서포트하면서 성장을 돕는 일이라 하다 보면 다양한 요구에 지칠 수도 있고 때로는 나는 성장을 하고 있나? 질문이 생길 수 있는데, 동료나 친구들이 가진 각자의 요구를 개개인의 경험과 연결 짓고 어떤 것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인지하고 이해하면서 필요한 것을 캐치하고 그것들을 기가 막히게 제공해 줄 때가 즐거워요. 그런 부분이 힘들지 않고 즐겁다는 게 이 일을 계속해나갈 수 있는 저의 원동력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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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당신의 생각과 행동에 영감/영향력을 주었던 책, 음악, 공연, 영화, 전시 혹은 저자, 작가 등을 소개해주신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아주 많은 것에 흥미를 느끼는 사람이라 항상 언제 필요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잡다한 생각과 이것저것 찾아다니며 봤던 모든 것들이 저에게 영향을 주고 있을 거라 하나를 소개하기는 좀 어려운데요. 그래도 20대 시기에 가장 많이 찾아보고 좋아하는 분인 이동진 영화평론가를 소개하고 싶어요. 대학생 때 이분이 진행하시는 라디오를 듣고 목소리에 처음 빠져는데요. 이분의 영화를 보는 시선과 생각, 쓰는 언어, 그리고 수년간 모은 책, 영화, 음악이 있는 기록 보관실 파이아키아(제 꿈의 공간)를 좋아합니다. 좋은 영화와 책을 보고도 저는 '좋다'라는 말 외에는 표현하는 게 어려운데 이동진 평론가는 본인의 견해와 생각을 본인의 견해를 적확하게 풀어주는 부분이 무척 닮고 싶기도 하고 감탄을 부르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전체는 되는대로'라는 이 분의 인생모토 역시 닮고 싶어요. 내 인생은 변수도 많고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오늘 하루는 내가 잘 살아볼 수 있다! 는 말에 공감을 하고 제 삶을 살아가는 태도가 된 것 같아요.
11. 앞으로 어떤 일(작업, 역할)을 하고 싶나요? 그것을 위해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준비하고 있(싶) 나요?
앞으로 해보고 싶은 것 두 가지가 있는데요. 첫 번째는 '사람의 성장'과 관계된 조직문화 연구나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일을 하고 싶어요. 운이 좋게 영도문화도시센터에서 양성사업 담당을 하다 보니 사람은 어떻게 성장하고 변화하는지 그리고 어떤 지원이 있을 때 더 부스터를 달게 되는지 이런 것들 사이에 의미를 찾고 사람들의 강점을 발견해 주는 일이 재미있어요. 저 개인의 욕구와도 잘 맞고 제가 잘할 수 있는 일이라는 확신이 들어요. 또 이런 사람의 성장과 더불어 이들이 일으키는 변화가 사회에 어떤 선한 영향을 미치는지 설명해 줄 수 있는 '임팩트' 측정과 연구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관련된 연구자료나 이것들을 하는 다양한 형태의 조직들 레퍼런스를 모아보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창업인데요. 항상 누군가에게 '내 일을 스스로 만들어 보세요.
욕구를 찾아보세요. 무엇이든 도전해 보세요.'라는 말을 하면서도 막상 저는 주어진 일을 하는 사람이었지. 제 스스로 만들어본 일이 손에 꼽는 것 같다고 느꼈어요. 100만 원을 벌더라도 a에서 z까지 직접 일을 만들어보는 경험을 해보는 게 저의 다음 트랙이에요. 다행히 올해 저와 함께 창업을 해보고 싶다는 동료를 만나서. 함께 사업 계획도 쓰고 다양한 공모사업에 도전하면서 시행착오를 겪고 있습니다. 아직 잘될지 안될지 저도 알 수 없지만 새로운 세계로 가는 길이 설레고 지금 하는 일을 하는데도 동기부여가 되는 것 같아요.
12. 당신을 좀 더 알 수 있는 소셜미디어/사이트/뉴스를 알려주세요.
다른 소셜미디어는 없지만 저에 대해서 더 궁금하신 분들은 midnightradio.me@gmail.com 여기로 연락 주세요! 번외로 점심시간을 무척 사랑하는 1인으로서 점심사냥꾼으로 활동한 인스타그램 계정을 공유드립니다. @dr.lunch_hunter
점과 점을 잇는 연결자, 영도의 링크 마스터 전소영 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