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조직문화란 무엇인가, 1장 4절]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법정 문화도시로 지정되기 위해서는 경쟁을 이기고 선택받아야 했습니다. 선택을 받기 위해서 조직기반이 없는 지역에서는 문화도시 TF 조직을 만들기도 했고, 기초문화재단이 있는 지역에서는 별도 사업부서를 재단 내 임시로 만들기도 합니다. 우리는 필요에 따라 조직을 개편하는 일은 흔하게 경험합니다. 조직개편은 언제 일어나나요? 변화가 필요할 때, 우리는 조직을 개편합니다. 새로운 조직을 신설한다는 것은 새로운 변화가 필요할 때입니다.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야 할 때, 우리는 새로운 조직을 출범(出帆)시킵니다. ‘출범’의 ‘범’은 돛, 돛단배를 의미해요. 보통 범선이라고 하면 돛을 단 배를 의미하죠. 그래서 출범은 배가 항구를 떠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출범시킨 조직마다 임무(mission)가 있고, 도달하고자 하는 비전이라는 목표가 있지요. 출범한 조직은 임무를 완수하면 원하는 비전의 항구에 도착할 수 있지만, 바다 한가운데 침몰할 수도 있습니다. 항구를 떠나는 출범의 순간은 긴장감과 설렘이 교차합니다. 만약,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항로를 찾아 새로운 항해를 시작해야 하는 배의 선장이 되면 어떤 마음이 들까요. 두려움이 생길 겁니다. 두려움의 기저에는 내가 과연 ‘변화를 이끌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마주할 때입니다. 전문가는 내 일을 잘하면 되지만, 리더는 이 배와 이 배에 함께 탄 조직원을 움직일 수 있어야 합니다. 영도 문화도시센터의 리더 고윤정은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저는 2019년 문화도시 올 때,
사실 가장 큰 스트레스가 센터장이라는 포지션 스트레스가 제일 컸거든요.
왜냐하면, (조직에서 최종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이런 자리를
이전에 경험을 해보지 못했어요. 처음에 센터장으로 오게 되면서
나는 어떻게 조직을 운영해야지 불안하고 도망치고 싶고 그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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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윤정 센터장(이하 고윤정)의 당시 마음은 내가 맡아야 하는 조직 규모와 관계없이 선장의 자리에 있게 되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고민입니다. 5년이 지난 지금 그녀는 문화도시 분야에서 가장 큰 영향력과 영감을 주는 리더 중 한 명으로 성장하였습니다. 여기서 첫 등장 하는 영도문화도시센터의 캡틴 크루(Captain Crew) 고윤정을 소개하겠습니다. 아래 QR코드를 찍으시면, 저와 했던 인터뷰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인터뷰 글을 보시면 그녀의 대략적인 캐릭터와 세계관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제가 꾸준하게 해온 일 중에 한국 문화행정 분야에 인사이트를 주는 예술인, 기획인, 행정인을 대상으로 이들의 ‘직업정체성’을 탐색하는 인터뷰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이때 만났던 고윤정의 직업정체성은 ‘문화로 사회변화를 도모하는 문화기획자’였습니다. 문화기획자로 “저는 왜 일하는지, 그리고 조직의 본질이 무엇인지,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 그리고 변화의 임팩트에 집착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라는 일의 방식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영도문화도시센터의 선장이 되어 이 배에 함께 탄 승조원들과 ‘문화의 힘’으로 영도 지역의 ‘사회변화’를 도모하는 비전을 꿈꾸며, 출항했을 겁니다. 조직이라는 배가 대양을 건너는 변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동력이 필요합니다. 동력은 어떤 일을 밀고 나갈 힘입니다. 다시 말해 변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행동할 수 있어야 하고, 행동하기 위해서는 동력을 만들어야 합니다.
동력은 시대의 바람을 타는 외적인 힘도 중요하지만 먼저 리더를 중심으로 조직에 있는 사람들이 내적으로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비전으로 가야 하는데, 만약 현재 구성원이 보유한 역량과 경험이 부족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문화도시는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사업입니다.그래서 도시별로 문화기획 역량과 경험도 충분하면서 동시에 지역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큰 사람을 확보하기 쉽지 않았을 겁니다. 우리 지역을 잘 알면 문화적 역량이 부족하고, 문화적 역량이 좋으면 우리 지역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실제 춘천, 영도 문화도시 조직이 출발할 때, 사회경험이 많은 직원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내부직원을 성장하게 하는 일의 방식이 중요했습니다. 고윤정은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동료들과 함께 성장하는 문제는
저에게 가장 큰 과업이었어요.
무엇을 할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일할 것인가도 너무 중요했어요.”
이 질문은 리더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질문인 것 같지만, 많은 리더가 하지 못하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많은 리더는 직원들을 동료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의 목적, 승진, 성공을 위한 도구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직원들을 체스판의 말처럼 생각하며 정작 이들의 성장에는 관심이 없는 리더도 많습니다. 여기서 리더는 조직에서 최종 의사결정권자뿐 아니라 팀장급 이상 관리자 그룹도 포함될 수 있는 얘기입니다. 고윤정의 언급처럼 동료들의 성장을 위해서는 학습과 함께 무엇보다 행동하는 조직문화가 필요합니다. 브라이언 P. 모런, 마이클 레닝턴(Brian P. Moran, Michael Lennington의 저서 <위대한 12주>는 많은 실리콘밸리 기업에 영향을 주었던 혁신적인 시간 관리법을 소개합니다. 저자의 핵심 메시지는 우리가 잠재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게 막는 건 지식, 지혜, 인맥, 노력, 재능, 운 등이 없어서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무언가를 하려면 결국 실행해야만 하는 것이고, 실행이야말로 가장 큰 차별화 요소라고 합니다. 많은 조직이 저렇게 하면 안 된다, 이렇게 해야 한다는 생각과 말은 많지만 정작 행동하지 않는 곳이 많습니다. 생각과 말은 변화를 만들 수 없습니다. 행동만이 변화를 만들 수 있습니다. 춘천 문화도시센터장이었던 강승진에게 물었습니다. 조직의 변화를 위해 행동하는 동력을 어떤 방식으로 확보할 수 있었나요?
“그게 왜 안 된다고 생각해?
할까 말까 고민하는 거면 일단 해봐.
이 얘기를 많이 했어요.
실행해야 경험이 쌓이고,
다시 다음의 동력을 얻을 수 있어요.
다음의 동력은 나의 보탬으로 누군가가 잘 되는 걸 보는 것,
내가 한 이야기와 실행이 가치 있게 쓰이는 경험치가 쌓이는 게,
조직 일원으로 성장이 지속할 수 있는 핵심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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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에서 ‘춘천은 강승진 보유 도시다’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춘천은 24개 법정 문화도시를 리딩하는 조직 중 하나이고, 최우수 문화도시에 연속해서 지정된 곳이기도 합니다. 이쯤에서 춘천문화도시 조직의 리더인 강승진 센터장(이하 강승진)을 소개하겠습니다. 그는 저의 인터뷰 프로젝트에서 자신의 직업 정체성을 ‘드림 메이커’로 설정하고, “문화예술영역에서 성장하고 싶은 사람을 돕는 사람”으로 자신을 규정합니다. 사람들의 생각과 고민을 현실 속에서 풀어내는 데 도움을 주고, 그 실행 과정에서 얻는 경험으로 다시 성장의 에너지를 만들고, 지속하는 데 보탬이 되는 사람을 지향한다고 말합니다. 문화재단 조직의 미션도 큰 틀에서는 마찬가지입니다. 아래 QR코드로 저와 했던 인터뷰를 통해 강승진의 퍼스널 브랜드와 세계관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런 그의 생각은 다음 글에서 다루는 춘천 문화도시 사업 미션 체계에도 잘 나타납니다.
강승진이 춘천에서의 경험을 가지고 조직문화에 관한 공개 강연을 할 때, 첫 포문을 여는 질문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목표를 향해 어떻게 일하실 건데요?”, 다소 도발적으로 들릴 수 있는 질문이지만 행동해야만 결과를 낼 수 있었던 본인의 질문이었을 겁니다. 그는 예비도시에서 본 도시로 지정되어 출범한 춘천 문화도시라는 배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이 배에 함께 타고 있는 구성원들은 ‘어떻게 일해야 할까?’라는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에 대해 다정한 생존과 모두의 성장이라는 축적된 사유를 얘기합니다.
“이곳은 어떤 곳인가? 일하는 곳이에요.
그런데 나는 이곳에서 왜 버티고 있을까요? 돈도 권력도 크지 않아요.
우리가 이곳에서 가질 수 있는 건, 판과 무대에요.
이 판과 무대는 누군가의 놀 자리, 설 자리,
그들의 기쁨과 행복이 설 수 있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왜 이 일을 하는지에 대한 개념과 전략이 필요해요.
어떻게, 잘할 것인지? 일머리와 방식도 중요해요.
다정하게 생존하려면 신뢰와 믿음이 필요하고,
모두의 성장을 위해서는 결국 존중과 배려,
차이가 공존할 수 있는 포용과 소통이 중요해요.
결국, 사람과 일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지요”
조직은 일하는 곳이고, 문화예술 조직은 대체로 혼자가 아닌 함께 일하는 곳입니다. 생존(生存)은 살아있고, 살아남는다는 뜻이죠. 강승진은 함께 일하는 조직에서 서로 물어뜯고,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각자도생의 살아남는 방식을 경계합니다. 조직에서 ‘모두가 성장’하며 다정하게 살아남기 위해서는 우리가 왜 여기 모였고, 왜 이 일을 하는지에 대한 미션과 비전에 대한 깊은 통찰과 교감이 있어야 하며 결국, 사람과 일을 대하는 좋은 태도가 조직문화에 살아있어야 한다는 얘기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제가 조직문화 건강검진을 할 때, 물어보는 문항이 있습니다. “최근 1년 조직에서 나의 성장에 도움을 주었던 사람을 모두 표시해주세요.” 이 질문에 대해 당신은 몇 퍼센트의 동료로부터 ‘나의 성장에 도움을 주었다’는 대답을 들을 것 같은가요? 데이터를 보면 50% 이상의 사람에게 선택되기 쉽지 않습니다. 톱 리더의 경우 30% 이상 직원들에게 긍정 응답을 받기가 어렵습니다. 강승진과 고윤정의 경우 조사 때마다 70%가 넘는 직원들이 “이 사람이 나의 일과 성장에 도움을 주었다.”고 대답했습니다. 이 두 조직의 공통점은 구성원의 성장과 일하는 방식에 질문이 있는 리더가 있었습니다. 공공 문화예술조직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일을 맡기고 운영하는 전술을 가진 사람은 부족합니다. 어떤 유형의 리더십이 모든 조직에 맞는 만능열쇠가 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동시대에 어느 정도 지지를 받는 리더십 특성은 참고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https://brunch.co.kr/@ryujang21/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