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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구체화해 존재를 연결하는 시각 예술가 이정연

[문화다원 No53] 예술人기획人행정人 부족 간 인터뷰 프로젝트

by 장석류

오십 두 번째 좌표는 '도시의 감정'을 시각적으로 포착하고 싶어 하는 작가님을 만났습니다. 감정을 시각적으로 구체화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제입니다. 이를 해내기 위해서는 자신의 작업 언어, 다시 말해 시각적으로 도시의 감정을 포착하는 방법론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소개하고 싶은 작가는 그 언어를 가지고 있었고, 해당 언어는 동시대 다양한 매체로 확장성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성과 이성, 미시와 거시적 접근이 균형을 가지고 섞여 있는 분이었습니다. 지역 아카이빙을 위한 예술 프로젝트에 관심이 많으신 분, 우리 도시의 감정을 시각적으로 협업해보고 싶으신 문화도시 기획자 분들, 도시와 사회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에게 특히 일독을 권해보고 싶은 인터뷰입니다.


감정을 구체화해 존재를 연결하는

시각 예술가 이정연


1. 이름은? 사회에서 연차는 어떻게 되시나요?

이정연_p.10판화전시 설치후2025.jpg 판화전시 설치 후 2025

저는 시각예술가 이정연입니다. 대학에서 조형예술을 전공한 이후, 미술 교육과 창작 활동을 병행해 왔으며, 2020년 홍익대학교 회화과 대학원을 졸업한 뒤 본격적으로 작가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이후 다양한 전시와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작업의 언어를 정립해 나가고 있습니다. 제 작업은 도시의 구조와 감정, 기억의 층위를 탐구하며, 건축적 형태와 오각형 유닛을 기반으로 도시 공간을 유기적이고 감각적인 관계망으로 시각화하는데 중점을 둡니다. 회화를 중심으로 설치, 미디어, 감정 데이터를 활용한 융복합 작업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관객과 감정적으로 교감하는 예술적 경험을 만들어 가고자 합니다.


2. 어떤 일을 해 오셨나요. 일터(작업의 공간)에서 당신의 역할을 소개해주세요 & 역할 속에서 자신의 직업정체성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이정연,memory of iconB-back side,2024,EVA_ Acrylic paint_ Acrylic board_ Woodblock -_LEGO,45x45x45cm.jpg 이정연, memory of iconB-back side,2024, EVA_ Acrylic paint_ Acrylic board_ Woodblock -_LEGO,45x45x45cm

저는 주로 도시를 매개로 감정과 기억, 정체성을 시각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회화 작업을 중심으로 시작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설치, 미디어아트, 판화, 감정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융복합 작업까지 확장해 왔습니다. 제 작업 공간은 물리적으로는 작업실이지만, 실제로는 도시 곳곳의 풍경과 사람들의 감정이 제 작업의 재료가 되는 ‘열린 스튜디오’라고 생각합니다. 이 공간에서 저는 관찰자이자 기록자이며, 동시에 감정과 구조를 연결하는 조형적 번역자 역할을 합니다. 예술가로서 저의 직업 정체성은 단지 '창작자'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와 감정, 기술을 매개로 새로운 감각적 경험을 제안하는 '시각언어 개발자'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작업을 통해 저는 도시를 살아가는 개인의 기억, 감정, 움직임을 오각형 유닛이라는 조형 언어로 번역하고, 이를 시각적으로 구조화함으로써 공감 가능한 풍경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예술이 삶의 감정적 지층을 드러내고 치유하는 매개가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정연,iconU522-Newcastle,2022,Acrylic_gel stone_binder_acrylic supplements on canvas, 72.7x90.9cm.jpg 이정연, iconU522-Newcastle,2022, Acrylic_gel stone_binder_acrylic supplements on canvas, 72.7x90.9cm


3. 한번 떠올려 주시겠어요. 당신이 하는(해 왔던) 일을 선택했던 내적인 욕구, 초심, 계기, 우연 등은 무엇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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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을 가르치던 시절, 한 제자가 “비행기를 타본 적이 없어요”라고 말한 순간, 제 안에 잊고 있던 무언가가 다시 깨어났습니다. 그 말은 막연한 안타까움이 아니라, 공간을 이동하지 못하는 삶의 감정을 마주하게 했고, 저는 문득 “지금 이 건물이 스스로 날아서 이동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운전을 하다 우연히 마주친 언덕 위의 집들도 그 상상에 힘을 더했습니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은 마치 땅 위에 뿌리내린 생명체처럼 보였으며, 그 덩어리는 어느 순간 바벨탑처럼 위로 솟구쳐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처럼 느껴졌습니다. 무언가 간절하게 오르고, 함께 붙어서 존재하려는 듯한 그 모습. 저는 그 순간, 도시란 결국 인간의 감정이 응축된 구조물이자, 정체성과 의지가 쌓인 탑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도시의 구조, 감정, 기억을 연결 짓는 조형언어를 찾기 시작했고, 지금도 그 감각을 따라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4. 당신이 하는 일에서, 당신이 생각하는 고객은 누구인가요?

저의 작업은 네 가지 부류의 관객들과 깊이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도시 속에서 ‘정체성’을 고민하는 사람들입니다. 익명성이 일상화된 도시 환경 속에서 ‘나는 누구인가’를 되묻는 도시인들, 그리고 이사나 재개발, 이주 등으로 인해 ‘집’이라는 개념이 낯설고 유동적인 것이 되어버린 사람들. 저의 오각형 유닛과 감정의 흐름을 시각화한 작업은 이들에게 공간과 감정 사이의 잊힌 연결고리를 다시 떠올리게 합니다.
둘째, 어릴 적의 감각과 상상력을 잃지 않고 싶은 이들입니다. 제 작업 속 건축적 형태는 장난감처럼 해체되고 재구성되며, 색채감 있는 조형 언어를 통해 관람자로 하여금 ‘놀이하는 인간(Homo Ludens)’으로서 감정에 솔직해질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합니다. 이들은 저의 작업을 통해 상상과 놀이의 감각을 회복하게 됩니다.
셋째는 예술, 건축, 도시학을 넘나드는 융합적 시선을 가진 관객들입니다. 도시 구조와 감정, 인간 존재의 궤도에 대해 학제적으로 사유하는 연구자, 예술가, 혹은 기획자들에게 저의 작업은 건축적 조형과 감정의 인터랙션을 결합하는 새로운 언어로 다가갈 수 있습니다. 기존의 분과적 사고를 확장시키는 영감의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정서적인 공감이 필요한 이들입니다. 감정을 표현하지 못한 채 꾹 눌러 담으며 살아가는 사람들, 도시의 소음 속에서 조용한 위로를 갈구하는 이들에게 저의 작업은 말없는 위로가 되어줄 수 있습니다.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는 시각적 여정을 통해, 관람자는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고 감정을 다시 마주할 수 있게 됩니다.


4-1. 당신이 생각하시는 고객에게, 당신은 어떤 역할기대와 요구를 받는다고 생각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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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제 작업을 마주하는 관객들로부터 다양한 기대와 요구를 받고 있다고 느낍니다. 도시 속에서 정체성을 고민하는 사람들은 저에게 공간과 감정 사이의 연결을 되살려 주기를 기대합니다. 끊임없는 이동과 변화 속에서 흔들리는 ‘집’의 의미를 시각적으로 마주하며, 자신이 어디에 속하고 있는지를 질문하게 됩니다. 저는 이들에게 도시라는 익명성 속에서도 개인의 기억과 감정을 포착할 수 있는 감각적 언어를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린 시절의 감각과 상상력을 간직하고 싶은 이들은, 저의 작업을 통해 놀이의 본능을 회복하고 감정에 솔직해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이들은 예술작품이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상상과 감정을 회복할 수 있는 통로가 되어 주기를 바랍니다. 저는 이들에게 자유롭고 유희적인 조형 언어로 감각을 자극하고, 스스로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놀이의 장’을 마련해주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예술, 건축, 도시학을 넘나드는 융합적 시선을 지닌 관객들은 작업을 단순한 시각적 결과물로 보기보다 학제적인 언어와 사유의 장으로 받아들입니다. 이들은 저의 작품이 도시와 인간 존재, 감정 구조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기를 기대하며, 조형 언어 속에 담긴 철학적 구조와 미학적 실험에 주목합니다. 저는 이들에게 사유의 실마리가 되는 시각적 언어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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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정서적 공감이 필요한 이들은 저에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도 ‘공감받고 있다’는 위로를 기대합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의 흐름을 조용히 따라가며, 작업을 통해 자기감정의 결을 되돌아보게 되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저는 이들에게 직접적인 언어나 서사 없이도 감정의 결을 어루만질 수 있는 시각적 공감의 장을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저에게 주어진 역할은 도시와 감정, 기억과 존재라는 복잡한 층위를 시각적으로 조직해 내는 동시에, 그 안에서 관객들이 자신의 삶과 감정을 투영하고, 감각적으로 사유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5. 당신이 하는(해왔던) 일의 시퀀스( '기-승-전-결')는 보통 어떤 흐름으로 이루어지나요?

제 작업은 늘 아주 감각적인 순간에서 출발합니다. 예를 들면, 언덕 위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을 보면서 ‘저 집들이 스스로 이동하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또는 제자들의 한마디에서 어떤 감정이 번쩍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렇게 일상 속에서 우연히 마주한 감정이나 풍경, 대화가 작업의 시작점이 됩니다. 그 감정이 머물렀던 공간, 혹은 흐르는 경로에 주목하면서 도시의 구조나 건축물, 지도, 단면들을 분석하게 됐고, 그걸 감정의 구조로 바꿔보려는 시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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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과정에서 오각형 유닛이라는 조형 단위를 개발하게 되었으며, 감정이 유닛으로 축적되거나 확장되는 개념을 담고 있습니다. 이후에는 그 구조를 어떻게 조형 언어로 만들 수 있을지 실험하게 되었습니다. 종이나 블록, EVA, LEGO 같은 다양한 재료를 조합하면서 덩어리로 만들기도 하고, 반복해서 집적시키거나 유기체처럼 변화시키는 방식으로 접근합니다. 조형성, 밀도, 그리고 이동성이라는 키워드를 두고 계속 형태를 다듬어갔습니다.


매체 선택은 감정의 밀도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달라집니다. 감정이 좀 더 원초적이거나 충동적인 느낌일 땐 크레용 부조처럼 직접 손으로 밀도 있게 쌓는 방식이 어울렸고, 감정의 흐름이나 움직임이 중요할 땐 모션그래픽 같은 시간기반 매체를 사용했습니다. 인터랙티브 한 설치 작업도 시도하고 있는데, 이건 관객의 감정 반응까지도 하나의 요소로 보고 싶은 마음에서 합니다. 또 하나 제가 요즘 실험하고 있는 부분은 감정을 색상이나 데이터로 변환하는 작업이 있습니다. 감정의 색상표를 만들거나, 감정의 이동 경로를 지도처럼 시각화해 보는 것입니다. 감정이 어느 시점에 어디서 어떻게 움직였는지를 정보화하고, 그것을 시각적 구조로 바꾸는 것입니다. 최종 작업에서는 감정과 공간이 마치 유기체처럼 연결된 구조를 만들려고 합니다. 놀이적 감각을 담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래야 관객이 이성보다는 직관으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감정 구조가 실제로 작동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관객의 반응을 상상하거나 직접 관찰하면서, 작업을 다시 조정하고 재구성하는 과정도 중요하게 보고 있습니다.


6. 일의 과정에서 '당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혹은 '요구받는 가치'는 무엇이 있나요?

이정연,iconCaptain-Seoul서울의 미라클,2023,Acrylic_gel stone_binder_acrylic supplements on canvas,73x61cm.jpg 이정연, iconCaptain-Seoul서울의 미라클, 2023, Acrylic_gel stone_binder_acrylic supplements on canvas,73x61cm

제가 작업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존재의 연결성’과 ‘감정의 가시화’입니다. 도시를 구성하는 수많은 요소들—건물, 길, 사람, 감정—은 단순히 개별적인 요소가 아니라, 서로 끊임없이 상호작용하고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러한 관계의 구조를 시각화하기 위해 반복적이고 상징적인 조형 언어인 ‘오각형 유닛’을 사용합니다. 또한, 보이지 않는 감정의 흐름이나 기억의 층위를 색과 구조, 그리고 움직임을 통해 드러내며, 도시를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닌 감정과 존재가 공존하는 유기체로 표현하고자 합니다. 작업 과정에서 제가 중요하게 여기는 또 다른 가치는 ‘놀이성’과 ‘상상력’입니다. 익숙한 도시를 낯설게 바라보고, 고정된 구조 안에서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는 것이죠. 이 과정은 저에게 도시와 삶을 더 깊이 이해하고 마주하는 창조적 행위이기도 합니다.


7. (최근 3년 동안) 당신이 특히 해결해보고 싶었던 문제(과제)는 무엇이었나요, (문제) 과제를 만났을 때, 진입장벽 혹은 페인포인트(그동안 해소하지 못한 불편함, 어려움 등)는 무엇이었고, 어떻게 풀어보려고 접근하셨나요?

최근 제가 해결해보고자 했던 과제는, 감정이라는 비가시적인 데이터를 시각예술의 언어로 어떻게 구체화할 수 있을까? 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도시를 살아가는 개인의 정서와 기억, 연결의 흐름은 분명 존재하지만, 그것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데에는 많은 제약이 따릅니다. 특히 제가 사용하는 오각형 유닛과 도시 구조 언어 안에 ‘감정’이라는 주제를 어떻게 유기적으로 녹여낼 수 있을지에 대한 탐구가 필요했습니다.

이정연, Emotion code #0_Squid Seoul, 2025, Acrylic_gel stone_binder_acrylic supplements on canvas, 80x80cm, .jpg 이정연, Emotion code #0_Squid Seoul, 2025, Acrylic_gel stone_binder_acrylic supplements on canvas

이 과제를 마주했을 때, 가장 큰 진입장벽은 감정의 가변성과 추상성이었습니다. 감정은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고, 시간과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이를 고정된 시각 언어로 담아내는 데 어려움이 컸습니다. 또한, 감정을 시각화할 수 있는 체계적 방법이 부족하다는 점도 작업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 장애가 되었습니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저는 감정 데이터를 시각 구조화하는 ‘감정의 코드화’ 작업을 시도했습니다. 다양한 감정 상태를 색상, 구조, 움직임의 요소로 변환해 보며, 감정의 흐름을 궤도처럼 구성하는 실험적 영상 작업이나, 인터랙티브 설치작업을 기획했습니다. 특히, 감정 데이터를 정제하고 가공하는 과정에서 심리학 이론, 놀이 개념, 디지털 기술을 참고하여 조형 언어와 연결 짓는 방식을 탐색하였습니다. 이러한 시도는 감정이라는 비물질적 개념을 구체적이고 구조적인 시각 언어로 옮기는 첫걸음이 되었고, 저의 작업 세계를 확장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또한 향후 감정-기억-장소를 연결하는 도시 감정 지도나 감정 아카이빙 시스템 등으로 확장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8. (최근 3년 동안) 당신이 기억나는 '보람의 순간'이 있었다면?

네, 제가 기억하는 가장 보람된 순간 중 하나는 2024년 ‘노원문화재단의 시각예술지원사업’에 참여했던 때입니다. 저는 ‘도시는 감정과 기억이 층층이 쌓인 유기적 존재’라는 관점에서, 오각형 유닛을 활용한 설치 및 회화 작업을 선보였는데요, 전시장을 방문한 한 관람객이 제 작품 앞에서 오랜 시간 머무르며 “이 도시가 어쩌면 나의 마음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해주셨습니다. 그 순간은 단순히 작업을 ‘보여준다’는 차원을 넘어서, 제 작업이 누군가의 감정이나 삶의 경험과 연결되었다는 깊은 감정적 교감의 증거처럼 느껴졌습니다. 작가로서도 교육자로서도, 제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연결’입니다. 예술이 누군가에게 감정적 통로가 되어줄 수 있다는 사실을 체감했을 때, 저는 제가 하는 일의 의미를 다시 확인하게 되었고, 그것이 지금껏 작업을 지속할 수 있는 내면의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9. 당신이 가진 내적인 힘들 가운데, 어떤 힘이 강하신 것 같나요(장점, 나다운 것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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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가진 내적인 힘 중 가장 강한 것은 지속하는 힘과 감정에 대한 민감성입니다. 저는 빠르게 결과를 내기보다, 시간을 들여 사유하고 쌓아가는 과정을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오랜 작업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스스로를 성찰하고, 감정과 공간, 사람 사이의 미세한 결을 포착해 왔습니다. 이러한 감수성은 제 작업의 중요한 원천이자, 저를 저답게 만드는 핵심적인 자질입니다. 작업은 대부분 일상 속 작고 섬세한 감정에서 출발합니다.


예를 들어, 언덕 위 집들을 바라보다 떠올린 상상이나, 학생의 한마디에서 비롯된 감정의 잔상이 상상과 서사로 확장되고, 결국 하나의 작업으로 구체화될 때까지 저는 끝까지 밀어붙입니다. 이처럼 감정의 움직임을 시각화하기 위해 저는 회화, 크레용, 영상, 판화, 디지털 오브제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실험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한 번 마음먹은 일은 쉽게 포기하지 않고, 복잡한 상황 속에서도 감정의 흐름과 문제의 본질을 천천히 따라가며 해답을 찾고자 하는 저만의 집중력과 꾸준함은 제 작업뿐 아니라 교육자로서의 활동에서도 큰 힘이 됩니다. 감정을 감각으로, 감각을 구조로 전환하는 과정이야말로 제 예술의 근간이며, 저의 가장 강한 내적 에너지입니다.


10. 당신의 생각과 행동에 영감/영향력을 주었던 책, 음악, 공연, 영화, 전시 혹은 저자, 작가 등을 소개해주신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저는 작업을 이어가는 과정에서 다양한 예술 장르와 감각적 경험들로부터 지속적인 자극을 받습니다. 특히 책, 음악, 공연, 전시 등은 제 작업의 정서적 기반과 조형적 실험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자양분입니다. 예를 들어 <견인도시 연대기>는 ‘움직이는 도시’라는 개념을 통해 저의 오각형 유닛 도시 조형 작업에 직접적인 시각적 영감을 주었습니다. 고정된 구조가 아닌, 살아 움직이며 충돌하고 변화하는 도시의 이미지가 저의 작업 속에서 ‘생명을 가진 구조체’로 구현된 것이죠.

https://namu.wiki/w/%EA% B2% AC% EC% 9D% B8%20% EB% 8F%84% EC% 8B% 9C%20% EC%97% B0% EB% 8C%80% EA% B8% B0

또한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에서는 잊힌 기억, 시간의 흔적, 공간에 각인된 감정에 대한 서사가 도시 정체성에 주목하는 제 작업의 주제와 깊이 맞닿아 있습니다. 무협소설이나 『랑야방』 같은 서사물에서는 인물 간의 치열한 감정선, 내면의 고요한 결심, 대의에 대한 집념을 읽으며 감정의 흐름과 궤도를 조형적으로 표현할 때 중요한 정서적 기반을 얻습니다. 이처럼 감정을 구조화하는 데 서사의 힘은 큰 역할을 합니다.


음악 역시 저에게 매우 중요한 예술적 자극입니다. 락이나 락발라드, 힙합 음악처럼 감정의 고조와 즉흥적인 리듬 구조는 오각형 유닛이 생성되고 이동하며 감정을 따라 증폭되는 제 작업 형식과 매우 유사합니다. 음악의 감정선을 시각적 리듬으로 변환하고자 할 때 특히 큰 영감을 받습니다. 공연과 영화, 특히 발레나 연주회에서 느껴지는 서사적 흐름—긴장, 집중, 해방의 과정—은 제 영상 작업이나 모션그래픽에서 감정 궤도를 설계하는 데 깊은 영향을 줍니다. 저는 리듬과 신체, 서사의 조화를 시각 언어로 해석하려는 실험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전시는 장르를 불문하고 폭넓게 관람하며, 감정이 어떻게 공간에 전시되고 시각적으로 구성되는지를 유심히 살핍니다. 회화뿐 아니라 설치, 뉴미디어, 아카이브형 전시에서 공간 설계, 색의 운용, 감정 전달 구조를 관찰하는 것이 제 작업에도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참고하고 존경하는 작가로는 바실리 칸딘스키, 피에트 몬드리안, 파울 클레, 프리덴슈라이히 훈데르트바서, 도날드 저드, 프랭크 스텔라, 데이비드 호크니, 앤디 워홀, 줄리아 머레이, 올라푸루 엘리아손, 백남준, 김환기, 서도호, 신종식 선생님 등이 있습니다. 이들의 조형 언어와 예술적 태도는 작업을 구체화하는 데 있어 깊은 참고가 되고 있습니다.


11. 앞으로 어떤 일(작업, 역할)을 하고 싶나요? 그것을 위해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준비하고 있(싶) 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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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앞으로 감정, 기억, 장소성을 기반으로 도시의 정체성을 탐색하는 복합 매체 작업을 더 확장하고 싶습니다. 특히 기술과의 접점을 더욱 넓혀 감정 데이터를 시각화하는 인터랙티브 조형물이나, 공공 공간과 연결된 감정 지도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기억이 스며든 도시의 구석들이 어떻게 감정의 지층을 이루는지, 어떻게 시각적·촉각적으로 구현될 수 있는지를 다양한 매체로 실험해 나갈 예정입니다. 이를 위해 앞으로 기술, 교육, 도시 연구 분야의 다양한 사람들과 협업하고자 합니다.


예를 들면, 감정 데이터를 시각화하는 프로그래머, 도시의 사회학적 구조를 분석하는 연구자, 그리고 청소년들과 함께 감정 워크숍을 운영할 수 있는 예술교육자들과 만나고 싶습니다. 저는 현재 도시의 이동성과 감정의 연결을 다룬 영상, 그리고 지역 아카이빙을 통한 예술 프로젝트를 동시에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저는 한 가지 매체나 형식에 머물지 않고, 앞으로도 감정과 장소를 연결하는 예술적 언어를 계속해서 확장해 나갈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저는 예술을 통해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을 보다 민감하게 감지하고, 도시와 관계 맺는 방식을 스스로 다시 사유할 수 있도록 돕는 감정 큐레이션의 예술가가 되고 싶습니다. 이 목표를 위해 계속해서 사람을 만나고, 공간을 탐험하고, 감정의 언어를 실험해가고 있습니다.


12. 당신을 좀 더 알 수 있는 소셜미디어/사이트/뉴스를 알려주세요.

이정연 작가 이메일 <misul0409@naver.com>
인스타 그램 http://www.instagram.com/yunilee_1

https://cicamuseum.com/yuni-lee-solo-exhibition/

http://m.blog.naver.com/artnc21/223433884551

장석류의 예술경영 인물열전,

"Fusion of horizon".


감정을 구체화해 존재를 연결하는

시각 예술가 이정연 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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