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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gan Dec 27. 2022

사실 문제는 생각보다 어려운 것이 아니다.

롭 무어의 머니 

문제의 약점을 공략하라. 내가 먼저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것. 그곳이 약점이다.



모든 생물에게는 약점이 있다. 진화론을 보면 각각의 생물들은 환경에 적응하고 생존에 우위를 점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약점을 가리고 숨기며 진화해 왔다. 그렇지만 어떤 생물이든 간에 치명적인 약점은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숨겨지지 않는다. 다른 야생의 생물들보다 특히나 더 취약한 인간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뇌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쪽으로 진화했고 그래서 결국은 모든 종의 제일 위에서 이제 지구의 약점을 공격하고 있...? (잠깐 잠깐-)



뭐 어쨌든.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결국 약점이 반대로 생각해 보면 거대한 어떤 것이든 무너트릴 수 있는 핵심 포인트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만약 문제가 쓰러트려야 할 하나의 생물이라면 인간을 상대로 문제는 스스로의 약점을 가리고 인간이 감히 자신에게 도전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쓸까? 



아마도 걱정이 아닐까? 



걱정은 두려움을 끌어들인다. 그리고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인간의 몸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뇌는 상상력에 굉장히 취약하다. 생각이라는 녀석이 하나 둘 이성을 잡아먹기 시작하면 막을 수 없을 정도로 순식간에 사고는 어느새 걱정으로 집어삼켜져버린다.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한다. 



이제 반대로, 반대로 생각해 보는 거다.

당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는 쓰러트려야 한다. 그렇다면 먼저는 걱정을 걷어내야 한다. 어렵겠지만 해내야 한다. 이후 그제서야 보이는 문제의 본 모습 중에 가장 취약한 부분, 어쩌면 당신이 제일 먼저 시도해 볼 수 있는 해결점. 그 포인트를 "시도"해보는 것이다. 그럼 위의 글처럼 자연스럽게 그다음 스텝이 이어지고 문제는 순식간에 모래성 마냥 무너지고 말 것이다. 






열정 점검...! 

당신에게도 반드시 필요하다.



10년 뒤에도 당신의 지금 일을 하고 싶은가? 


시련이 닥쳐도 이 일을 좋아할까?



답을 해보는 거다. 진실로 당신 마음에.


종종 이런 사람들이 있다. 자기 자신에게 진짜 진심으로 물어보는 건데도 이상하게 자기가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눈으로 자신을 보며 마치 그것이 자기의 결심인 양 착각하는 부류 말이다. 뭐,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니까 무시할 수는 없지 않아?라고 반론한다면 이해는 하겠다만 적어도 그것이 자신의 의견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되지 않을까? 



왜? 왜 여전히 당신은 당신의 모습을 당신 스스로에게 물으면서도 동시에 세상이 바라보는 나를 위해 세상의 입맛대로 결론을 내리는가? 시련이 닥쳐도 당신은 정말 그 일을 좋아할 자신이 있는가? 10년 동안 내내 말이다. 미친- 이게 말이나 되냐고.



나와 같은 반응이 정상이다. 

각오는 할 수 있다. 다만 확신은 할 수 없다. 나는 내 인생 32년 동안 나를 가장 잘 알고 있다. 나라는 놈은 아무리 지금 이 일이 좋고 재밌어도 10년 동안 일을 하고 싶지도, 시련이 닥쳤을 때 이 일을 놓지 않을 자신도 없다는 것을 안다. 그렇기에 지금부터라도 이 좋아하는 일이 평생 좋아하는 일이 될 수 있도록, 10년 버텨야 하는 이 과정이 그 이후의 10년을 버티게 만들어 줄 수 있도록 다양한 방면에서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가볍게 여기지 말라는 부탁이다. 위의 질문을 말이다. 진짜 진솔하게 당신에게 물어봤으면 좋겠다. 당신이라는 사람의 열정에게. 






당신의 가치는 무엇으로 정의되는가?


딜레마가 있다. 



세상이 원하는 가치 VS 내가 지키고 있는 가치 



무엇이 돈이 될까? 보통은 전자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섣불리 전자로 가지 못한다. 많은 인생의 선배들이 나에게 전자가 옳다고 이야기해줘도 나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나를 응원해주는 분들에겐 늘 감사한 마음이지만 나라는 놈은 참 멍청하고 이기적이면서도 동시에 미련하고 안타까운 놈이다. 



많은 고민을 하고 눈을 감은 채 꽤 오랜 시간 묵상을 하기도 했다. 어느 순간 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을 바꾸는 것은 이제까지 가장 사랑했던, 좋아했던 자기의 애착 품을 짓밟는 것과 같다. 어떤 분명한 계기가 없다면 아마, 나는 쉽사리 전자로 가지 못할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내 나름대로 세상의 가치와 적절히 타협하며 여전히 내 가치를 지키고 있다. 나름의 오기로 이걸 세상에 증명해 보고 싶은 욕심도 있다. 멍청하다고 해도, 등신 같다고 해도 나는 오히려 그래서 성공한 사람도 있었다고 하고 싶다. 어쩌면, 혼자였다면 진작에 전자로 갔을 수도 있겠다. 내가 내 이름을 버리고 새로운 탈을 써서라도 전자로 달려갔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지금 혼자가 아니고 나와 함께 걸어가는 사람들이 나의 그런 모습을 원하고 함께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는 것을 알기에 중도를 지키며, 동시에 이들의 삶과 나의 삶의 가치를 세상에 분명히 전하며 오늘도, 내일도 뛰어간다. 더 멀리, 더 높이 발판을 만들어간다. 내 가치의 이름을 더 위로 올리기 위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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