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는 어그로를 끌어야 한다
(아닌 사람도 많겠지만) 글쓰기를 업으로 삼게 되면 주로 혼자 지내게 된다. 글쓰기가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창작의 과정은 주로 골방에서 빤스 바람으로 전자담배 뻑뻑 피우며 진행되기 때문이다. 직장이 곧 집이요 집이 곧 직장이 되기 때문에(심지어 현재 내게 생존비용을 매달 입금해 주는 직장마저 주 1회 출근하기 때문에) 사람과의 관계맺음을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나의 노력이 필요하게 된다.
연희동으로 이사한 지 햇수로 1년이 되었다. 공인중개사님의 자차로 이동하며 집을 구경했기 때문에 역과 얼마나 먼지도 모른 채 이 집을 계약했다. 방이 세 개나 되는데 이렇게 저렴한 이유가 다 있었다.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는 일단 버스와 지하철을 한 번 타야 한다는 사실에 반 강제적으로 칩거를 시작했다. 코로나를 이미 시마이한 시점이었으므로, 자연스레 아싸히키찐따가 되었다.
이사하기 직전 받았던 전 애인의 마지막 카톡이 기억에 남는다.
그는 내게 '느금마'라고 보냈고 더는 연락이 되지 않는다.
우리 사귀기로 합시다,라는 말도 하지 않았고 우리 헤어집시다,라고도 하지 않았지만
따로 또 같이 일정을 얼추 맞춰 해외여행도 다녀왔으므로 대충 지난 애인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로 인해 외로움은 차차 내 BFF의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는데(후략)
각설, 그렇게 살아온 지 반년이 지난 어느 날 대학 시절 후배 광이 내게 연락을 했다.
소개팅해 볼 생각 없느냐고. 교복 바지 나풀거리던 안경잽이 소년 시절 이후 처음 해 보는 소개팅이었다. 대번에 수락한 다음 며칠 지나지 않아 처음 만나게 되었다. 외로웠기 때문이다. 사랑이 고팠다기보다는 약속을 잡고 어딘가 나가서 돈을 쓰고 돌아오는 행위 자체가 좀 그리웠다.
그리고 이 소개팅이 공포의 소개팅으로 명명되기까지의 사소한 대화와 장난, 웃음과 뾰루퉁함에 대해서는 기록하지 않기로 한다. 대단한 남페미라 그러는 건 아니다. 그냥 부끄럽기도 하고 특정한 실체가 있는 개인을 조리돌림했다가 모욕죄의 철퇴를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야 묘령의 여인과의 삼프터를 앞둔 날, 묘령의 여인은 내게 자신의 종교관을 밝혔다.
나는 어떤 메이저 또는 마이너 종교든 간에 대체로 존중하는, 이른바 깨어 있는 무신론자라 자부했다. 하지만 수-일이 아닌 화-토 예배를 진행하며 교주를 재림예수로 믿는 교회는 내 수비 범위 바깥이었다. 곧바로 사수와 함께 회사 옥상으로 가 담배를 피우며 이 사실을 알렸다. 없는 곳에서는 나라님도 욕할 수 있는 것처럼 거기선 "어떻게 나한테 이런 일이" 라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아무리 그래도 한국인 재림예수는 너무하지 않느냐며.
그리하야 공포의 소개팅(공포분말 후첨)이 완성되었다. 주선자 광은 "자신도 몰랐"다며 오리발을 내밀었지만 그 후로 3주, 토요일마다 광에게 연락해 뭐 하느냐 물어보는 중이다.
공포의 소개팅으로 인해 떠오른 몇 가지가 있다. 결론을 대신해 그걸 기록해 보려고 한다.
사람은 모두 섬이라던 중학생 때 배운 시,
세상에 섹스는 없다면서 지는 환자랑 잠자리를 가졌던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그의 말과 비슷했던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웹툰과
근대 서구 철학은 주체를 찾아 헤맨 결과 타자라는 공포를 낳았다는 대학 시절 선배의 말(결론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약간 와전함)까지.
앞으론 소개팅할 때 종교부터 물어봐야겠다는 다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