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기침은 가짜 감기다
여러분은 감기 자주 걸리시나요?
저는 감기인듯 아닌 듯한 상태를 오래 가져갑니다. 열도 안 나고 컨디션도 나쁘지 않은데 괜히 목만 간지럽고 코를 킁킁거리게 되는 시기가 있습니다. 지금이 딱 그런 상태인데요. 제게 있어 이 상태는 감기가 아니라 탈감기의 전조, 혹은 감기의 전조라고 부르는 상태입니다.
그냥 컨디션이 애매하게 나쁜 상태라는 뜻이죠.
이 전조 단계에서 몸조리를 잘 하면 멀쩡해 지고요, 몸을 막 굴리면 감기로 진화합니다. 어제는 보일러를 빵빵하게 틀고 자서 땀을 한 바가지 정도 흘렸는데요. 덕분에 몸이 좀 나아진 듯합니다. 어젯밤에는 또술과 통화하며 30초마다 기침을 조졌지만, 지금 기침 타이밍은 대략 5분 정도 됩니다. 5분은 300초니까 10배나 완화된 셈이죠. 아마 내일쯤이면 50분에 1기침 정도로 또 10배 완화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딱 감이 오거든요. 왜냐면 저는 감기 판별에 있어서는 스스로 고수라 자부할 수 있는 수준에 달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땅꼬마 시절, 참으로 병약한 아이였습니다. 빠른년생의 특권을 누리지 못할 정도라고 말하면 감이 좀 오실까요. 몸이 허약하고 잔병치레가 잦아 빠른 96년생으로 95년생과 함께 입학하지 않고, 느긋한 96이 되어 96년생들과 함께 입학했습니다. 이 정도라면 나의 병약력을 어느 정도 증명한 셈이니, 저의 감기 판별법에 대해 살며시 말해보고자 합니다.
기침과 목 간질간질의 상태는 감기의 전조가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 결정적인 차이는 바로 제게 음주 욕구가 생기느냐 아니냐에 따라 갈리죠. 만약 기침이 나고 목이 간질간질한데 "아 소주에 고춧가루 뿌려서 한잔 조질까?" 하는 생각이 들면 이것은 오히려 감기의 전조입니다. 감기가 시작되면 어차피 마시지 못할 걸 나의 세포 하나하나가 알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마셔두고 싶다는 것입니다. 반면 "컨디션도 별로인데 무슨 술이야..." 라는 생각이 들면 감기의 전조가 아닙니다. 미래의 음주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세포들은 미리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일 더욱 맛있게 마실 수 있는데 굳이 오늘 마시지 않는 것, 그것이 내 의식보다 더 똑똑한 내 세포들의 결단이란 겁니다.
그래서 저는 내일 북콘서트를 잘 즐기기 위해 오늘의 음주를 잠시 미루고(24시간 정도), 일찍 푹 자려고 합니다. 충분히 자고 정수도 많이 마시고 거담제도 한 알 더 먹으면 내일 하루쯤은 괜찮겠지요. 나의 빅 데이터에서부터 비롯된 건데, 묘하게 걱정이 마음 한 켠에 있으면 막상 걱정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더라고요. 대신 확신과 기대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고요. 아무튼 지금은 묘한 불안이 있으므로 오히려 마음을 편하게 먹어야겠습니다. 그래야만 내일 후회하지 않겠죠.
그런데 그거 아시나요?
위에 주절댄 이야기 중 96년도 입학을 제외한 대부분의 빅 데이터 어쩌구는 다 확신 없는 다짐에 가까운 말에 불과합니다. 사실 지금 이게 감기인지 아닌지 아주 걱정이 되거든요. 목이 너무 건조해서 마른 기침을 하는 것 같긴 한데요. 물을 잔뜩 마셔도 해결되지 않으니 참 긴장됩니다. 20일 귀국한 이후로 떨어지지 않는 인생의 동반자 같은 미세감기가 나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바이러스 단위에게는 스토킹 신고를 할 수 없어 운동도 제대로 못하고 골골대는 중인데요. 과연 내일 아침의 나는 어떤 기분일지 궁금합니다.
다음 이 시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