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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섬원 Apr 01. 2024

네거티브는 즐겁다

마침 카페 앞에서 선거유세를 하므로

2년하고도 석달 좀 안 되게 전, 저는 국민의힘 대선 캠프에서 잠-깐 일했습니다. 아니, 원래는 좀 더 오래 일하려고 했는데 당시 거북왕 vs 윤카 구도가 심화되면서 제가 있던 팀에 선거사무원 TO가 없어졌거든요. 그래서 선거사무원이 아니라 자원봉사단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꼴랑 며칠 일했다고 취임식 초청을 해준 황민의 힘이었지만 취임식 당시에는 민주당계 시민단체에서 일하고 있었으므로 아쉽게도 취임식은 못 가게 되었습니다. 취임식에 BTS가 한 곡 한다는 소문과는 달리 좀 지루해 보이는 클래식 음악을 공연하기도 했고요.


아무튼 위 두 문단으로 저는 좌익단체에서도 우익단체에서도 일한 김장훈형 인간이라는 밑밥을 깔았으므로 정치 얘기를 좀 하겠습니다. 캬, 이제야 드디어 매거진 제목 같은 글을 좀 쓰게 되었네요. 과연 브런치는 총선 열흘 전 정떡을 굴리는 걸 봐줄 것인가? 


오늘 지껄일 얘기는 네거티브의 즐거움입니다. 카페에 있다가 담배를 피우러 나왔는데 선거 유세 차량에서 나오는 노래가 참 재밌어서 이 글을 쓰게 됐습니다. 담배 피는 5분 내내 정권 심판 말고 다른 가사가 없더라고요. 이 대목에서 강성 국민의힘 지지자라면 "얼마나 정책에 자신이 없었으면 네거티브만 하겠냐"고 할 것이고, 민주당계 지지자라면 "얼마나 지금 대통령이 못하면 그런 가사가 채택됐겠냐"고 하실 것 같습니다만, 둘 다 틀렸습니다.


왜냐면 네거티브는 즐겁기 때문입니다.


근데 선거잠바는 민주당이 좀 잘 뽑는 것 같습니다. 확실히 예술은 좌파가 잘해.

봐봐요, 두 분 다 즐거워 보이시잖습니까?


아무튼 네거티브의 즐거움으로 돌아와서, 네거티브는 대상에 대해 몰라도 함께 즐길 수 있습니다. 이대표의 녹취록을 듣지 않아도 "찢평ㅋㅋ" 할 수 있고, 한장관의 두피검사를 해보지 않아도 "안농운ㅋㅋ" 할 수 있습니다. 왜냐고요? 


그야... 재미 있으니까...


누군가를 놀린다는 건 그 자체로 '우리'를 확실히 하는 사회적 활동입니다. 공공의 적이 만들어지면 웬만큼 나쁜 사이는 봉합되거든요. 저는 만화를 좋아하니 소년만화를 예시로 들어 봅시다. 평소에는 사이가 좋지 않던 손오공과 베지터는 어떻게 처음 손을 잡았을까요? 다름아닌 프리저라는 공동의 적과 싸우며 친해졌습니다. 내퍼에게 하청을 맡겼는지 아닌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베지터는 심지어 손오공의 친구들을 죽이기까지 했는데 말예요.


그만큼 네거티브는 친구를 만드는 데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우리는 외로우므로 열심히 네거티브를 한다는 거죠. 기억을 되짚어보면 저도 학창 시절 짝꿍과 친해지는 데 세 가지 질문을 주로 했습니다.


너 무슨 게임 해?

너 마이쮸 먹을래?

야 중국어 좆같지않냐? 토마스열차같이 생겨가지고 저새끼 저거


마이쮸는 먹으면 그만이고 게임은 공통점이 아닐 수도 있지만

중국어 쌤을 욕하면 모두가 좋아했습니다. 그만큼 네거티브는 결속력을 만들어 줘요.


그래서 선거가 다가오는 지금, 거대 양당은 네거티브에 열중합니다. 심지어 인터넷에서 생산되는 정치 관련 밈을 흡수하는 양상마저 보입니다. 이제 이재명 대표의 얼굴을 보면 "Just Rip it"과 함께 스우시가 떠오르고요, 윤석열 대통령의 사진을 보면 "저렇게 어깨가 좁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침 개혁신당 후보 피켓을 든 사람들이 카페 앞을 지나갔으므로, 개혁신당 이야기도 좀 해 봅시다. 개혁신당은 "의외로 리버럴한데?" 싶은 사람들이 모인 것 같았는데요, 여기서도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식으로 어필을 하더라고요. "너 민주당, 국힘 둘 다 싫지? 그럼 우리 뽑아야겠지?" 이게 개혁신당의 로고스입니다. 온갖 레토릭을 더해 봤자 리버럴엔 다가가지 못하고 양비론 + 제3지대 어필만이 다입니다. 네, 그래요. 네거티브는 개꿀잼이지만 불만학에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불만학은 옛날의 구조주의가 그랬듯이 결론을 낼 수 없습니다. 그냥 뭔가 꼬운 사람들끼리 모여 불만을 우르르 쏟아내지만, 대안을 내놓긴 힘들어요. 한남 줘패기에 열중한 페미니즘이 그랬고, '외않만나조'에 열중한 주갤이 그랬듯이요. 주갤이랑 페미니즘을 왜 동치에 놓고 비교하냐고요?


그러게요? 근데 왜 불만학으로 묶여서 비교가 될까요?

저는 그걸 정치권에서 네거티브를 위한 논리로 페미니즘을 주웠다가 뱉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제 주변 몇 여성 동지들은 동의하지 않겠지만 페미니즘은 이제 끈 떨어진 연이에요. 정치권에서는 분명합니다. 페미니즘에 관한 논의가 정치권에서 이루어지고 있나요? 페미니즘 몽둥이 들고 우파정당 좀 패고, 거북유방단 좀 패고, 내가 네거티브할 정당의 성추문 좀 패고 나니까 이제 할 것 없거든요. 남아선호사상으로 인한 페미사이드 때문에 이대녀-삼대녀는 한줌단이 되었고요. 그 윗세대에게는 어필할 수 있는 주제가 아니었나 보죠.


하지만 페미니즘은 대단한 편입니다. 이대남의 안티페미니즘은 대선 한 철 써먹고 바로 뱉었거든요. 어쨌든 변증법상으로 페미니즘이라는 명제에 반하는 안티페미니즘 명제(여가부 해체)가 한 번 써먹혔으므로 뭔가 합명제로 전개될 것이 자명하긴 한데요, 저는 그 진테제가 아마도 세대론이 될 것 같습니다.


존나YOUNG한데? 엠창(여성동지분들은 앱창이라고 읽어주십쇼)까고 MZ인데요?


로 전개되리라 생각합니다. 남녀 갈등보다 요즘것들 줘패는 게 더 오랜 전통이기도 하고요, 현재 한국의 중위연령은 43세이므로 제 또래이신 분들은 늙어서 벽에 똥칠할 때까지 "요즘 젊은 것들"이 될 예정입니다. 지지층 결집을 위한 영원한 네거티브 "요즘어린노무새끼들"이 있는데 뭐하러 위태로운 성별 이슈를 건드리겠어요? 그거 요즘 민감해요. 마리망에 나오는 헤테로수 캐릭터마냥 툭 건드리면 바로 싼다고요.


이렇게 생각나는 대로 네거티브를 으라차차 휘둘러 봤는데요, 쓰는 데 딱 23분 걸렸습니다. 네거티브가 얼마나 재밌는지 여러분도 아시겠죠? 그러니 앞으로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이렇게 말씀하시면 되겠습니다.


"야, 영어 which 발음 왜케 좆같이하냐? 휫치 휫치 이지랄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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