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크후드_황계 #드블코_씬핀 #조던6_카마인 ... ㄱ나니?
나는 무엇인가 그리워
교복 벗을 무렵 부러워한 브랜드들의 이름을
하나둘씩 불러 봅니다
멜로플래닛, 비욘드클로젯, 87mm, 누디진, APC, 피소녀,
조던 4 6 11 13과 나이키 에어맥스, 베이프 샤크후드
그리고 주문처럼 외우던 조합들에 대해 떠올려 봅니다.
어디선가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사람은 평생 고등학생-대학생 때 만들어진 취향을 가지고 산다고. 내가 유행의 최전선에 있었던 시기는 바로 저 때입니다. 스키니와 와이드가 공존하던 시절이었고요, 키 175인 내가 바지 길이 34인치짜리 유럽 프리미엄 진 브랜드를 사네 마네 할 때였습니다. 그 땐 바지 기장이 길면 길수록 멋쟁이였거든요. 밑단이 좁아 운동화(농구화를 참 많이도 신었습니다 이 땐) 위로 바지가 쭈글쭈글 접히는 게 멋이었던 시기였어요. 그 시절엔 패션에도 칠무해 삼대장 사황이 있어 아이템 이름만 나열해도 코디가 머리속에 그려졌답니다. 이 글의 부제처럼요.
갑자기 이 이야기를 왜 하느냐고요?
네. 이제 나는 아저씨라는 그 처절한 사실을 받아들이려고 합니다.
트렌드에 민감하냐 아니냐가 아저씨와 청년을 가르는 단 하나의 척도는 아니지만, 그냥 이제는 예쁜 옷을 보더라도 예전처럼 막 심장이 뛰지 않습니다. 계절에 맞춰 새로 옷을 사긴 하지만, wants가 아닌 needs에 가깝다는 기분이 듭니다. 여전히 옷을 좋아하긴 합니다. 최근에는 드레스룸을 정리하면서 안 입는 옷을 버리고, 어떤 옷들은 다른 브랜드의 비슷한 아이템으로 업그레이드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말이죠, 그게 패션을 향한 열정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어요.
드레스룸을 싹 정리하고 싶은 욕심이 드는 이유가 옷이 좋아서가 아닌 멋진 드레스룸 인테리어를 하고 싶어서라고 말한다면 이해가 쉬울까요?
아무튼 그런 생각을 하며, 입 안에서 서른즈음에를 흥얼거리며 내가 사랑했던 그 시절의 패션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지금 패션도 참 다양하긴 해요. 저는 2호선이나 6호선을 타면, 주변을 둘러보다 "얘는 어디서 내리겠다" 같은 생각이 들곤 하는데요. 제법 잘 맞춥니다. 어쩐지 아더에러 슬랙스를 입은 사람은 이태원에서 내리고, 퍼티그 팬츠를 입고 수염을 기른 사람은 상수역에서 내리더라고요. 어려보이는데 수수하게 꾸민 사람은 신촌에서, 대놓고 나 패피입니다 외치는 사람은 성수 또는 특정 시즌의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에서 내립니다. 어려보이고 꾸미는 게 어설픈 사람들은 주로 홍대에 내립니다만, 홍대입구역이 참 다양한 곳으로 향하는 허브 같은 역이라 홍대입구역의 정확도는 떨어집니다.
이러한 하차역 심미안을 갖게 된 이유는, 제가 2010년대 초중반, 패션 분화의 격변기에 참 열심히 놀러 다녔기 때문인데요. 물론 그 당시에는 모두 홍대로 모이는 경향이 있었습니다만, 동네마다의 멋이 따로 있었고 그 street rule을 지켜야 하는 느낌적인 느낌이 흐릿하게나마 있었습니다. 택시라는 개념을 알지 못했던 20대 초반에는 한 역이라도 더 앉아 가기 위해서 그런 눈치를 열심히 기르기도 했고요.
작금의 패션 역시 그 시절 쪼개지던 유행의 분화에서 각자 발전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원래 패션 장르의 발전 과정과는 상관 없이) 아메카지를 입던 사람들로부터 시티보이나 빔즈룩이 가지를 친 것 같고요. 한때 다크웨어, 블랙스트릿을 입던 사람들로부터 요즘의 젠더리스 미니멀룩과 그레일즈, 언더마이카를 위시한 어두침침 스트릿 + 고프코어가 태동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여기서 내 안의 아저씨를 감각했어요. "새로운 것"이 아니라 "내가 알던 것"으로부터 뭔가를 생각하려는 이 마음가짐!
이게 아저씨가 아니면 뭐겠어요.
나는 아저씨가 되었습니다.
이제 비로소 나만의 뭔가를 찾을 시기가 온 거죠. 원래 청년은 유행에 휩쓸리는 존재이지만 아저씨는 두 발로 서서 자기 곤조를 챙기는 존재가 아니겠습니까? 아저씨가 되어서 유행이니 트렌드니 하면 그대로 영포티 나매아재가 되는 거예요. 나매아재 혐오 아니냐고요? 혐오 좀 하면 어떻습니까. 제발 줄 서있는데 "브로님" 하고 부르지 좀 마세요. 약간 학창시절 급우에게 "님님, 이번 신작 애니 보심?" 하고 말을 거는 친구 같아서 소름돋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내 아저씨됨의 시작은 패션이 되었습니다. 오히려 다행일까요? 패션은 트렌드와 클래식이 동시에 발전하는 모양새니까요. 다른 아저씨들은 아저씨됨의 시작으로 음악을 꼽더라고요. 신곡을 전혀 모르고 듣던 음악만 꾸준히 듣는 것이 아저씨의 시작이라고 합디다. 저는 요즘은 제이팝을 듣고요, 노비츠키와 저금통, 해방 같은 최근 앨범도 종종 찾아 듣고요... 제발 아저씨 아니라고 해 주세요. 오히려 요즘은 락도 몇몇 곡 듣기도 한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