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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문 Sep 09. 2023

몰입을 대하는 두 가지 자세

고된 수행자 vs 부지런한 청소부

한 가지 일에 매우 몰두하여 집중한 상태. 오만 가지 일이 벌어지는 복잡한 세상 한가운데 앉아서 단련하는 고된 수행자. 몰입이라고 하면 쉽게 떠오르는 모습이다. 몰입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수련과 노력, 의지가 필요하다. 그렇기에 쉽지 않다. 그러나 몰입을 조금 다르게 접근해 보면 어떨까? 오만 가지 일 중 49999가지 일에 한눈팔지 않기 위해 힘을 쓰는 것이 아니라 49999가지 일을 없애는 부지런한 청소부가 되는 것이다.

다양한 옵션이 나를 더 나은 삶으로 이끌어 줄 것 같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이걸 가능성의 저주라고 부른다.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모든 것은 가능성으로만 존재한다. 그래서 선택을 하는 순간에는 무엇이 최적의 선택인지 알기 어렵다. 여러 옵션을 손에 쥐고 이도저도 하지 못하는 상태가 길게 유지될수록 좋은 결과를 얻을 확률도 낮아진다. 온전한 선택을 하기 전까지는 몰입의 상태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아웃라이어라는 책에서 소개된 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게 있다. 무언가에 통달하기 위해서는 1만 시간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생에 걸쳐서 1만 시간을 천천히 달성하기만 하면 될까? 아니다. 아웃라이어에서 얘기하는 정말 중요한 핵심은 ‘매우 짧은 기간 동안’ 1만 시간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공한 사람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20대 초반에 1만 시간의 훈련을 달성했다고 한다. 자신의 선택일 수도 있고, 운으로 주어진 기회일 수도 있지만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 매우 어린 나이에 이미 1만 시간 이상의 노력을 했기에 그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게 됐다는 것이다. 남들보다 압축적으로 1만 시간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한 가지에 집중해야 한다. 결국 1만 시간의 법칙에서도 몰입을 발견할 수 있다.

몰입을 쉽게 하기 위해서는 오만 가지 중 49999가지 일을 청소해야 한다. 개중에는 어떤 진로를 정해야 할지처럼 청소하기 어려운 일도 있겠지만 집중을 빼앗는 환경을 정리하는 것처럼 간단한 일들도 있다. 오늘 오랜만에 대학 시절 자주 가던 단골 카페에 갔다. 그 카페는 나에게 하나의 몰입 장소였다. 다른 일을 제쳐두고 공부에 몰두하던 곳. 사장님의 배려 덕분에 TV, 컴퓨터, 냉장고, 침대를 보며 갈등하지 않고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다. (너무 오래 있을 때는 추가 주문을 하는 나름대로 적당히 염치 있는 카공족이었다.) 오늘은 카페에서 구매한 지 4년 된 책을 드디어 읽기 시작했다. 집에만 앉아 있었다면 아마 그 책은 5년이 지나도록 책장에 그대로 있었을 것이다.

정말 해내고 싶은 일이 있다면 부지런한 청소부가 되어 몰입을 위한 환경을 만들어 보자. 책을 읽고 싶다면 북클럽을, 글을 쓰고 싶다는 글쓰기 클럽을, 공부를 하고 싶다면 도서관을 가는 것처럼 오직 한 가지 목적을 위한 환경 속에 자신을 배치해 두는 것만으로도 훨씬 더 쉽게 몰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꼭 힘든 과정을 거쳐야만 값진 것을 얻는 것은 아니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 보면 수행자가 될지, 청소부가 될지는 생각보다 쉬운 결정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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