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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문 Sep 17. 2023

안정과 나태 사이

안정감이란 뭘까? 지금 이대로여도 평온한 상태에서 느끼는 감정. 언제나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으로 산다면 신나지만 한편으로는 멀미가 날지도 모른다. 안정적인 삶을 추구한다는 표현은 그 자체로 너무나 안정적이고 이상할 것이 없는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지금 이대로여도 좋은 상태라면 다른 상태로 나아갈 동력을 상실하기 쉽다.


나는 요즘 야간 파트타임으로 대학원 수업을 듣고 있다. 이번 학기는 마지막 학기라 필수 과목이 없어서 수강신청에 더 많은 자율권이 주어졌다. 그래서 시간표를 짤 때 평소보다 더욱 고심했다. 그렇게 설레는 마음을 안고 개강 후 첫 수업에 들어갔다. 재미있는 주제라고 생각해서 고른 과목이었는데 수업의 내용이 내 기대와는 사뭇 달랐다. 첫 수업만으로 수업 전반을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강의자료를 보며 약간의 의아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여러 장의 장표에서 연이어 2002년 기준 통계 자료가 언급됐기 때문이다. 오래되었다고 모두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재와 큰 차이가 없어 업데이트를 할 필요가 없었다고 치더라도, 지금으로부터 21년 전인 2002년은 꽤나 오래전 이야기로 느껴졌다.


왜 이 교수님의 강의 자료에는 2002년 데이터가 그렇게 많이 남아 있는지 고민해 봤다. 해당 교수님은 매년 학교에서 이 과목을 강의해 오신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자료는 특정 시점에서 더 이상의 업데이트 없이 멈춰버렸다. 교수님의 이력을 찾아보니 2003년에 테뉴어를 받으신 것 같다. 2002년에 멈춰버린 데이터와 2003년에 보장된 종신직. 우연의 일치였을까? 테뉴어를 받으신 이후 강의에 대해 마음속 반짝이던 무언가를 잃어버리신 건 아니었을까.


삶에서 안정을 찾으면 그 안정이 더 많은 모험을 하기 위한 자산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이 수업을 듣고 내 생각이 어쩌면 잘못 됐을지도 모른다는 회의에 빠졌다. 안정을 찾은 후 그 상태로 머물러 있는 강의 자료를 보면서 안정감이 정말 우리의 삶을 더 나아지게 만드는 요소인지 의문이 들었다. 가끔 너무나도 명시적인 꿈을 갖고 있던 사람이 그걸 이뤘을 때 느끼는 허망함에 대한 이야기를 듣곤 한다. 예를 들면 올림픽 금메달이라거나 원하는 명문대에 진학하는 목표 같은 것 말이다. 온 일생을 마쳐 그 목표를 이뤘더니 더 이상 이룰 목표를 찾지 못해 혼란을 겪는 이들의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어렸을 때부터 ‘내가 지금 이루고 싶은 일을 최대한 가까운 미래에 이루는 것’이라는 메타적인 꿈을 꿨다. 언제나 이루고 싶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에(이것도 마냥 참인 명제이진 않을 수 있지만 지금까지는 참이다) 단 하나의 목표로 특정하지 않는 것이 나를 계속해서 움직이게 하는 힘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2023년에 만난 2002년 데이터들이 담긴 강의자료를 보며 너무나도 강렬하고 명확한 목표를 세우는 것이 목표를 이룬 후의 자신에게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안정적인 삶. 좋다. 마음에 평온을 가져다준다. 그러나 지금 이대로도 좋다는 마음과 나태는 얇은 종잇장을 사이에 두고 등을 맞대고 있다. 안정을 찾고 싶다는 마음이 사실은 나태해지고 싶었던 것은 아닌지 자신을 되돌아본다. 나는 결국 앞서 언급한 수업의 수강을 철회했다. 졸업 요건을 맞추기 위해서는 시간표 전체를 변경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첫 수업밖에 듣지 않았고, 이 과목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는 다르지만 나는 이 수업을 통해 귀중한 교훈을 얻었고, 내가 투자한 3시간은 충분히 가치 있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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