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매일 자기 전에 무의식 정화 명상을 한다. 왜 마음 공부를 [내면 작업]이라고 표현하는지 알겠다. 내면을 계속해서 비우고 채우는 훈련, 수련, 작업이 맞다.
이번 달 가장 좋아하는 무의식 정화 명상 가이드 문장.
"나는 나의 우산이 되어 소나기를 살아냅니다."
만트라처럼 계속 되뇌인다. 나는 나의 우산이다. 소나기를 피하지 않는다. 비를 맞아도 괜찮아. 나는 소나기를 기꺼이 살아낸다. 나는 나의 우산이 되어 소나기를 살아낸다.
여러 선생님의 가이드를 듣다가 환희지 선생님 말씀에 정착하게 되었다. 좋은 명상 지도자란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삶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문장을 선물해주는 사람이라는 생각도 든다.
퇴근하고 여름 채소 배부르게 먹고, 선풍기 앞에서 머리 말리고, 나에게 도착한 편지 하나하나 정성껏 답장하고 (=밑미 리추얼 댓글 달았다는 이야기), 최유리 노래 무한반복으로 듣다보니 기분이 너무 좋아져버려서 내일 출근도 싫지가 않잖아?
나의 비전이란 결과값으로 OO가 된 모습이 아니다. 끊임없이 그 방향으로 가면서 즐기고 고군분투하는 나인 것.
같은 말을 해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무게와 진정성이 다를 수 밖에 없다. 말이 아닌 삶으로 보여주는 사람은 같은 말을 해도 가질 수 있는 영향력이 다르다. 스스로 자신의 우산이 되어 소나기를 살아낸 사람이 하는 말은 힘이 세다.
고통의 나의 스승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시시해보인다면, 내가 큰 거다. 그걸 인정해야 한다. 나를 더 큰 물에 갖다 놓거나 이 상황을 불만없이 견디거나. 성장했다면 더 이상 어떤 일이 나에게 주어지기를 기다리면 안 된다. 지금 자리의 장점을 취하면서 나를 높일 수는 없다.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셀프 리더십이란 내가 어디를 향해 보고 갈지 아는 것이다. 다음 목표가 언제나 있어야 하는 것. 내가 궁극적으로 도달할 방향성.
우리는 대부분 들어 가는 것만 생각하고, 가서 어떻게 나를 더 높일 것인가는 고민하지 않는다.
마음에 안 드는 상대는 절대 안 바뀐다. 내가 다른 환경으로 가야 한다. 나에게 맞는 물을 찾아가는 것은 내 몫이다. 과장급 이상이면 배울 게 없다고 말할 때는 지났다. 내가 동료에게 배울 만한 걸 내어 놓고 정당한 대가를 받아가는 거다.
나의 비전이란 결과값으로 OO가 된 모습이 아니다. 끊임없이 그 방향으로 가면서 즐기고 고군분투하는 나인 것.
내 삶으로 말해야 하고
내 성과로 말해야 한다.
이번 주는 아침마다 켈리 최의 책 [웰씽킹]을 읽고 있다. 책을 구매하기 전 재미삼아 서점 리뷰를 찾아보는데 유독 이런 류의 자기계발서에는 ”뻔하다” “똑같은 소리” “별거 없네” 같은 댓글이 달린다.
20대에는 자기계발서를 좋아한다는 게 부끄러웠다. 요즘은 당당하게 좋아한다고 말하고 다닌다.
사람들은 자기계발서가 개인의 성공 법칙을 일반화하고 강요해서 싫다고 하면서 동시에 너무도 쉽게 외부의 기준으로 자신과 타인을 펴악한다. 연봉, 집 평수, 회사 이름 같은 것으로.
오히려 나는 자기계발서를 다양하게 읽어야 뻔한 남들의 성공법을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성공 법칙을 체화해서 나만의 성공 법칙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자기계발서 한 권을 맹신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겠지만 다양하게 읽으면서 그 안에서 보편성과 고유함을 찾아내는 건 완전히 다른 경험이다.
내가 자기계발서를 읽는 이유는 원하는 미래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인간은 상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만 꿈꿀 수 있다. 얼마 전 경제적 자유를 이룬 나의 미래를 시각화하는 훈련을 했는데 내가 꿈꿀 수 있는 부가 딱 잠실 아파트까지라는 걸 알았다. 그 이상은 경험해보지 못해서다. 잠실 사는 친구 집은 가봤지만 그보다 비싼 집에 놀러가본 적이 없었고 내 상상의 한계는 내 경험의 한계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기계발서를 읽으며 닮고 싶은 멋진 사람들의 삶을 생생하게 간접 경험하면 그만큼 내 꿈도 커진다.
오늘은 6가지 시각화 방법에 대해 읽었는데 그 중 [긴장 시각화]는 생각해보니 이미 잘 활용하고 효과를 본 방법이었다.
수능을 보러 배정된 학교에 들어서던 순간을 똑똑히 기억한다. 정문에서 학교 건물을 바라보며 나에게 말했다.
“이건 내가 이기도록 설계된 게임이야. 나는 이길 것이 분명한 이 게임을 그냥 즐기면 되.”
8시간 동안 이어지는 시험 시간 동안 즐거운 게임을 하는 듯한 기분 좋은 몰입감을 느꼈다. 그동안 모의고사를 볼 때도, 독서실에서 문제집을 풀 때도 이만큼 신나게 몰입해본 적이 없었다. 시험을 다 보고 집에 가는 길에 묘한 확신이 들었다. “됐다.”
지금까지 봤던 모든 시험을 통들어 가장 높은 점수가 수능에서 나왔다. 막판에 수학에 자신이 없어 수학을 놓아버리고 잘할 수 있는 과목에 집중했는데 심지어 수학까지 높은 점수였다. 이때 나는 이런 확신을 하게 되었던 것 같다.
“나는 실전에 강한 사람이구나.”
그 자신감은 회사 면접을 보러 갈 때, 많은 사람 앞에서 강연을 해야 할 때, 나를 든든하게 도와줬다.
“저 문을 열고 들어가면 면접관이 나를 기다리고 있어. 그들은 나를 좋아하게 될 거야. 이건 나를 위해 준비된 무대야.”
“강의가 시작되면, 사람들은 내 이야기에 빠져들 거야. 눈을 반짝반짝 빛내면서 감동적인 표정으로 나를 바라볼거야.”
물론 매번 시각화에 성공하지는 않았다. 시각화에도 실전에도 실패한 경험이 더 많았다. 왜일까. 돌아보면 잘하고 싶었지만 잘 안 될것 같다는 패배감이 먼저 들 때 실패했다. 애초에 안될것 같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거다.
마음 공부를 하면서 잠재의식을 활용하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는데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다.
요즘 이 책 저 책에서 힌트를 얻었다. 잠재의식을 깨우라는 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해보지도 않고서 왜 안될 것 같다고 생각한 걸까? 그러니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지.
끌어당김이나 시각화는 마술도 미신도 아니다.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다고 진심으로 믿으면 행동을 시작하고 노력하게 된다. 내가 원하는 게 나에게 다가온다는 믿음이 있어야 진정으로 노력할 수 있다. 그 노력과 실행이 쌓여서 결국 되는 거다. 절대 안 될 것 같은데 죽어라 노력하는 바보는 세상에 없다. 안 될것 같다고 생각하면 열심히 하는 척만 하다 끝난다.
머릿 속으로 “팔을 들어올려야지.” 생각하면서 팔을 들어올리지 않으면 팔은 움직이지 않는다. 팔을 움직이려고 진짜로 마음을 먹어야 팔이 움직인다. 글을 써야지, 기록 해야지 생각하면서 기록할 시간도 구체적으로 계획하지 않는 사람은 스스로 기록할 수 있다는 믿음이 없는 것이다. 기록 습관을 만들 수 있다고 믿고, 노트를 사고, 일정표에 기록 시간을 할당해야 (time-block) 비로소 기록을 시작할 수 있다.
끌어당김의 시작은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을 찾고, 그것을 가지고 누릴 수 있다고 진짜로 믿는 것이다.
자주 기억이 나는 상사가 있다. 이전 회사 임원이셨는데 늘 온화하게 웃는 표정과 말 한 마디 한 마디에서 품격이 느껴지는 분이었다.
어느 날 점심 시간이 가까워진 시간에 그 분이 나와 옆자리 동료가 있는 자리로 와서 물었다. “오늘 내가 점심 약속이 취소되어 밥 먹을 사람이 없는데 같이 먹어줄래?” 안 좋아하는 임원이었어도 직장인 DNA로 1초만에 “네! 가시죠!”를 외쳤을텐데, 이 분과의 식사를 거절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밥을 먹으러 가면서 그 분은 “나랑 같이 먹어줘서 고마우니까, 오늘 밥은 내가 살게. 커피도 살게! 먹고 싶었던 것 골라봐.”라고 하셨다. 같이 먹어줘서 고맙다니,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이 너무 존경스러웠다.
이런 말을 할 수 있으려면 상대가 나를 싫어하지 않을 거라는 심리적 안정감과 더불어 기본적으로 삶에 대한 감사가 있어야 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온전히 감사하게 느끼는 사람은 상대를 존중하고 가치있게 느낄 수 밖에 없다. 그런 대접을 받은 상대는 자연스럽게 그 사람을 존중하고 좋아하게 되고 무엇 하나라도 더 해주려고 노력한다. 삶에서 감사할 일이 생길 수밖에 없는 선순환이다.
그런 사람이 된다면 애를 쓰고 이 악물고 파도를 거슬러 나아갈 필요가 없지 않을까. 주변에서 나 잘되라고 알아서 밀어줄텐데 그 흐름에 그냥 몸만 맡기면 되는 것 아닌가.
그 회사에서의 마지막 출근 날, 그 분은 외근을 나가셔서 사무실에 안 계셨다. 평소의 나라면 어쩔 수 없지 뭐, 오히려 어색하게 인사 안해도 되서 좋다, 라고 생각하며 짐을 싸서 나갔을 텐데 그날의 나는 전화를 걸었다. “마지막 날이라 인사 드리고 싶어서 전화드렸어요. 통화 괜찮으세요? 짧았지만 함께 일할 수 있어서, 많이 배울 수 있어서 정말 영광이었습니다. 이 말씀 못 드리고 가면 너무 후회할 것 같아서요.”
일상에서 짜증이 날 때, 억울할 때, 상대가 싫어질 때. 자주 그 분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에게만 감사할 일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