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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성장 시대에는 자기계발도 느리게

by 단단
이 글은 뉴스레터 <함께하는 독학클럽> 7월 16일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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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은 회사 밖 홀로서기를 선언한 지 딱 1년,

유튜브를 시작한 지도 딱 1년이 되는 달이에요.


1년 내내 저는 조급하게 달려왔어요.

"내가 원하는 결과는 왜 이렇게 안 나오는 거야?"

스스로를 다그치면서요.


그런데 1년을 돌아보니

원하는 결과물은 모두 나왔더라고요.


책 출간, 유튜브 구독자 1만 달성, 뉴스레터 다시 시작.


원하는 '결과'가 안 나온 게 아니라

원하는 '반응'이 안 나온 거였어요.


결과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고

반응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죠.


그런데 저는 계속 결과가 아닌 반응에 집착하면서

반응까지 제가 통제할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어요.




기회는 그릇에 맞게 찾아온다



왜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이렇게 가혹할까요.

저는 당장 회사 월급만큼 돈을 벌어오라고 저를 몰아세웠어요.


주 5일 하루 8시간. 스스로 세운 근무 원칙대로 1년 동안 성실하게 일하며 계속해서 결과물을 만들었죠. 그런데도 늘 원하는 반응이 나오지 않는다고 아쉬워했어요.


책 <내 일을 위한 기록>이 한달 안에 2쇄를 찍었는데도 10쇄를 찍지 못해 아쉬워했고

구독자 1만을 만들었는데도 실버 버튼을 받지 못해 아쉬워했죠.


그 원인을 '능력 부족'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1년쯤 지나니 알겠더라고요. 능력으로 결과는 만들 수 있지만 반응까지 만들 수는 없었어요.


그럼 원하는 반응은 어떻게 만드는 걸까요? 답은 '그릇'이었습니다.

저는 지금보다 더 큰 반응을 감당할 만큼 그릇이 크지 않았던 거였어요. 조금 더 솔직해져 보자면, 말로는 나를 더 알리고 싶다고 하면서도 나를 알리는 일이 두려웠어요.


썸네일에 얼굴을 정면으로 노출하지 않는 것도

더 후킹한 타이틀을 쓰지 않는 것도

실명이 아닌 필명 '단단'으로 활동하는 것도


유명세를 감당할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있었던 거예요. 그러면서 나를 더 알리고 싶은데 마음처럼 안 된다고 스스로를 속이고 있었어요.


속으로는 사실 '지금은 이 정도까지만 알려지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딱 그 정도 반응이 올 행동만 하고 있었던 거예요. 복권 한 장 사지 않으면서 로또에 당첨되기를 바라고 있었더라고요. 부정적인 댓글이 달리면 며칠 내내 속앓이를 하다가 다음 영상 내용을 안전하게 바꿔버리는 저는, 아직 바다로 나갈 준비가 안 되어 있었던 겁니다.


돈을 감당할 그릇이 작은 사람이 큰돈을 벌면 인생이 위험해지는 것처럼, 유명세를 감당할 그릇이 작은 저는 직감적으로 알았던 거죠. 지금보다 더 알려지면 위험해!


그걸 알고 나니까 이상하게도 조급함이 사라지더라고요. 알고 보니 저는 저를 지키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노력하고 있었던 거예요. 시간이 지나 그릇이 커지면 반응은 저절로 따라온다는 걸 이제야 알겠어요. 신은 감당하지 못하는 자에게 행운을 쥐여주지 않죠. 기회를 감당할 수 있을 때까지 그릇이 충분히 커질 때까지 저는 지금처럼 성실하게 결과물을 만들기로 다짐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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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성장 시대에는

자기계발도 느리게



시간이 흘러 자연스럽게 그릇이 커지기를 기다리는 전략.

몇 년 전만 해도 미련한 선택이었을 거예요. 특히 시장에 유동성이 넘치고 투자도 활발했던 코로나 시기에는 하나를 선택해서 전력 질주하는 전략이 효과적이었죠.


하지만 이제 한국이 완전한 장기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건, 경제를 잘 모르는 저를 포함해 누구나 아는 사실이죠.

이럴 때는 재테크뿐만 아니라 커리어도, 자기계발도 분산 투자를 해야 합니다.


단기 올인 투자로는 수익을 낼 수 없다면, 장기 분산 투자를 할 수밖에 없죠. 저는 지금 회사 밖에서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아주 천천히 굴리고 있어요.


매일 2시간 영어 번역 공부 → 1년 후 영어 번역가

매일 30분 일본어 공부 → 10년 후 일본어 번역가

매일 30분 유산소 운동 → 80세까지 일할 수 있는 기초 체력

매일 2시간 SNS 콘텐츠 제작 → 일하는 나를 알리는 기초 작업


어느 하나 당장 성과를 바랄 수 없는 일들이죠. 누군가는 그러지 말고 차라리 하루 8시간씩 영어 번역 공부에 올인하라고 조언할 거예요. 하지만 저는 그 선택을 하지 않았어요. 너무 리스크가 크니까요. 이렇게 시장이 얼어붙은 시기에 신인 번역가에게 덥석 일을 맡기는 출판사가 있을까요? 실력을 갖춘 후에도 계약까지 몇 년이 걸릴지 아무도 모릅니다. 이제 얼마나 빠르게 실력을 쌓느냐보다 중요한 건, 기회가 올 때까지 버틸 수 있느냐죠.


오래 버틸 수 있도록 자기 계발 성장 속도도 장기 저성장 시스템에 맞춰 바꿔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성장보다 루틴에 집중합니다. 당장의 반응이나 기회보다는 계속해 나갈 힘을 기르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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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답게 남들

따라 하는 법



저는 SNS도 이 전략에 맞춰서 느리게 합니다. 콘텐츠 업로드 주기가 길다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급성장이 아닌 완만한 저성장을 만드는 전략이죠.


제 SNS를 보고, 주변 SNS 고수 지인들이 답답한 마음에 감사한 조언을 자주 해줘요.


"단단님 스레드 왜 안 하세요?"

"릴스랑 쇼츠 꼭 만드세요."

"스레드에는 정해진 문법이 있어요. 그대로 쓰셔야 해요."


너무 감사하고 당장이라도 그렇게 따라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으면서도 선뜻 실행에 옮기지 못했어요. 대신 인스타그램에 릴스가 아닌 길고 긴 콘텐츠를 캡쳐한 카드 뉴스를 올렸어요. 그리고 가독성을 높일 수 있도록 첫 이미지에 큰 폰트로 타이틀을 붙였고요. 그랬더니 한 달도 안 되어서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3천 명에서 6천 명으로 늘었어요. SNS 고수들은 '내 말 들었으면 10만이 됐을 텐데!'라고 아쉬워하겠지만 어쩌겠어요. 이게 저인걸요.


조언을 듣고 스레드도 시작했지만 '스치니 안녕~'은 도저히 못하겠어서 그냥 제 말투로 올렸어요. 대신 기록과 루틴 실천 팁을 짧게 정리해서요. 그랬더니 스레드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몇 주 지나지도 않아서 구독자가 1천 명을 넘겼습니다.


왜 이렇게 청개구리처럼 구냐고요? 저는 SNS로 팔로워를 늘리는 게 목적이 아니거든요. SNS로 저라는 사람의 매력과 개성을 드러내고 싶어서 하는 건데, 팔로워를 늘리려고 남들 말투를 그대로 따라 하면 길을 잃을 것 같았어요.


저 같은 사람에게 비즈니스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뭘 알려주면 그대로 안 하고 꼭 자기 식대로 변형하더라. 똑똑한 애들이 그래서 성공 못 하는 거야."


네, 그 성공 못 하는 똑똑한 애가 바로 접니다. 서울대 합격생들의 공부 비법도 비슷하잖아요. 선생님 말씀을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그대로 받아적어서 달달 외우기. 그게 가장 빠르게 성과를 내는 방법이라는 건 알겠어요. 효율적이고 실패 확률도 낮죠.


그런데, 저는 그 방식으로는 재미가 없어서 지속할 수 없는 사람이더라고요.

숫자를 만들면서 성취감을 만끽하는 비즈니스 전문가들은 아마 저를 이해하지 못할 거예요. 하지만 저는 숫자 만드는 것보다 '나만의 것'을 만드는 게 재미있는 사람인 걸 어떡해요.


물론 저도 남들의 성공 방식을 따라 합니다. 하지만 청개구리처럼 '제 식대로 변형해서' 합니다. 그래야 10년, 20년 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야 그게 정말 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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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한 구간을

견디는 힘



커리어 분산 투자, 장기 저성장 시스템, 루틴, 말은 좋죠. 문제는 이 구간을 지나가는 게 너무 지루하다는 것 아닐까요? 그래서 사람들이 일단 빠르게 성장해서 그 쾌감을 맛봐야 한다고 말하는 거겠죠.


결과물을 만드는 건 오히려 쉬워요. 반응을 기다리는 게 어려운 거죠. 이 지루한 구간을 어떻게 견뎌야 할까요?


저는 지루함을 인내하기 위해 작은 성장을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듭니다. 예를 들어, 저는 지난 6개월 동안 매일 30분 일본어 공부를 했지만 아직 기본 문장밖에 모릅니다. 만약 일본어 원서 읽기를 목표로 세우고 그것만 바라본다면 원서 읽을 실력이 갖춰질 때까지 몇 년 동안 저는 매일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고 느낄 거예요. 무기력해지는 거죠. 하지만 사실 촘촘히 들여다보면 매일 아주 조금씩 성장하고 있거든요. 매일 단어를 외우고 문법을 공부하고 있으니까요. 이걸 확인할 수 있는 나만의 기록과 평가 시스템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매일 그날 배운 일본어 문장을 수첩에 기록하고 외운 후

다음날 셀프 테스트를 합니다.

틀린 문장은 표시해 두었다가

그 다음날 다시 외우고 테스트해요.

이렇게 하면 매일 조금씩 외운 문장이 쌓이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이런 시스템을 다른 기록 루틴에도 동일하게 적용하고 있어요.

하루 딱 한 줄. 내 일을 위해 실천한 것을 적는 [하루 한 줄 독립일지]

고민을 행동으로 바꾸는 [고민 해결 노트]

일주일 동안 이룬 작은 성과를 기록하는 [프리워커 주간보고]

한 달 동안 배우고 깨달은 것들을 돌아보는 [한달 회고]


기록하지 않으면 지지부진하게 제자리를 맴도는 것처럼 보이는 일들도 기록하면 눈에 보이는 성장이 됩니다. 저는 그렇게 이 시간을 버티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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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마음이 무너지는 날들이 있습니다. 그건 아마 그냥 제가 사람이라서 그런 걸 거예요. 우리는 누구나 넘어지고 흔들리니까요. 그럴 때, 저는 여러분이 보내주신 다정한 답장을 꺼내 읽습니다.


이정재 배우가 한 인터뷰에서 했던 말을 오래 기억하고 있어요.

"감사함을 잊으면 모든 걸 잃는다."


눈치채셨나요? 이번 레터는 저를 기어이 나아가게 하는 여러분을 향한 러브레터였습니다.

고마워요. 이 과정을 함께 해줘서요. 우리 두 손 꼭 붙잡고 기어이 앞으로 나아가요.


이 글은 뉴스레터 <함께하는 독학클럽> 7월 16일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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