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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향인이라면서 어쩜 그렇게 SNS를 잘 하냐고요?

내향인의 SNS 생존법

by 단단
이 글은 뉴스레터 <함께하는 독학클럽> 7월 2일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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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향인이라면서 어쩜 그렇게

SNS에 본인 이야기를 솔직하게 잘 해요?"


퇴사 후 가장 자주 받는 질문이에요. 그러게요, 저는 아무리 좋은 사람을 만나도 세 시간 이상 대화하면 집에 가고 싶고, 네트워킹 모임에 가면 숨을 곳부터 찾는 내향인인데 말이죠.


저도 처음에는 의아했어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오히려 내향인이라서 SNS에서 제 이야기를 잘할 수 있더라고요. 바로 SNS의 특성과 제 성향이 묘하게 잘 맞았기 때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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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보다 글이 편해서요



유튜브, 블로그, 인스타그램, 스레드.

어떤 SNS든 기본적으로 말이 아닌 '글'에서 시작하죠.


제 주변을 보면 외향인은 말을, 내향인은 글을 좀더 익숙하고 편하게 생각하더라고요. 말은 실시간 대면 소통이고 글은 비실시간 비대면 소통이잖아요. 생각을 정리해서 말하고 싶어하는 내향인들은 자연스럽게 글을 더 자주 쓰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어떤 형태로든 자신을 기록하더라고요. 저 역시 그랬어요. 친구와 싸우면 만나서 풀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자주 편지나 장문의 카톡을 주고 받았어요. 회사에서 억울한 일을 겪은 날에는 친구와 수다를 떨기보다 집에 돌아와 나만의 데스노트에 와다다 일기를 쓰면서 감정을 정리했고요.





온라인이 더 편해서요



내향인 중에는 직접 만나보면 수줍음이 많지만 온라인에서 자신의 모습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사람들이 많아요. 아마 저처럼 신경이 온통 [내]안으로 [향]해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저는 글을 쓸 때, 설사 이 글이 어딘가에 공개되는 글이라고 해도 사실 타인이 어떻게 생각할지 별로 깊게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내 생각을 외부로 꺼내어 표현하는 데 집중하거든요. 그 과정에서 카타르시스, 해방감을 느끼고요.


오히려 외향인 친구들이 저에게 "글쓰기가 어렵다", "SNS에 내 생각을 드러내는 게 부담스럽다"는 고민을 더 자주 토로해요. 외향인 친구들은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다보니 글을 쓰거나 SNS를 할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하기도 하고, 대면 소통이 아닌 비대면 소통인 SNS가 마치 벽을 보고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 답답하다고도 하더라고요. 게다가 사람을 좋아하고 감각이 [외]부를 [향]해 열려있다보니 오히려 타인의 시선을 더 신경쓰게 된다는 고민도 들었어요.


얼마전 스탠딩 이자카야에서 열린 네트워킹 파티에 초대되어 갔어요. 스탠딩 이자카야라니... 네트워킹 파티라니... 좋아하는 분의 초대라 자세히 살펴보지도 않고 덥석 가겠다고 했는데 가게 문을 열자마자 힙한 분위기에 당황해서 집에 가야 하나 고민했답니다.


빰!빰!빠!밤! 흥겨운 음악 사이로 아무리 소리 높여 외쳐도 옆사람 말이 들리지 않는 가게 안에서 한껏 즐거워 보이는 사람들을 바라봤어요. 네, 내향인은 참여자일 때보다 관찰자일 때가 더 많고 그래서 글감이 늘 샘솟나봐요. 이 글도 그날 사람들을 관찰하며 쓴 메모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반갑게 포옹과 악수를 나누고 부딪히는 술잔 너머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웃는 외향인들에게 '네트워킹'이란 실시간으로 대면하며 에너지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활동 같았어요. 반대로 내향인인 저에게 네트워킹이란 차분한 분위기에서 깊은 속 이야기를 꺼내어 각자의 마음 생김새를 이해하며 존재를 확인하는 활동이고요.





내향인에게는

SNS가 네트워킹 모임



회사를 다니면서 오랫동안 '네트워킹' 때문에 고민했어요. 좋은 직장으로 이직하려면, 승진하려면, 멋진 프로젝트를 맡으려면, 자리에 앉아서 일만 하지 말고 밖에 나가 나를 어필하는 네트워킹을 해야 하는 것 아닐까 하고요. 사람 많은 곳에 가면 숨을 구석부터 찾는 나같은 사람에게 좋은 기회가 오긴 올까, 그런 생각으로 내키지도 않는 네트워킹 모임에 갔다가 우울하게 집에 돌아온 적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10년 넘게 회사를 다니다 회사 밖에서 프리랜서로 일을 시작하면서 처음에는 네트워킹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꼭 누군가를 직접 만나야만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더라고요.


저는 한달에 두세 번 오프라인 강의가 있는 날을 제외하면 집 밖에 나가지 않고 서재 안에 틀어박혀서 하루종일 컴퓨터로 읽고 쓰며 일합니다. 저녁 6시에 일을 마치고 요가원에 가는 게 유일한 외출이죠.


반대로 오프라인 네트워킹을 잘하는 외향인 프리랜서 지인은 콘텐츠를 만들고 강의를 한다는 점에서는 저와 하는 일이 비슷하지만 세일즈 타깃과 방식이 달라요. 그 분이 주로 하는 기업 강의는 소비자(=강연 듣는 사람)와 구매 결정자(=HR 담당자)가 다르죠. 그 분은 네트워킹 모임에서 구매 결정권을 가진 회사 담당자를 만나 좋은 기회를 얻더라고요. 저는 그 시간과 에너지를 SNS에 쏟는 거죠. 자연스럽게 제가 하는 강의는 기업 강의보다 직거래 강의, 즉 소비자와 구매 결정자가 동일한 형태가 더 많고요.


물론 기업 강연이 들어오면 감사히 받고 있지만 기업 강연 기회를 얻기 위해 일부러 오프라인 네트워킹 파티에 다닐 필요는 없다고 결론 내렸어요. 흥겨운 파티 분위기를 즐기는 외향인이라면 즐거움과 기회를 모두 얻을 수 있는 반가운 시간이겠지만 그 분위기를 즐기지도 못하면서 멀뚱히 자리만 채운다면 어차피 좋은 기회를 얻기 어려울 테니까요.


어떤 방식이 더 좋고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겠죠.

어느 쪽이든 자신의 성향에 맞는 선택을 해야 오래 즐기며 일할 수 있을 테니까요.


52584_2876858_1751357094303829127.png 조용한 공간에서 나혼자 일해야 생산성이 좋은 나란 사람




내향인일수록

내 일에 자신이 없을수록 SNS부터



번역 수업에서 선생님이 자주 하시는 말씀이 있어요.

"이제 번역가도 나를 알려야 하는 시대입니다. SNS 하세요."


수강생 분들은 주저하는 눈빛으로 일단 번역 실력부터 키우고 SNS를 하겠다는 대답을 하시더라고요.


흔쾌히 SNS를 할 만큼 번역 실력이 쌓였을 때는 사실 오히려 SNS를 하지 않아도 될 때에요. 이미 출판사에 이름을 알릴 만큼 실력이 올라왔을 테니까요. 하지만 번역 실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일단 번역서를 계약하고 번역을 실제로 해보며 부딪히고 깨져야 하는데, 그러려면 나를 알려서 일감을 받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는 거죠.


출판사 입장에서 초보 번역가를 쓰는 이유는 실력이 아쉬운 대신 번역료가 저렴하기 때문이겠죠. 비슷비슷한 실력의 수많은 초보 번역가 사이에서 일감을 받으려면 '여기 내가 있다'는 걸 적극적으로 알려야 하고요.


실력을 키운 후에 나를 알리고 싶은 마음은 어쩌면 일을 받는 내 입장일 수도 있어요. 반대로 실력이 부족할 때부터 나를 알리겠다는 건 일을 주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거죠. 누구에게 일을 맡겨야 할지 결정하기 쉽게 도와주는 거니까요.


엉성한 상태에서 나를 드러내는 게 내키지 않을 수 있지만 그때부터 나를 알려야 작은 기회부터 얻으며 실력을 쌓을 수 있고, 무엇보다 이 과정 자체가 포트폴리오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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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단골 카페를 바꾸는 타이밍이 있어요. 사장님이 저를 알아보고 웃으며 말을 걸어오거나 쿠키를 서비스로 주실 때 단골 카페를 옮겨요. 제 친구들은 이런 저를 보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해요. 그런 제가 수십만 명이 보는 SNS에 사적인 이야기를 쓰는 건, 어쩌면 오프라인에서 어색하게 웃는 대신 서재에 앉아 상대와 나 사이 안전 거리를 확보한 상태에서 미리 다듬고 준비한 언어로 나를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지금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저와 비슷한 성향이신지

아니면 제가 평생 부러워했던 에너지 넘치는 외향인이신지 궁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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