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뉴스레터 <함께하는 독학클럽> 8월 13일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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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내 이야기 콘텐츠로 만들고 싶은데 너무 두려워. 솔직하게 나를 보여주려면 불행한 가족사부터 공개해야 하잖아."
정보성 콘텐츠로 SNS를 잘 키워왔던 지인이 제게 이런 고민을 털어놓았어요. 채널 조회수와 구독자수 수치는 높은데 찐팬이 적어서인지 최근 오픈한 워크숍 신청자가 너무 적어서 놀랐다고요. 워낙 요즘에 다들 '취약성을 드러내라, 내 이야기를 하라' 라고 조언하니까 나를 드러내는 콘텐츠를 만들어야 할 것긴 한데 솔직하게 나를 드러낼 용기가 없다고 지인이 말했죠.
저도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었어요. 몇 년 전, 가족 문제로 심리 상담을 시작하며 브런치에 상담 일기를 남겼어요. 그때 저는 최대한 솔직하게 전부 다 기록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요? 엄청난 악플에 시달려야 했고, 심지어 얼마 뒤 가족들이 제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뒷이야기는 생략할게요..)
모든 걸 다 보여주고 제게 남은 건 상처뿐이었어요. 오래 묵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심리 상담과 기록을 시작했지만, 오히려 상처가 덧나며 재외상(re-traumatization)을 경험했습니다. 너무 혼란스러웠어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회가 거부하는 것 같았죠.
한동안 상담을 지속하며 마음을 추스르던 어느날, 상담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모든 걸 다 보여줘야 하는 건 아니에요. 혼자 소화해야 하는 이야기도 있어요. 남들이 명이씨 마음을 전부 다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때 알았습니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이야기를 섣불리 쓰면 안 된다는 것을요.
스스로 감당하지 못하는 이야기는 글로 쓰지도 말자고 생각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순간의 감정에 매몰되어 있을 때 우리는 그 감정을 자신과 동일시해요. 하지만 순간의 감정과 나는 다르죠. 명백히 다른 자아 입니다. 김주환 교수는 책 <내면 소통>에서 자아를 경험자아, 기억자아, 배경자아, 세 가지로 구분합니다.
음악을 듣는 상황에 빗대어 세 자아를 설명해 볼게요. 경험자아는 지금 듣고 있는 음악이 참 좋다고 느끼는 자아입니다. 기억자아는 지난주 친구와 음악감상회에서 들었던 재즈가 참 좋았다고 기억하는 자아입니다. 배경자아는 그 기억을 되돌아보며 나는 재즈를 참 좋아하는 사람이지, 라고 단순히 경험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경험에서 나에 대한 해석을 끌어내는 자아입니다.
경험자아도 기억자아도 모두 '나'인 건 맞지만, 나라는 존재의 정체성이 되는 건 배경자아입니다. 경험과 기억을 통해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해석한 자아를 우리는 진짜 나라고 믿게 되니까요.
어떤 이야기를 감당하지 못한다는 건, 아직 그 이야기가 경험자아나 기억자아의 상태에 있다는 거예요. 그때 섣불리 글로 그 감정과 기억을 옮기게 되면 부정적인 경험만 나열하거나 경험을 왜곡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미 배경자아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을 만큼 시간과 감정의 거리가 생긴 이후에 그 이야기를 글로 쓰고 공개해야 나뿐만 아니라 보는 사람도 안전함을 느낍니다. 내 이야기를 콘텐츠로 쓰는 것과 일기의 차이가 바로 이것이죠. 일기가 소화하지 못한 (비교적) 실시간 경험을 나열하는 기록이라면, 콘텐츠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천천히 성찰하며 나의 경험과 기억을 '재해석'하는 기록입니다.
어느 정도 시간과 마음의 거리를 두고 쓴다고 해서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니죠. 오히려 더 객관적인 시선에서 깊이 있게 내 이야기를 하게 될 수 있어요. 우리가 '솔직하다'라고 느끼는 글의 특징이 무엇인지 아세요? 구체적인 글입니다. 하나의 주제를 아주 구체적으로 쓴 글을 보면 그게 과거의 사건이라도, 속에 있는 생각을 다 보여주지 않아도, 독자들은 솔직하다고 느낍니다. 머릿속으로 마치 글 속의 당사자가 된 것처럼 상상할 수 있으니까요. 읽히는 글은 독자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는 글입니다. 주인공이라고 느낄 만큼 몰입하려면 구체적인 안내가 필요하죠.
그래서 저는 하나의 주제를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달 동안 파고들어요. 뉴스레터 콘텐츠도 마찬가지 입니다. 일주일에 한 편의 글을 쓰지만 한 주에 딱 한 번 쓰는 게 아니라 일주일 내내 계속 씁니다. 첫 3일은 책도 읽고 다른 일도 하면서 떠오르는 생각을 수집합니다. 그다음 3일은 수집한 생각 중 하나를 정해서 살을 덧붙여요. 레터에 들어갈 쪽글을 써두는 거죠. 그리고 발행 전날에는 2~3시간 집중해서 모아둔 쪽글을 이어 붙이고 다듬습니다. 간혹 일이 바빠서 미리 글감 기획이나 쪽글 쓰기를 안 해둘 때가 있는데, 그렇게 후다닥 쓴 글은 주제와 상관없이 조회수와 댓글수가 훅 떨어지더라고요. 독자는 냉정하고 정확합니다. 얼마나 고민하고 다듬은 글인지 단번에 알아보죠.
우리가 좋아하는 술술 읽히는 솔직한 글은, 절대 쉽게 호로록 써지지 않습니다.
제 글쓰기 과정을 말씀드리면 이런 질문을 자주 받아요. "나를 돌아보며 글쓰기를 하려고 해도 뭘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어요. 음악회 다녀와서 뭘 쓰려고 해도 그냥 좋았다, 멋졌다, 리프레쉬 잘했다, 외에는 별 생각이 안 나요." 이런 말도 자주 하죠. "너무 좋은데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네." 하지만 이건 표현력이나 필력 문제가 아닙니다. 애초에 경험의 순간, 관찰력이 부족해서 쓸 거리가 부족했던 거죠. 똑같은 경험을 해도 입체적으로 깊이 있게 관찰해야 풍부하게 느낄 수 있고, 느낀 게 많아야 자연스럽게 글에 깊이가 더해지니까요.
솔직한 사람은 다 보여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적당히 감출 줄 아는 센스있는 사람이죠. 상대와 나 사이에 적정 거리를 예민하게 인지하고 상대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 그러나 구체적으로 깊이 있게 보여줄 때, 상대는 내 이야기를 들을 가치가 있다고 판단합니다. 다 중요하다는 말은 그닥 중요한 게 없다는 말이죠. 다 보여주면 별로 보여줄 게 없는 사람처럼 보일 수 있어요.
그럼 관찰력 훈련은 어떻게 하냐고요?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다른 그림 찾기'에요. 매일 똑같아 보이는 출근길 버스정류장, 회사 로비 카페, 요가원에서 아주 사소하게라도 오늘 조금 달라보이는 걸 찾아서 기록하는 거죠.
반복되는 평범할 일상에도 관찰할 거리, 쓸 거리가 넘쳐납니다.
(요약) 나를 드러내는 솔직한 글쓰기 팁
아직 소화하지 못한 이야기는 쓰지 말자
하나를 구체적으로 깊이 있게 쓰자
관찰력 훈련으로 풍성한 글 소재를 찾자
사실 제 글은 전혀 솔직하지 않습니다. '어쩜 이렇게 솔직하게 쓰냐'라는 댓글이 무색할 만큼 저는 의외로 많은 걸 숨기고 있거든요. 그럼에도 제 글에서 솔직한 매력을 발견해 주시는 이유가 뭘까요?
아마 '균형감' 때문일 겁니다. 저는 저를 위해서 글을 씁니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제 글을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내가 좋아하는 글만 쓰면 읽어주는 사람이 없고, 남들이 좋아하는 글만 쓰면 동기부여가 안 되어서, 결국 어느 쪽이든 지속할 수 없잖아요. 내가 하고 싶은 여러 이야기 중에서 보는 사람이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찾아내는 '균형감'이 필요합니다. 많은 고민이 필요한 일이지만, 고민 끝에 내 글이 제대로 전달되었을 때의 쾌감은 그만큼 크더라고요.
AI 덕분에 정보성 콘텐츠로 SNS를 키우는 건 훨씬 쉬워졌다고들 말합니다. 책 읽기 좋은 뚝섬 카페 5, 이런 콘텐츠쯤이야 AI가 순식간에 척척 만들어주니까요. 그러나 내가 드러나지 않는 정보로 빠르게 쌓은 조회수와 구독자수는 허수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클릭률에 비해 전환율이 낮으니까요. 열심히 모은 팔로워와 뭔가를 하려고 하면, 정작 반응이 없는 거죠. 느리더라도 확실하게 꾸준히 내 길을 만드는 방법은 '내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내가 삶에서 경험하고 느낀 건 나밖에 못 쓰니까요.
오늘 레터 주제는 7월 유튜브 라이브에서 남겨주셨던 구독자 질문에서 시작되었어요. 남겨주신 질문들 정말 하나씩 다 읽고 함께 고민하고 있거든요. 오늘 레터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마저 나누고 싶어서 유튜브 라이브를 한 번 더 준비했어요.
이번 주 목요일 (8/14) 저녁 8시.
유튜브 라이브에서
<솔직한 내 이야기로 콘텐츠 만드는 법> 함께 이야기 나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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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com/live/nTs0vqXm7B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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