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31일.
브런치북 대상 수상작 발표일이었다.
당연히 안 될 거라고 생각했으면서도 내심 기대했는지 긴장감에 입술이 바짝 말랐다. 발표 게시물을 클릭하는 오른손이 덜덜 떨린다. 스크롤을 한 번, 두 번... 침까지 꼴깍 삼키며 계속 내렸지만 역시나 수상자 명단에 내 이름은 없었다. 속상한 마음을 애써 누르고 게시물 마지막까지 스크롤을 쭉 내렸더니 심사위원 총평이 나왔다. 인터넷 창을 닫으려던 찰나, 한 심사위원의 심사평에 시선이 멈췄다.
"자기 치유 이상의 작품, 자신뿐 아니라 타자를 입체적으로 등장시키는 작품, 호기심과 탐구와 실천이 계속되는 작품을 주로 선택했다."
자기 치유 이상의 작품.
이 문장을 보자마자 가슴에 못이 콕 하고 박혔다. 내 작품이 선정되지 못한 이유가 바로 이거였구나. 그냥 나 혼자 좋자고 쓴 얘기였어, 자기 치유를 넘어서지 못한 작품이었구나. 나를 콕 집어 남긴 심사평이 아닌 게 분명한데도, 한번 박힌 못은 쉽게 빠지지 않았고 비슷한 글을 읽을 때마다 상처가 덧났다.
‘책 읽는 사람보다 책 쓰는 사람이 많은 시대’라는 말을 누가 할 때마다 속으로 ‘난 쓴 책보다 읽은 책이 1천 배는 더 많다’며 투덜거리기도 했다. 이렇게 좁은 내 속을 어떻게 알았는지, 커리어 콘텐츠 플랫폼 퍼블리에 기고한 포트폴리오 작성법 아티클에는 이런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왜 일기를 여기에 써놨냐." 덧난 상처는 아물 틈이 없었다.
'읽는 사람보다 쓰는 사람이 많은 시대'. 자조 섞인 이 말은 3,700년 전 고대 수메르 점토판에 새겨진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다'라는 잔소리만큼이나 시대를 뛰어넘는 논쟁이다.
200년 전 조선 시대에도 ‘읽는 사람보다 쓰는 사람이 많다’며 혀를 끌끌 차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개혁 군주 정조다. 당시 조선에는 사소하고 흔한 일상 이야기를 담은 자유로운 문체의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출판 문화의 대중화를 못마땅하게 여겼던 정조는 새로운 문체인 소품체로 쓴 책을 금서로 정하고 이를 읽은 신하를 벌하기도 했다. 블로그도 스레드도 없던 시대에도 '그런 잡문은 일기에나 쓰라'고 꾸짖는 왕이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왕이어도 글을 읽고 쓰는 사람 모두를 바꿀 수는 없는 법. 말과 글은 결국 쓰는 사람의 편에 설 수밖에 없다.
내 이야기를 쓰고 싶은 건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상황만 허락한다면 누구에게든 어디에든 인간은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 한다. 그것이 공적 가치를 지닌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내 이야기 쓰기는 자기 치유 효과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의미 있는 행위다.
게다가 AI 기술의 발전으로 (AI가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내 이야기의 가치가 오히려 더 높아졌다. 기사, 학술 논문, 심지어 소설까지 AI가 써주는 이 시대에 AI가 쓰지 못하는 유일한 글이 바로 '내 이야기'이다. 내가 직접 써서 AI에게 전해주지 않는 한, AI는 내가 경험한 일과 감정을 알 수도 쓸 수도 없다. 2014년에 개봉한, AI와 사랑에 빠지는 미래를 예고한 영화 '그녀(her)'에서 주인공 테오도르의 직업이 '편지 대필 작가'인 이유도 마찬가지 아닐까. 이제 인간이 유일하게 AI보다 잘 쓸 수 있는 글은 자신의 내밀한 감정과 경험을 쓰는 글뿐이다.
그래서 나는 200년 묵은 이 지겨운 논쟁을 다시 한번 꺼내려 한다. 내 이야기를 하는 게 우리 인간의 숨길 수 없는 욕망이라면 차라리 당당하게 드러내보자. 어차피 이제 이것만이 인간이 더 잘 쓸 수 있는 글이라는데.
물론, 내 이야기를 하고 싶은 욕망에는 두려움이 뒤따른다. '고작 일기나 썼다고 욕먹으면 어쩌지.', '악플조차 달리지 않은 채로 조회수 0인 게시물이 되면 어쩌지.', '막상 공개하려니까 부끄러운데, 누가 보면 어쩌지.' 어쩌지로 끝나는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나 역시 그 수많은 어쩌지를 뚫고 내 이야기를 꺼내 왔다. 책을 쓰고 유튜브, 뉴스레터, 인스타그램, 브런치, 링크드인까지 온갖 SNS에 내 이야기를 하며 나만의 길을 만들고 있다. 솔직하게 내 이야기를 쓰고 안전하게 사랑받으며 그 힘으로 내가 속한 세계를 확장하고 새로운 기회를 얻으면서 말이다.
이제 기대감이 생겼다고? 그렇다면 미리 일러두어야겠다. 나는 한 달 만에 팔로워 몇십만을 약속할 수도, 월 1천만 원 수익을 보장해 줄 수도 없다. 대신 느리지만 나답게 내 이야기로 사랑받는 법은 알려줄 수 있다.
빠르게 성장하면 부작용이 뒤따르는 법이다. 너무 급하게 숫자를 불리려고 하면 찐팬이 아닌 구경꾼을 모으게 된다. 우리가 원하는 독자는 변덕스럽고 의리없는 구경꾼이 아니라 나를 믿고 응원해 줄 든든한 찐팬이다. 찐팬을 모으려면 조급함을 내려놓고 숨을 고르며 천천히 나아가야 한다.
그럴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면, 이제 우리의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이 책을 덮을 때쯤, 어서 내 이야기를 쓰고 싶어서 손가락이 근질거릴 것이다.
이 글은 세 번째 책을 내기 위해 출판사에 보낸 원고의 프롤로그입니다.
원고를 보낸 바로 다음날, 미팅 제안을 받았어요. 알고 보니 그동안 제 SNS와 활동을 지켜보셨다고 해요. 책 <내 일을 위한 기록>을 재미있게 읽고 후속작을 제안하려고 기획 회의도 하셨다는 말씀이 놀랍고 신기했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혼자서 바위를 옮기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멀리서 제 이야기를 지켜보고 있더라고요. 더 좋은 타이밍을 기다리면서요.
그러니 누가 보든 아니든 부지런히 내 이야기를 세상에 전해야 합니다. 기회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 한겹한겹 쌓아올린 시간의 더께 위로 내려오는 것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