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의 황혼
남한강에서(김지하)
덧없는
이 한때
남김없는 짤막한 시간
머언 산과 산
아득한 곳 불빛 켜질 때
둘러봐도 가까운 곳 어디에도
인기척 없고 어스름만 짙어갈 때
오는냐
이 시간에 애린아
내 흐르는 눈물
그 눈물 속으로
내 내쉬는 탄식
그 탄식 속으로
네 넋이 오느냐 저녁놀 타고
어둑한 하늘에 가득한 네 얼굴
이 시간에만 오느냐
남김없는 시간
머지않아 외투깃을 여미고
나는 추위에 떨며 낯선 여인숙을
낮아 나설 게다
먼 곳에 불빛 켜져 주위는
더욱 캄캄해진 시간
이 시간에만 오느냐
짤막한 덧없는 남김없는
이 한때를
애린
노을진 겨울강 얼음판 위를
천천히 한 소년이
이리로 오고 있다.
애린[愛悋]
1. 아깝게 여김
2. 이웃을 사랑함
위 시는 여백서원 어린이 도서관에서 찾은 김지하 시인의 시이다. 시의 내용 중에 悋(아낄 린)이라는 글자에 오래도록 시선이 머물렀다. 이 글자는 아깝다는 뜻보다는 소중히 여긴다는 것에 가까운 단어인 것 같다. 시인은 남한강 근처에서 고독한 황혼에 비낀 노을을 보며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바라보고 있었나 보다. 고독한 삶에 선물처럼 다가온 잠깐의 황혼에 시인은 감격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주 스승님과 근처에 있는 보리밥 집에서 식사를 하고 오던 길에 남한강 들녘을 붉히던 노을을 바라보았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서 아킬레우스가 분노하며 거닐던 해안가의 풍경이 생각나 스승님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오늘 하늘은 샤프란 색으로 물들었네요"
아킬레우스가 바라본 석양은 분노의 불길처럼 활활 타올랐겠지만, 내가 그날 바라본 하늘은 너무 따뜻하고 황홀한 빛이었다. 나는 왠종일 스승님 곁을 지켜드린 하루 끝에 잠시 찾아온 선물 같은 아름다움에 감격하고 있었다.
오늘 왠지모를 서늘한 기운을 느끼며 새벽 미명에 일어났다. 한번도 가본적이 없지만 니체가 생의 마지막을 보냈던 바이마르의 집에 대한 꿈을 꾸었다. 이 꿈은 아마 어젯밤 읽었던 스승님의 글이 내 무의식에서 재현된 것 같다. 스승님은 언젠가 바이마르에 있는 니체의 집, 니체가 숨을 거둔 방에서 숙박을 하셨다고 했다. 그 인적 없고 괴괴한 건물에서 광인이 된 니체가 울부짖을 것 같은 느낌을 받으셨다고 했다. 그리고 이렇게 회상하셨다.
무엇보다 니체의 선명하고 아름다운 글과, 온 세계로부터 와서 이 집에 머물다 간 석학들의 글도 다시 읽어 봤다. 열네 번의 문을 여전히 여닫게 하는 철저함과 그것이 어긋나서 간혹 처박히는 수렁까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인간의 가능성 전모가 이 집에서는 너무도 선명했다. 그런 철저함이 아니고야, 저 명민한 니체가 미칠 때까지 글을 쓰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새벽에 발코니 위에 서면, 천지를 채운 붉은 아침노을이 펼쳐진다. 광인 니체의 눈을 아프게 채웠을 서광이 변함없이 펼쳐져 이제 내 눈을 찌른다.
<인생을 배우다, 전영애, 청림출판>
나는 그날,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스승님이 니체의 집에서 경험하신 것과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저 부지런하고 명민하신 분이 내게 하시는 말씀 한마디 한마디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스승님의 학문적 깊이와 높이도 부럽지만, 인간에 대한 사랑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닮고 싶다. 자신의 전 재산을 들여 여백서원과 괴테 마을을 조성하시는 숭고한 뜻을 알기에 더욱 그렇다.
오늘은 차마 말씀드리지 못했다 그러나 언젠가 꼭 이 말씀을 드리고 싶다.
노을 진 남한강 위에
천천히 한 소년이 이리로 오고 있다고...
홀로 외롭지 않게
그 곁을 지켜드리고 싶다고..
아참, 스승님이 올해 <이탈리아 기행> 번역을 위해 이탈리아를 다녀오실거리 하신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 내가 쓰고 있는 단테 신곡 지옥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문장을 소개해 드렸다.
Io non Enea, io non Paulo sono.
me degno a ciò né
io né altri 'l crede.
(Inf.2:8~9)
저는 아이네이아스도, 바울도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저나 다른 누구도
제가 그럴 자격이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지. 2:8~9)
스승님이 너무 좋아하시며 이탈리어어로 단번에 그리고 겸손하게 'Io non Enea, io non Paulo sono' 를 따라 하신다. 그리고는 사도 바울이 복음을 가지고 이탈리아에 처음 발을 디딘 바닷가를 가보신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당신 혼자 그곳에 앉아 얼마나 황홀해하셨는지 얘기하시는 대목에서 눈물이 났다.
나는 스승님에게서 '복음 들고 산을 넘는 자의 발걸음'을 목격하고 있다. 나에게는 아이네이아스 보다 더 위대한 시인이고, 사도 바울 보다 더 숭고한 사도이다. 틈날 때마다 뵙고, 배울 것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사랑하고 아끼는 것에서 만큼은 스승님을 넘어서는 제자가 되고 싶다.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내 삶의 목표가 되었다.
봄날의 여백은 사랑이 넘친다.
그 사랑에 걸맞은 인간이 되어야 한다.
더 깊이 읽고 쓰고 사랑하면서...